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노 다카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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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野篁
802~853
1. 소개


1. 소개


일본 헤이안 시대의 관료, 학자, 시인이다.
원래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사가 덴노로부터 아버지는 훌륭한 학자였는데 아들은 왜 그 모양이냐는 식의 탄식을 들은 이후로부터 학문에 열중해 822년 문장생시에 급제하여 조정에 들어갔고, 후에 황태자 쓰네사다 친왕의 동궁학사(東宮學士)[1]로 임명되었다.
견당부사에 임명되어 견당사에도 몇번 다녀왔으나, 견당대사인 후지와라노 쓰네쓰구(藤原常嗣)의 태도에 실망해 승선 자체를 거부하고 견당사와 조정을 비판하는 시 『서도요(西道謡)』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사가 상황의 노여움을 사 오키 섬으로 유배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사면되어 수도로 돌아가게 됐고 관위 또한 복구되었다. 그 후로도 미치야스 친왕의 동궁학사가 되는 등 꽤 잘나가다가 853년 지병으로 향년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 백인일수



'''제11번 오노노 다카무라(参議篁)'''

わたの(はら 八十島(やそしまかけて こぎいでぬと (ひとにはつげよ あまのつり(ぶね

넓은 바다 무수한 섬을 향해 나아간다고 어부의 낚싯배여 님에게 말해다오

[1] 황태자에게 유교를 가르치는 교육관. 훗날 황태자가 덴노로 즉위하면 측근으로 활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