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고등학교 야구부

 



[image]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Jeonju High School)
'''창단'''
1925년/1977년
'''소속 리그'''
전라권
'''감독'''
주창훈[1]
'''연고구단'''
해태 타이거즈 (1982~1989)
쌍방울 레이더스 (1990~1999)
KIA 타이거즈 (2001~2013)
NC 다이노스 (2014~)[2]
'''우승 기록'''[3]
1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
1회(1982)
'''청룡기'''
-
-
-
'''황금사자기'''
1회(1985)
-
1회(1984)
'''봉황대기'''
-
-
-
'''협회장기'''
-
1회(2019)
-
<color=#373a3c> '''1985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

'''전주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1. 연혁
3. 출신선수[4]
4. 관련 문서

[image]

1. 연혁


긴 역사, 부족한 우승, 그런데 프로 100승 투수, 거포 외야수명 포수심지어 전직 메이저리거들의 모교.
1925년에 야구부가 시작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큰 영향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1960년대 말에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군산상고의 돌풍과 전국적인 고교야구 붐에 자극을 받았는지 1976년부터 야구부 재건 운동을 시작하여 1977년에 재건에 성공, 전국 무대에 데뷔하기에 이른다. 재건 후, 1978년부터 1981년까지 4년 연속 봉황대기 8강에 오르면서 저력을 보였다.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으나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김대현, 프로에 입단하지 않고 실업야구에 남아 실업야구의 마지막 해였던 2002년까지 뛴 백재우가 당시 주축 선수였다. 1982년 대통령배 4강, 1984년 황금사자기 4강에 이어 마침내 1985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진흥고를 누르고, 최초의 창단으로 따지면 60년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 때의 주역이 된 선수가 훗날 쌍방울에서 뛴 좌완 박성기다.
그 뒤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이후, 군산상고와 함께 쌍방울의 선수 수급의 주된 팀이 되어 김원형이나 박경완의 모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1985년 우승 이후 전주고 야구부의 성적은 그야말로 만년 약체로서 쌍방울이 연고 지역 전력에서 애당초 연고 학교도 작은 판국에 성적도 좋지 않아 항상 다른 지역에 비해 애를 먹게 한 한 원인이었다.
[image]
최형우
그래도 신용운, 박정권, 최형우처럼 프로 무대를 수놓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명맥은 이어갔지만, 2011년에는 선수 부족으로 해체 일보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맞았다.[5] 다행히 수습이 되면서 야구부의 명맥은 유지하는 중. 다만 기대를 걸었던 10구단 유치 경쟁에서 전주시가 밀려버리고, 설상가상 연고 구단이 2001년 부터 2013년 까지 KIA 타이거즈에서 지역과 전혀 관련이 없는 2014년 부터 NC 다이노스로 변경된 탓에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6] 그래도 2016년부터 연고구단 NC 다이노스가 개최하는 다이노스 고교야구 윈터파이널에 참가하는 등 꾸준히 구단의 후원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 때 2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운영하기도 했지만[7] 2010년대 후반은 그런대로 안정을 찾기는 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 최형우도 모교 야구부의 하락세가 아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최형우, 모교 후배들과 담금질…"초심을 되찾겠다"
2010년대 후반까지 계속 침체기를 걷던 전주고는 2019년에 서울고에서 전학한 박재민[8]을 앞세워 중흥을 노렸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 1985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34년 만의 메이저 전국대회 4강 진출. 이어진 준결승에서 삼성의 1차지명을 받은 황동재를 무너뜨리면서, 경북고에 3-0으로 승리하며 배명고와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준결승에서 원투펀치인 탁건과 박재민의 투구수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원투펀치 모두 결승전에 등판할수 있게 됐지만, 상대인 배명고도 준결승에서 한계 투구 수를 넘긴 권규헌을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투입 가능하기에[9] 딱히 어느 팀이 유리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승에서는 6회까지 팽팽했으나 7회말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5실점을 하며 3-6으로 패했다.
2020년 봉황대기 8강전에 진출했으며 전북 지역 또 하나의 라이벌인 인상고등학교 야구부를 상대하게 된다.

