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제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양봉제는 1896년 11월 28일 평안북도 희천군 동면 청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1922년경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해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해 2월, 서로군정서 중대장 백광운(白狂雲)의 명령에 따라 이화주(李華周) 등과 함께 평북 강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으며, 1924년 5월 참의부(參議府) 제2소대 제2분대 참사(參士) 김창균(金昌均)의 지휘로 김원철(金元喆)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그는 그해 7월 동료들과 함께 평북 위원군 화창면에 소재한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했고, 강계에서 신의주-강계를 연결하는 전신주 5본을 절단해 통신을 차단했으며, 9월에는 위원군 봉산면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등 4개월간 활동한 뒤 만주로 돌아갔다.
1925년 9월 제1중대 부사(副士), 1926년 1월 제2중대 부사를 거쳐 같은 해 봄 제3중대장으로 승진하였고, 1927년 3월에도 제3중대장으로 근무하였다. 1928년 중대장 대리 겸 소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1928년 10월 24일 친일단체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의 밀고로 제4중대장 김상옥(金相沃) 등과 함께 일본 통화현영사관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1932년 3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양봉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