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홍(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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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재홍(申才弘)
생몰
1900년 12월 15일 ~ 1960년 12월 25일
출생지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연평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연평리)
사망지
대구광역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신재홍은 1900년 12월 15일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문기자로 재직하던 중 1927년 2월 조선 공산당에 입당하여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때 일제 경찰의 추적으로부터 회피한 그는 1930년 3월 제주에서 항일비밀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을 조직하고 상임위원 겸 농민부를 책임맡아 농촌 청년, 해녀, 소년 소녀 등을 대상으로 항일민족의식 및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항일 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정한 그는 1931년 5월 말 혁우동맹을 해체하고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카를 조직하여 구좌면, 선의면 일대를 담당했으며, 그해 7월에는 비밀결사 ‘적(赤)’을 조직하여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1932년 1월 제주도 해녀들의 권익을 위해 ‘제주도해녀투쟁’을 배후에서 지휘·조종하였다.
당시 관제조합인 해녀어업조합의 부정으로 해녀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제주도 해녀들은 자생적으로 해녀회를 조직하고 부당한 해녀어업조합에 맞섰다. 시위로 발전한 해녀투쟁은 특히 신재홍이 담당하는 구좌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2년 1월 7일과 12일 구좌면 세화장터에서는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세화주재소의 저지를 뚫고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제주해녀투쟁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구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0년 12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신재홍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