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쿠하치
1. 개요
尺八(척팔)
일본의 전통 관악기. 이름의 유래는 길이가 1촌 8척(약 54.5 cm)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대나무를 뿌리 부분을 시작으로 1척 8촌으로 잘라 만들되 반드시 마디 7개를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옻 등 재료를 배합한 물질을 펴발라 음색을 다듬어 만든다.
현대에는 가장 전통적인 1척 8촌 외에도 길이에 변화를 준 변형 샤쿠하치 또한 제작된다.[1] 중간 부분을 분리할 수 있게 바꾼 개량식 샤쿠하치도 있다. 특유의 바람 새는 소리로 일본 특유의 감성을 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2]
2. 역사
샤쿠하치의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정황상 중국에서 넘어온 것은 확실하다. 중국의 전통 퉁소 중 난샤오(南萧)라는 악기가 외형적으로 일본의 샤쿠하치와 굉장히 흡사하다. 아래 사진이 바로 중국의 난샤오. 다만 난샤오의 취구는 샤쿠하치와 달리 단소나 퉁소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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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물 헌납 기록인 <동대사헌물장(東大寺獻物帳)>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이 샤쿠하치(尺八)를 전했다고 한다. 샤쿠하치는 지금의 단소와 음계가 같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단소와 같은 악기가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정작 단소는 기록에 없기 때문에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중국에서는 샤쿠하치가 중국에서 당송 시절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샤쿠하치는 일본에 널리 퍼졌으나, 특이하게도 일본 선종 불교종단 중 보화종(普化宗)의 반승반속 행자 허무승(虚無僧)들의 전용 악기로 자리잡았다.
과거 막부 시절 일본에서는 다른 곳으로 이사나 여행은 특별한 행사나 사정이 없는 한 금지되었다. 특히 일반인들의 여행은 막부에서 어쩌다가 한 번 국토의 성지 순례를 허가한다던가 하는 정도 행사가 아니면 불가능했고 사무라이나 다이묘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허무승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이들은 속세와 연을 끊었음을 상징하는 바구니 같은 삿갓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샤쿠하치를 연주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탁발을 했다. 샤쿠하치의 특성 또한 이들의 상황에 알맞았다. 아랫부분은 대나무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 다소 뾰족하기 때문에 유사시 둔기로도 쓸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허무승들의 특징 때문에 이들은 지방 다이묘 등 영주들이나 심지어는 중앙정부의 쇼군에게 고용되어 각지를 돌아다니며 첩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이묘들이 허무승으로 위장시켜 다른 지역에 보내는 스파이나 자객들 또한 많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진짜 허무승들과 허무승들로 위장한 자객을 분간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단히 어렵고 기교가 많이 필요한 악곡이 발달했는데, 이런 곡들을 혼쿄쿠(本曲)라고 한다. 혼쿄쿠는 보통 허무승들 사이에서 구전만으로 전파, 계승되었다. 여러 해 매일같이 샤쿠하치를 연주하며 다닌 진짜 허무승들은 별 무리 없이 연주할 수 있지만 가짜 허무승들은 당연히 이렇게 불 수 없었으므로 발각된 스파이들은 처형당했다.
이렇게 허무승들과 그들이 연주하는 샤쿠하치는 당시 일본의 막부 체제와 다소 기묘한 공존을 지속했으나,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자 막부 측의 스파이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허무승들은 탄압받았다. 메이지 4년(1871) 보화종은 폐지되고 허무승들은 강제로 환속당했다. 이 과정에서 진짜 보화종의 대는 완전히 끊겼고 혼쿄쿠 중 여러 곡이 영영 유실되었다. 이후 메이지 21년(1888) 보화종의 탄압이 완화되어 다시 허무승이 등장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미 예전의 전통은 많이 끊긴 뒤였다.
3. 기타
일본의 샤쿠하치는 한국의 단소와 지공의 수가 같은 퉁소 계열 악기이지만 취구의 모양새가 약간 다르다. 한국의 단소의 취구는 중국의 퉁소(동샤오, 洞萧)와 동일하게 반원형으로 파낸 모양새이지만 일본의 샤쿠하치는 취구 부분이 바깥쪽으로 사선으로 깎였다. 사선으로 깎인 취구 부분은 강도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아예 갈아낸 후 튼튼한 뿔이나 플라스틱, 금속 등 재료를 끼워넣어 마감하는 것이 특징인데, 끼워넣은 부분의 모양은 유파에 따라 다르다.
사까시의 어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