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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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어: Ostrava
독일어: Ostrau
폴란드어: Ostrawa
1. 개요
2. 역사


1. 개요


오스트라바는 체코 북동부 모라바슬레스코 주의 주도이며 실레시아 지역과 모라비아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도시이다. 오더 강 연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2019년 기준 289,450명이며 체코에서 프라하, 브르노에 이어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과거엔 주요 공업도시였지만 1989년 벨벳혁명 이후엔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2. 역사


역사서엔 1229년 처음으로 언급되며 오스트라비체 강 연안에 세워졌기 때문에 오스트라바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일대는 발트해 무역권과 이탈리아 지역을 잇는 주역 무역로 '호박 길(Amber Road)'[1]이 지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름 경제적으로 번성했고 브레슬라우나 모라비아 중심도시인 올로모우츠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헤미아의 중요도시 중 하나로서 기능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조가 보헤미아 왕위를 획득하면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30년 전쟁기엔 다른 실레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몰락했다.
1742년 실레시아 대부분이 프로이센 왕국에 할양되었을때 오스트라바는 제국에 남았다. 상부 실레시아의 탄맥이 이 지역까지 닿았기 때문에 오스트라바 주변에도 역시 석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었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18세기 말부터 이 지역의 탄광을 개발했다. 1828년엔 올로모우츠 주교에 의해 이 지역의 풍부한 석탄을 이용하는 제철소가 세워졌는데 나중에 이 제철소가 1873년 로스차일드 가문에 넘어가면서 비코비체 제철소(Vítkovice Ironworks)라는 이름으로 재단장했다. 이 제철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대의 제철소로 산업혁명에 발맞추지 못해 생산능력이 떨어지던 제국에겐 참으로 귀중한 자산이었다.
2차 세계대전기 도시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소련군에 해방되었고 기존의 산업 자산들 덕분에 체코슬로바키아 최대의 산업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런 산업화는 도시와 그 주변의 생태를 크게 파괴했는데, 오스트라바 주변지역은 오데르강과 오스트라비체강, 그리고 오파바 강과 루치나 강까지 4개의 강이 만나는 곳으로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컸기에 이런 환경 오염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래서 1989년 벨벳혁명으로 인민정부가 붕괴된 이후엔 차츰 채광, 제철산업을 줄여나갔고 결국 1994년 광산과 제철소 모두 문을 닫았다.
도시는 이후 문화도시로 재단장했고 시민의 삶의 질도 올라갔다. 문을 닫은 비코비체 제철소는 체코의 주요 역사유산이 되는 동시에 독일의 촐버라인 탄광[2] 처럼 시민들의 레저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2002년부턴 뮤직 페스티벌 Colours of Ostrava를 매년 열고 있다.

[1] 발트해 남쪽 연안의 주산물은 호박석이다. 멀리 북부 레발(탈린)에서 슈체친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긴 지역에서 호박석이 채취되었으며 로마제국 이전 시대부터 이 지역의 호박석들이 이탈리아로 공급되어 왔다.[2] 유럽 최대의 탄광 지대인 루르 지방에 위치한 탄광으로 19세기 중반에 세워져 독일제국의 그 엄청난 산업능력에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까지 채광이 이루어졌으며 독일의 산업구조 선진화로 석탄의 중요성이 점차 떨어지면서 폐광했다. 에센 시에서는 이 폐광을 방치하지 않고 시민들의 레저공간, 박물관으로 깔끔하게 재단장시켰고 이런 노력, 그리고 탄광 자체의 엄청난 역사성을 인정해 2001년 유네스코는 이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