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숑크 1세
1. 소개
이집트 제22왕조의 창시자이자 파라오.
2. 내용
그의 선조는 리비아인으로서 신왕국 후기에 이집트 헤라클레오폴리스 마그나에 정착하였다. 그는 마(Ma)의 대 추장 셰숑크의 손자로서 아버지는 역시 마(Ma)의 대 추장 님로트였고, 어머니는 텐트쉐페였는데 텐트쉐페는 마(Ma)의 대 추장의 딸이기도 했다.
셰숑크 1세는 성경에서 '''시삭'''으로 기술되고 있다.
많은 파라오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존경을 받는 칭호를 채택하여 지신의 통치권을 내세우려고 했는데 그는 거의 100년전 스멘데스 1세의 즉위명 헤즈크헤페레 세테펜레를 사용하였다. 이 즉위명의 의미는 “레(Re)의 나타나심은 밝고, 레(Re)로부터 선택받다” 이다.
키츤의 전통적인 해석은 그의 재위기간이 BC 945년부터 BC 924년까지였는데 최근에 BC 943년부터 BC 922년까지로 수정되었다. BC 925년의 가나안(Canaan)정벌 성공 이후 2~3년 더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는 즉위하기 전에 아버지의 마(Ma) 대 추장 직을 이어받고, 이집트군 사령관과 전임자 프수센네스 2세의 사위가 되어 왕의 수석 고문역을 맡았다.
그는 즉위한 뒤 테베와 타니스에 나누어져 있던 분파들을 통합하여 다시 한번 통일 이집트를 이룩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큰 아들 오소르콘 1세의 혼인관계를 통해 이집트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였고, 둘째 아들 이우푸트에게 테베의 아문 최고 사제 직위와 상 이집트 주지사를 겸임하도록 하는 한편 세째 아들 님로트를 중 이집트 헤라클레오폴리스의 군 총사령관으로 지명하였다.
그는 대외적으로도 레바논, 시리아, 필리스티아, 페니키아, 네게브 그리고 이스라엘 왕국 등 중동지역에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는 21년의 통치를 끝으로 아들 오소르콘 1세에게 계승시켰는데 그의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출처]
3. 성경 행적
4. 성궤
위의 성서 기사에서 셰숑크 1세가 약탈한 성전의 보물 중에 성궤가 있었다는 가설이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작품 인디아나 존스: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는 이 가설에 따라 이집트에서 성궤를 찾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셰숑크 1세 Sheshonk Ⅰ(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