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파

 



야수파(fauvisme) 1904 ~ 1909,fauvisme는 프랑스어로 사나운 야수라는 뜻이다.
대표 작가로 앙리 마티스가 유명. 마티스는 고흐의 영향을 받아 표현적인 선과 색채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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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
마티스를 비롯한 일련의 예술가들이 야수파라고 불린 이유는, 색채를 야수처럼 파워풀하게 쓴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1] 당연히 처음에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본래 사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색을 무시하고, 작가가 느낀 주관적 감정에 따라 색을 마음대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더니즘의 정신인 반항과 일맥상통한다. 작가가 색을 선택한다는 생각을 바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혹자가 여자를 못그렸다고 말하자, "나는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이다." 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실제 세계의 사물을 그대로 옮겨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림으로 그린 것임을 밝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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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블루 누드(비스크라의 기념품)>, 1907
또한 마티스의 그림은 낭만주의와 마찬가지로 이국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블루 누드>라고 흔히 불리는 위의 작품에서 마티스는 제목에 부제로 북아프리카 도시 비스크라의 이름을 붙였다. 말 그대로 비스크라의 이국 여인을 그린 것. 이는 하렘을 그리던 낭만주의의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하다. 하지만 몇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일단 여성이 안 아름답다. 비현실적으로 엉덩이를 지나치게 강조해 그린 것을 보자. 그리고 일부러 푸른 윤곽선으로 그려 역시 실제 대상보다는 그냥 회화적 표현에 집중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고갱과 유사성을 지적받기도 하는데, 고갱은 이슬람권이 아니라 타히티같은 오세아니아 문화에 심취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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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춤>, 1910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처럼, 마티스는 색면을 배치하고 사용하는데 뛰어났다. 위의 <춤> 같은 경우 세로 260 x 가로 391 cm의 커다란 크기의 그림인데, 마티스는 그런 큰 그림에다 저런 씨뻘겋고 시퍼런 원색적인 색을 사용했다. 이를 이용해, 실제로 그림을 보면 색면에 시각적으로 압도되도록 만들었다.
야수파는 감정에 따라 색을 자의적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몇년 후에 나올 표현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1] 잘못된 색, 주로 밝고 특이한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