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섭(독립운동가)

 


성명
엄창섭(嚴昌燮)
생몰
1892년 12월 12일 ~ 1973년 12월 5일
출생지
전라북도 익산군 웅포면 대붕암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엄창섭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무렵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소재한 사립 창영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라북도 군산 영명학교 학생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부탁받은 그는 3월 7일에 고상준, 추병갑(秋炳甲)와 상의한 끝에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창영학교 내에서 3월 10일 강경읍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했다. 이튿날 강경읍에 나아가 태극기 제작에 필요한 종이와 물감을 사가지고 와서 고상준과 추병갑에게 태극기를 제작하게 했지만 쉽지 않자, 다시 김종갑(金鍾甲)과 추성배(秋聖培)를 불러 취지를 불러 설명하고 태극기 200여매를 제작했다.
거사일인 3월 10일 아침, 엄창섭은 이미 만들어 둔 태극기를 서삼종(徐三鍾)으로 하여금 가마니에 넣어 옥녀봉(玉女峰)으로 운반해 놓게 하였다. 그리고 오후 3시경 옥녀봉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꺼내 나누어주고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강경읍 장터로 내려와 독립만세시위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그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조용히 지내다 1973년 12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엄창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