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國立大田顯忠院 | Daejeon National Cemetery
[image]
<colbgcolor=#0047a0> '''설립일'''
1982년 8월 27일
'''기능'''
국립묘지
'''원장'''
전종호
'''주소'''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상급 기관'''
국가보훈처
'''안장자수'''
00,000명(2020년)
'''링크'''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1. 개요
2. 역사
3. 내부구조
4. 안장 관련 내용
5. 주요 행사 및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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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이다. 1955년에 개장했던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 포화[1]와 영현 안장 한계 등으로 인하여 1985년에 개장하였다.[2] 관할 기관은 국방부가 아닌 국가보훈처.[3]
넓이는 3.22km²로 모나코보다 넓다.

2. 역사


본래는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읍(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리에 속했던 곳이었으나 1989년 1월 대전시가 직할시(광역시)로 승격되고 충청남도에서 분리독립하면서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할로 편입되었다. 유성읍 자체는 1983년에 대전시에 편입되었으며, 당시엔 중구에 속했고, 뒤에 서구가 되었다가 대전이 직할시가 될 때 구 유성읍과 인근 지역을 합쳐서 유성구가 생겼다. 참고로 옛 충청남도 대덕군의 동북부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로 편입되었다.
여담이지만 풍수지리적으로 계룡산 전체가 좌청룡 우백호 삼아 최고의 명당이라는 카더라가 있는데, 풍문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정부가 자리를 잡으면서 전국의 지관들을 다 모아서 자문을 구했다는 말이 있다.
최초 안장은 1982년 8월 27일 이춘원 육군하사[4]를 시작으로 100위를 안장하면서 현충원 안장이 시작되었다.

3. 내부구조


기존의 서울 현충원에는 안장되지 못한 영현과 김창룡 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추가로 안장되었으며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묘역, 전사(戰死) 군인 묘역, 순직 경찰관•소방관 묘역, 일반 묘역으로 분류되어 있고 현충선양관과 호국관, 봉안관 등 호국보훈 시설이 있다.
2006년에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의사자(義死者) 묘역이 새로 조성되었다.
대전현충원 안장접수 신청하는 사무소 맞은편 주차장 공간에 매점이 있다. 사무소 옆에는 항상 불교 봉사자들이 유가족들을 위해 간단한 국수를 나누어 준다. 2박 3일간 장례식장 밥에 지쳤다면 이곳의 국수도 괜찮다. 불교다 보니 육수도 채수로 낸 국수인 듯 하다.
배수로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 땅에 묻힌 분골함이 비만 오면 물에 잠길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충원측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있으며, 예산이 부족해 공사가 어렵다는 소리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과 비슷하게 일부 무자격자[5]들이 안장되어 있어 논란이 있다. 특히 김창룡, 안현태 등은 논란이 큰 편.[6]
현충탑 앞 현충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있었으나 2020년 안중근 의사의 필체를 집자해서 만든 현판으로 교체했다.

