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샤야카틀
1. 개요
아즈텍 제국의 6대 틀라토아니. '물 표면'이라는 뜻의 이름이다.이츠코우아틀의 친손자이자 몬테수마 1세의 외손자로서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1]
2. 상세
이전까지 아즈텍은 그저 하나의 국가에 지방 자치권을 가진 서양의 봉건 군주정 같은 형태였으나 아샤야카틀은 많은 자치권을 폐지하고 완전한 중앙집권형 국가로 만들었다. 계기는 대립하던 도시인 틀라텔롤코(Tlatelolco)의 정복 이후 정복지를 방문했던 아샤야카틀은 틀라텔롤코 시민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받게 되었는데 아샤야카틀은 이것에 분노하여 틀라텔롤코의 완전한 파괴를 명하였다.[2]
이후 전국적으로 자매도시들의 자치권을 폐하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는데, 그 후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인신제사를 벌이는 등 완전한 공포정치를 시작하였다. 일반인들이 아즈텍 하면 대부분 떠올릴 수만 단위의 인신공양이나 심장 뽑기 등의 행동이 사실상 아샤야카틀 대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까지도 인신공양은 제법 있었으나 말 그대로 제례용으로서 몇몇 인원을 차출하던 것에 비해 수십만 단위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이다. 자식이 둘 있었으나 첫째는 병으로 급사하였고 둘째인 몬테수마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1481년 동생 티소크(Tīzoc)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이후 몬테수마는 아즈텍의 사실상 마지막 틀라토아니가 된다.
[1] 6, 7, 8대 틀라토아니에 제위한 아샤야카틀과 티소크, 아우이초틀의 아버지였던 테테소목친은 자신이 너무 어린 나이에 4대 틀라토아니였던 아버지 이츠코우아틀이 사망하는 바람에 자신의 삼촌뻘이자 친족이기도 했고 2대 틀라토아니 우이칠리우이틀의 아들이었던 몬테수마 1세에게 왕위를 뺏겨버리고 만다. 그 결과 몬테수마의 눈칫밥을 먹으며 허수아비 신세로 아즈텍의 왕자로서 살아갔었다. 때마침 몬테수마와 귀족들의 주선 아래 몬테수마 1세의 장녀이자 공주였던 아토토즈틀리와 결혼하였는데 아즈텍은 왕족들의 순혈성을 강조하기 위해 친족간의 근친혼이 많았었다. 어쨋든 몬테수마 1세의 직계남성후손들이 모두 전쟁 중에 사망하게 되고 테테소목친 역시 꽤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몬테수마 1세의 외손자였던 아샤야카틀이 틀라토아니로 즉위하게 된다.[2] Hassig, Ross (1988). Aztec Warfare: Imperial Expansion and Political Control. Norman: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ISBN 0-8061-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