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설리번
1. 개요
헬렌 켈러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로, 풀네임은 조앤나 맨스필드 설리번 메이시(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이다.[1] 1866년 4월 14일 출생 1936년 10월 20일 사망.
2. 생애
어린 시절은 고아로 어린 동생과 고아원에서 지냈다. 그러다 열악한 고아원 환경 탓에 남동생을 일찌감치 병으로 잃고, 자신도 눈병으로 시력이 크게 나빠져 안경을 써야지 겨우 보일 정도로 시력이 나빴다고 한다.
그러다 헬렌 켈러가 7살이 되었을 무렵, 설리반은 23살일 때 처음 헬렌을 가르치기 시작해[2] 이후 죽기 전까지 50여년 동안 헬렌을 지도하며 지금의 헬렌 켈러를 있게 했다.
3. 평가
진정한 교육자의 표본으로 알려져있다.
비판의 주된 내용은 헬렌의 사회주의적 활동을 부정하고[3] 공연 등 헬렌 켈러를 통해 돈벌이를 했다는 점이다. 다만 공연을 통해 생계를 이었다는 부분은 앤 설리번이 자기가 없더라도 헬렌이 자립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보는 의견이 강세다. 또 어린 시절 악조건 속에서도 선생이 되고자 노력하였던 그녀였기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함에 질려 이득을 취할 법 했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헬렌과 앤이 공연장을 전전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래 부유했던 헬렌의 집안이 헬렌이 성인이 된 후 기울기 시작하자 헬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중단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헬렌이 번 돈을 착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앤은 헬렌의 집이 망한 뒤로 수십년간 급료를 한푼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앤 설리번 선생에 대한 찬사는 비판 의견보다 훨씬 많다. 애시당초 그 돈벌이라는 것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번 것이면 모르겠지만, 헬렌의 공연수입은 두사람이 생계를 꾸리기도 빠듯할 정도의 액수였다. 게다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 타인의 손발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헌신은 어지간한 인내심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돈벌이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었을 것이다. 앤 설리번의 지인이 앤을 칭찬하기 위해서 "당신이 없으면 헬렌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자 앤 설리번은 "그럼 내가 헛되이 산 것이로군요."라고 대답한 일화나, 앤이 죽자 헬렌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펑펑 울었다는 사실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서로의 이익 때문에 엮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4. 기타
2006년 4월 9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방영한 적이 있다.
[1] 메이시는 남편인 존 앨버트 메이시의 성을 따른 것이다.[2] 이때 두 사람을 소개해준 사람이 전화기 발명으로 유명한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다.[3] 설리반 본인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1905년 사회주의자였던 존 메이시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