4. 안장 관련 내용


2004년 9월 21일, 8기까지 안장이 가능한 규모의 국가원수묘역이 조성되었는데, 그 이후에 사망한 대통령 중에서 2006년 사망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영부인 홍기 여사의 묘소가 유일하게 여기에 있다. 2009년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언에 따라 국립현충원이 아닌 봉하마을에 안장되었고, 같은해 사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15년에 사망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대통령 참배가 용이하게 이루어지도록 해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으로 인하여 대전이 아닌 서울현충원에 안장되는 바람에, 현재까지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 1기만이 안장되어 있다. 게다가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전원(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이 서울이건 대전이건 국립현충원에 안장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상당기간동안 국가원수묘역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 외에 다른 묘소가 조성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7]
참고로 전현직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국립현충원 안장자격이 되지만, 국가보안법위반, 내란, 외환의 죄금고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 살인, 상습상해죄·폭행, 상습체포·감금, 약취·유인 및 인신매매, 강간·추행, 상습절도, 강도, 상습사기, 상습장물, 국고손실, 군사기밀 탐지·누설 등의 죄로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경우, 공무원과 공무에 종사하는 직원으로 수뢰, 횡령·배임죄로 금고 1년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경우,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경우에는 국립현충원 안장이 불가능하다[8].
딱 봐도 현재 생존한 전직대통령 4명 전원이 여기에 걸려서 국립현충원에 못갈 것 같지만[9], 법에 구멍이 있어 최종적으로 안장대상심의위원회에서 안장을 의결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안현태대통령경호실장이 사면·복권된 후 이 곳에 안장이 되어 있어서 논란이다. 같은 논리로 전두환노태우도 사면·복권 받았으므로 안장이 가능할 수도 있어서 의문인 상황. 2017년 10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이에 대해 "사면·복권을 했다고 하더라도 유권해석은 필요하겠지만, 국민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제가 결정을 해서 말하기는 조금 부적절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차후 전두환은 국가장은 받되 국립묘지는 안장불가 판정이 나왔고 노태우는 불분명하게 나온 상황이라 모르게 되었다.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 사건 전사자들은 2015년에 특별히 한 곳으로 이장해 묘역을 새로 조성했고,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전사한 46명의 천안함 승조원들은 사병 묘역 일부에 합동 안장 후 철제 울타리를 쳐두었다. 행사 등이 잦아 상대적으로 찾는 인원이 많은 점을 감안한 것으로, 양 묘역 모두 추모 상징물 등이 있으며 제2연평해전 및 연평도 포격 사건 전사자 묘역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간이 쉼터가 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 윤영하 해군 항해소령, 천안함 피격사건 전사자 고 이창기 해군 갑판[10]준위는 원칙대로면 장교 묘역에 따로 안장되어야 하나, 참배를 용이케 하고 전우들과 함께 안장해야 함을 고려해 다른 사병 전사자와 함께 안장[11]되어 있다. 대령 이하 장교는 묘역만 다를 뿐 비석이나 장지 규격 등이 사병과 동일하므로 특혜 시비는 없었다. 서울현충원은 장교와 사병의 묘지 규모는 동일하나 묘비 모양에 약간 차이가 있어서 장교는 각이 져 있고 사병은 둥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전현충원은 최근들어 그런 구별을 두지 않는 듯 하며 2017년 2월부터는 장교와 사병 묘역 구별을 아예 없애고 장사병묘역으로 조성중이다. 다만, 천안함 승조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당 사건 수습 중 순직한 고 한주호 해군 특전준위와 3명의 링스 대잠헬기 추락 순직자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 이들도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안장된 이들 중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적잖이 많기 때문에 논란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창룡이라는 일본 순사 출신의 살인마. 자세한 것은 국립현충원 항목의 비판 항목 참조.
이밖에 김재현 기관사의 위패는 이곳에 있다. 그런데 정작 김재현 기관사는 서울특별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2020년 백선엽 장군 사망 이후로, 일부 지지자들이 "구국의 영웅을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 건 격이 낮은 대우를 하는 것이니,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현충원 쪽이 격이 낮다는 건 근거 없는 주장인데,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서는 "같은 국립묘지로서 차등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국립묘지별 안장 대상자를 적시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에도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연천현충원은 한 항목으로 묶여 있다. 법률상으로 차등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충일 추념식도 서울, 대전에서 번갈아가며 치러지고 있다. 이렇듯 대전현충원 안장을 '홀대'로 볼 근거는 없으나, 서울현충원 안장을 바라는 쪽에서는 수도로서 서울이 갖는 상징성과 접근성을 이유로 서울 안장이 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0년 현재 대전현충원 또한 안장묘역 포화[12]로 인하여 충혼당이 건설되고 있는 중이며,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도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서울현충원 또한 제2충혼당 건설을 추진중이다.

5. 주요 행사 및 교통


매년 현충일이 되면 이 곳에서도 현충일 추념식이 열리며 대전광역시충남 지역 인사 및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분향 및 헌화 의식을 가진다. 이쪽은 대전시가 행사를 주관하고, 서울 국립현충원과 비슷한 규모로 행사를 진행한다. 또한 참배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날이기 때문에 현충원 앞 도로와 구내도로에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현충원 정문에서 묘역까지 들어가는데 1시간은 기본일 정도.
이렇기 때문에 현충일만 되면 대전현충원 측에서 관광버스를 수십대 전세내어 대전복합터미널, 대전역, 서대전역을 오가는 셔틀버스와 월드컵경기장역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요금은 무료. 현충일 한정해서 버스전용차로를 운영하기 때문에 확실히 이쪽이 빠르다. 시간대는 매년 차이가 있는데, 한달 전쯤 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버스 운영 계획표가 뜬다. 현충일에 다녀올 위키페어리가 있다면 참고하자. 보통 각군 참모총장1월 1일현충일 등에 서울현충원 대신 이 곳을 찾는다. 공군본부가 위치한 계룡대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또 3군이 통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등의 이유로 인한 것이다. 특히 해군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 21세기 들어 생긴 상징적인 사건들의 전사자들이 많아 유관 행사를 대전에서 할 일이 많다.
이외에 설날, 추석에도 성묘를 하기 위한 참배객 때문에 명절에는 공주에서 유성으로 들어오는 나들목이 꽉 막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명절 당일에 현충원을 가야 한다면 차를 두고 가거나, 여의치 않다면 아예 늦은 오후 혹은 이른 아침에 참배하기를 추천. 그 외에 공주에서 대전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는 논산 방면으로 우회하는 1번국도 계룡2터널 방향으로 미리 빠지는 것도 방법이며, 그 역방향으로 갈 때에도 이 도로로 향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태껏 서울현충원에서만 주로 열린 현충일 정부 추념식을 대전에서 치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군인 외에도 경찰, 소방관, 의사자 등 사회를 위해 헌신한 영령들이 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13] 그 분들까지 기리기 위해서라는 의미라는 명분이기는 하나, 안 그래도 현충일 당일 대전현충원의 도로상황과 교통상황은 헬게이트 of 헬게이트인데 VIP 임석 경호 보안 문제로 유족 및 조문객은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듯 잇달아 HELL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첫째로 현충원역 경유하는 버스가 우회운행함은 물론, 둘째로 현충일 당일 현충원에서 수배해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도 대통령경호처의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로 현충원 입구에서 일방적으로 봉쇄되어 타지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기장소인 월드컵경기장역 입구 앞에서 2시간 이상 넘게 땡볕에서 '''아무런 안내 없이'''[14] 무한정 기다리기도 했다.[15] 심지어는 기다리다가 지친 일부 사람들은 택시나 도보로 현충원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역시 입구가 봉쇄된 관계로 내부로 진입할 수 없어 다시 되돌아 오는 사례도 있었다.
대통령의 경호 문제로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될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그렇다면 현충원 참배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일정시간을 정해서 이 시간을 피해달라는 사전안내를 한 것도 아니고, 현충원 현장에서도 일반조문객을 위한 출입문까지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등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려주는 사람도 전혀 없는 이런 상황들은 총체적인 난국으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병크×100'''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부분인데, 앞으로도 이후에라도 대전현충원에 방문 예정인 조문객은 사전에 대통령이 중앙정부 행사 관련 대전에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생고생 하는 수가 있으니''' 자가용으로 오던가, 아니면 아예 현충일 당일에는 오지 말고 그 전날이나 뒤에 올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16]

