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커 헬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황궁에는 시의가 없었다. 경애하는 치천제 폐하께서는 감사하게도 의사의 도움이 필요 없는 옥체를 가지고 계시지만 선황께서는 시의를 둘 수가 없으셨다. 나가에게 질병이란 심장을 적출하지 않은 어린아이나 걸리는 것이다. 따라서 나가들에겐 소드락이나 제초제, 살충제 등을 제조하는 약술사가 있을 뿐 성인 나가를 대상으로 한 의사가 없었다. 참으로 비통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세계의 지배자는 자신을 보살펴줄 의사 한 명도 둘 수 없으셨다. (중략)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 앞이 흐려진다. 그 때는 누구 하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회고하는 나 또한 당시에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필설로 언급하기도 힘든 두려움과 슬픔 뿐이다. 맹세컨대 내 생애에서 그 때만큼 무섭고 슬펐던 때는 없었다. 성인 나가가, 제국의 지배자가 죽어가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중략)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 순간 기묘한 이해의 공유가 일어난 듯하다. 아무도 감히 말문을 열지 못했지만 모든 이가 그 순간이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선황께서 갑자기 눈을 뜨셨다. 그 분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본 우리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곳에 모여있던 모든 이가 한꺼번에 소음을 내었기 때문에 아무도 선황 폐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곳에 있었던 이들 중 가장 귀가 밝았던 레이헬 라보가 들었던 내용조차도 온전하지 못하다. 레이헬 라보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은 너무 길다."라는 불완전한 문장뿐이었다. -에스커 헬토의 회고록

피를 마시는 새의 등장 인물. 인간 남성.
아라짓 제국의 전 율형부사로, 현재 율형부사로 있는 사라말 아이솔의 전임이다. 이미 은퇴했는지 작중에선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위의 회고록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겨우 언급만 되는 정도이다. 위 회고록에서 그는 "......은 너무 길다."라는 원시제의 유언을 레이헬 라보의 입을 빌어 세상에 전하였으며, 이 유언의 수수께끼는 본편에서 풀려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이외의 그가 등장하는 것으로는 '파델 미호린 사건'이 있다. 병리적 연쇄살인마 '파델 미호린'은 사람을 여럿 죽이고 추적을 받으며 도주했는데, 그가 도피처로 택한 곳은 유료도로당의 도로였다. '우리는 길을 준비한다.'로 대표되는 유료도로당의 사상에 의해 그는 절대적으로 보호되었으며, 이에 여론이 폭발하자 황제는 에스커 헬토를 불러 "가서 그 일을 해결하거라."라고 매우 간단하게 명령했다. 에스커 헬토는 당시 율형부차사였던 사라말 아이솔을 불러들여 모종의 지시를 내렸고, 사라말 아이솔은 검 한 자루를 챙겨 하늘누리를 떠났다. 그 후 파델 미호린은 도로에서 사라말을 발견하고 조롱하지만, '''그가 조금 지나친 이정표부터 다음 이정표까지의 2킬로미터 구간은 율형부차사가 동편 한 닢에 구매했다'''는 말을 들으며 사라말의 칼에 참수된다. 그 후 사라말은 다시 유료도로당에게 금화 500닢에 도로를 되팔으며, 그 차익은 전부 유가족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이 에스커 헬토인지, 아니면 사라말 아이솔의 작전이었고 에스커 헬토는 처리하라는 명령만을 내렸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작중 사라말의 생각에 따르면 에스커 헬토가 내린 명령이라는 것이 유력해 보인다. 사라말 아이솔이라는 비범한 인재를 휘하에 뒀을 율형부사가 내릴 만한 기발한 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