삭정

 



索靖
(239년 ~ 303년)
서진의 인물. 자는 유안(幼安). 삭담의 아들. 장지의 누나의 손자(생질손). 돈황 사람.
대대로 벼슬을 지낸 집안이며, 젊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태학에 들어가서 동향 사람인 범충, 장표, 삭개, 삭영 등과 함께 돈황오룡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돈황에서 별가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고 군의 부름을 받고 현량방정으로 천거되었으며, 부현, 장화 등이 삭정을 만나자 매우 기뻐해 교우했다. 이후 부마도위를 역임하다가 서역에 부임해 기교위를 지냈으며, 다시 옮겨 상서, 상서랑, 안문태수, 노국상, 주천태수 등을 지냈다. 290년에는 사마충이 즉위하자 관내후에 봉해졌고 삭정은 천하에 혼란이 일어날 것을 짐작해 궁성 안에 있는 구리로 만든 낙타상을 보고 얼마 안 있어 폐허 속에 볼 것이라고 했으며, 원강 연간(291 ~ 299년)에 서융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사마융의 좌사마가 되어 이를 토벌해 그 공으로 시평내사가 되었다.
301년에는 사마륜이 황제를 칭해 반란을 일으키자 좌위장군을 지내다가 손수를 토벌한 공으로 산기상시가 되었으며, 303년에는 사마옹의 군사와 싸우던 도중에 부상을 입고 전사했다. 그가 죽자 안락정후에 봉해지고 시호는 장(荘)이라고 했다.
서예에 뛰어나 위관과 함께 일대이묘라 불릴 정도였으며, 장초로 유명했고 장지가 쓰는 초서의 법을 배워 형태를 다르게 했으며, 그의 초서는 회오리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고 솔개가 살짝 날아가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남조 때 송나라의 양흔은 그의 글씨에 대해 삭정은 장지의 살을 얻었다는 평가를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인소원법첩, 월의첩, 희홍당법첩, 출사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그의 초서 이론을 담은 초서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