2. 야구대제전


  • 역대전적 : 5승 4패
  • 최고기록 : 4강(2015 야구대제전)
1981년 제 3회 야구대제전에서 처음 참가했으나 차준섭휘문고등학교에 패배하며 탈락했다.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20강에서 승리를 거둔후 오른 16강에서 경남고등학교를 맞아 3:2 패배로 탈락했다.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28강에서 승리를 거둔후 오른 16강에서 용마고등학교를 맞아 4:2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2015 야구대제전에서는 19강에서 승리를 거둔후 오른 16강에서 부산고등학교 야구부(4:3), 8강에서 덕수고등학교(3:0)를 꺾고 4강에 진출했으나 북일고등학교에 13:6으로 패배하며 4강에 머물렀다.

3. 출신선수[10]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김대현
투수
1986년 1차 지명
원광대-해태(1986~1988)
박성기
투수
1991년 특별우선지명
원광대-쌍방울(1991~1997)-롯데(1998)-한화(1999)
최한림
투수
1990년 고졸연고지명
쌍방울(1990~1995)-삼성(1995~1997)
'''김원형'''
투수
1991년 고졸연고지명
쌍방울(1991~1999)-SK(2000~2011)
김정수
내야수
1991년 고졸연고지명
쌍방울(1991~1996)
'''박경완'''
포수
1991년 신고선수 입단
쌍방울(1991~1997)-현대(1997~2002)-SK(2003~2013)
조진호
투수
1998년 1차 지명
원광대-BOS(1998~2002)-SK(2002~2004)-삼성(2008~2009)
이정훈#s-1.4
투수
1997년 고졸우선지명
쌍방울(1997)
''' 최경철'''
포수
1999년 고졸우선지명
동의대-SK(2003~2012)-넥센(2012~2013)-LG(2013~2016)-삼성(2017)
'''박정권'''
내야수, 외야수
2000년 2차 9라운드
동국대-SK(2004~2019)
신승현[11]
투수
2000년 2차 11라운드
SK(2000~2013)-KIA(2013)-LG(2014~2017)
신용운
투수
2002년 2차 1라운드
KIA(2002~2011)-삼성(2012~2017)
'''최형우'''
외야수[12]
2002년 2차 6라운드
삼성(2002~2005)-경찰(2005~2007)-삼성(2008~2016)-KIA(2017~)

투수
2009년 2차 1라운드
경희대-SK(2009~2010)-LG(2010~2012)
임태준
포수
2007년 2차 2라운드
현대(2007)-넥센(2008~2016)-SK(2017~2018)-질롱 코리아(2018/2019)
박정음
외야수
2012년 4라운드
성균관대-넥센/키움(2012~)
장우람
투수
2012년 9라운드
건국대-두산(2012)
김인범
투수
2019년 2차 2라운드
키움(2019~)
박재민
투수
2020년 2차 2라운드
롯데(2020~)

4. 관련 문서



[1] 1981년생. 좌투좌타의 거포 내야수로 광주상고(現 광주동성고)-원광대를 졸업하고 계약금 1억원, 연봉 2천만원에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2] NC 다이노스가 군산상고와 전주고를 대상으로 1차지명권을 행사하면서 지역 연고도 같이 넘어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KBO 각 구단들은 어디까지나 도시 연고이며 제2구장 홈 경기는 1차지명권 행사와는 별개 사안이다.[3] 4대 메이저 + 협회장기[4]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5] 같은 학교의 농구부는 2006년에 3학년 4인방(김현호, 조효현, 김민섭, 김현민)에 2학년 김승원의 베스트5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모두 우승을 쓸어담았다.[6] 그렇지만 야구단 지원금은 유지가 되기 때문에 구단 운영비에는 큰 변화가 없을듯.[7] 물론 9명만 유지해도 참가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렇게 할시 한명이라도 부상 당하면 그대로 탈락이니...웬만큼 야구부 운영이 개판이라도 10명 이상은 운영되고 있다.[8] 3학년 좌완투수로 프로팀 지명 가능성이 높다. 군산중앙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연고 중학교인 군산중 및 군산남중으로 진학하지 못하고 서울 청원중학교로 스카우트 됐다. 서울고에서 전주고로의 전학은 사실상 고향 컴백이다.[9] 청룡기 우승을 차지했던 2017년만 해도 배명고는 총 13명이 등판했고 최다 이닝이 36이닝에 불과했다. 2019년 들어서도 12명이 마운드에 올랐다.[10]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11] 2004년 김명완에서 개명.[12] 포수로 입단했으나 외야수로 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