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완근
1. 개요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었던 선수. 1988년 혹사로 인해 데뷔 시즌 이후 부상에 시달리느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했다.
2. 선수 생활
고등학교 시절 1학년부터 대회에 뛰었을 정도로 기대받던 선수였다. 그의 피칭은 두뇌피칭이라 평가받았으며 주 무기는 기사에 따라 다른데 낙차 큰 슬로우커브 or 낙차 큰 슬라이더.
졸업 후에는 원광대에서 뛰었으며 졸업 후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 2차 1라운드로 지명 받아 뛰게 된다. 여태구와 함께 태평양에서 픽한 자원 중 실전 투입이 바로 가능한 선수로 분류됐었다. 이때 한 기자는 양상문, 임호균을 제외하면 적당한 투수가 없으니 감독이 계투작전위주로 게임을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고 불행히도 그 예상은 사실이 되었다.
신완근은 입단한 1988년 기록적인 혹사를 경험하는데 숫자로 보면 37출장, 4선발, 139이닝. 이는 1982~2020 KBO에서 선발 등판 5회 이하인 선수 중 최다이닝 10위이며 144G 환산을 하게 되면 9위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출장이 적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해 신완근의 완투는 1회이니 이 1회를 9이닝으로 가정하고 나머지 3회를 8이닝을 뛰었다고 가정해도 선발이닝은 33이닝. 불펜으로 뛴 이닝은 106이닝으로 구원 등판은 33회이니 구원으로 등판한 뒤 평균 3이닝 이상을 뛰었다는 소리가 된다. 안 좋은 의미의 중무리로 뛰었던 셈. 데뷔시즌이니 버두치 리스트에 당연히 못 들어가지만 부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그 후 부상으로 신음하게 되며 신통찮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40이닝, 60이닝을 뛰며 ERA+ 100이상을 찍은 시즌도 있긴 있었지만 클래식 성적으로 보면 이후 5년간 3승 0세이브밖에 거두지 못했다. 패 역시 7패에 불과하니 중요한 순간에 안 올렸다는 소리. 결국 1993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신완근은 쓸쓸히 은퇴하게 된다.
3. 트리비아
사회인야구단에서 활동할 때인 2020년에는 제2회 양구자연중심배 전국사회인야구에 참여한 최고령 프로선수 출신으로 이름을 올려 기사까지 나왔다.
통산 5승을 거뒀는데 이중 3승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거둔거라 해나쌩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마구마구에서는 신찬근이란 가명으로 등장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