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동

 


성명
신경동(申慶東)
본관
영해 신씨
생몰
1894년 6월 9일 ~ 1962년 7월 20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1]
사망지
경상북도 영덕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경동은 1894년 6월 9일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2천 여명의 군중과 함께 시장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때 영해경찰관 주재소 주임순사가 해산을 요구하자, 그는 군중과 함께 그를 구타했다. 이후 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총기, 탄약, 서류를 파기했으며, 뒤이어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영해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건물과 비품을 파괴하고 문서를 파기하였다.
급보를 접한 영덕경찰서장 등 4명이 현장에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대는 기와장과 돌을 던지고 곤봉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 서장 등이 본서로 돌아가려 하자 군중들은 서장 일행을 포위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칼과 총기를 빼앗고 제복과 모자를 찢어버렸다. 이 시위는 3월 19일까지 이어졌지만 일제 당국의 탄압으로 결국 진압되었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손괴·기물손괴·공문서훼기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2년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신경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영해 신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