5.1. 대전 도시철도 1호선 현충원역


말이 ''''현충원'''역'이지 현충원과의 거리가 꽤 멀다. 약 2.2km 정도로, 30분 간격으로 현충원-역 사이를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인 보훈모시미라는 이름의 현대 카운티를 타는 것이 좋다. 보훈모시미 기사에게 몇 묘역 가달라 식으로 얘기하면 그리로 운행해준다.
단, 현충일에는 이 버스가 운영되지 않고, 관광버스 수십대를 전세내어 월드컵경기장역과 현충원 주차장을 수시로 오간다.
[1] 만장이지만 네이버 지도에 스카이뷰로 보면 묘역 곳곳에 한곳씩 비어있는 묘역이 있긴하다. 비어있는 묘소는 이장된걸로 추정[2] 안장 자체는 1982년 부터 시작 되었다.[3] 설립 당시에는 관할 기관이 국방부였으나 2006년에 국가보훈처로 이관되었다.[4] 1953년 전쟁중 전사[5] 예를 들면 간도특설대에 복무 경험이 있는 김홍준의 경우 2009년에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등재 되었지만 2015년 국립서울현충원에 부부위패 봉안당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사유는 국방경비대 복무중 순직이다. 1946년 육군 소령으로 복무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6] 김창룡은 말 할 가치도 없으며 안현태 역시 하나회 멤버로서 12.12 군사반란에 일조한 자다. 즉, 전두환 최측근 출신.선자는 이승만때 공산주의자들을 죽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자는 복권되어 군인 자격으로 묻힌 것.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유인 게 김창룡이 공산당을 일부 숙청한 건 맞으나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고한 자들도 마구잡이로 학살하다 암살당한 자이기도 하다.[7] 2020년 10월 29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그것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현충원 안장이 불가능해졌다. 현직 문재인 대통령도 만기퇴임 후 일이 없다는 전제 하에 사망 시 대전현충원 안장의 자격이 있지만, 퇴임 후 본인의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양산시로 돌아가서 거주할 것을 확정하는 등 파트너였던 노무현의 선례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훗날 서거한 후에도 본인 의사로 현충원이 아닌 연고지에 묻히기를 원할 가능성도 있다.[8]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10년 청와대 만찬에 초청받아 갔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고 다 들리도록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도 못 간다"라며 노골적으로 디스한 일은 유명하다.[9]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미 내란죄, 수뢰죄 등으로 징역형의 실형이 확정된 사실이 있으며(사면복권은 확장 판결에 영향 없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형사 재판과 관계 없이 안장불가 사유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징역형이 확정되어 현충원 안장이 불가능하다.[10] 이창기 준위는 전사 당시 해군 전탐원사로, 전탐부사관준사관이 되면 갑판으로 직별이 합쳐진다.[11] 윤영하 소령은 처음엔 장교 묘역에 따로 떨어져 안장됐으나, 이장하며 다른 전사자들과 함께 안장됐다. 당시엔 사병 전사자들도 영현이 뒤늦게 수습된 고 한상국 해군 조타상사와 해전 당시 당한 부상으로 입원 중 사망한 고 박동혁 해군 의무병장도 다른 사병 전사자들과 떨어져 있었다.[12] 포화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적지 않게 남아있다.[13] 서울현충원은 포화상태가 된 것이 주된 원인이다.[14] 현충원 안내센터도 행사 관련 인원 투입 관계로 대통령 돌아갈때까지 계~속 먹통이었고, 셔틀버스 막차가 4시인데 안내센터 왈 ' 그거랑 이거는 별개잖아요? 연장계획 없어요 !! `라길래 여러사람들 항의로 5시반까지 운행되기도 하였다.[15] 대기장소에서 안내하는 사람도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셔틀버스 수대가 경호문제로 입구에서 막혀있었다는 후문이 다시 귀가하는 셔틀에서!!! 안내되었다.[16] 반드시 당일에 와야하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외부인 출입통제시간을 앞둔 오후 3시 이후 즈음 현충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