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겐 산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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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ene Sandow(오이겐 산도프. 1867~1925)
1. 소개
2. 상세
3. 관련 문서


1. 소개


독일계 영국인으로 본명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뮐러(Friedrich Wilhelm Müller). 오이겐 산도프는 유랑 극단원으로 활동할때 쓴 일종의 예명이다. 보디빌딩의 아버지, 보디빌딩을 체계화 하고 철제 운동기구를 판매&운동법을 보급한 인물.

2. 상세


보디빌딩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말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효율적인 '운동 수행능력'이 아닌 그야말로 인체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이다. 19세기 말은 스톤 리프팅 시기에서 웨이트 리프팅 시기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웨이트 리프팅이 오락의 한 형태로 발전하고 여기에서 strong man이 나타나기 시작되었다. 19세기말 미국인들은 근력에 관심이 높아졌고 이를 건강과 연관시키는 노력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체 단련을 교육했던 사람들은 체력적 건강뿐 아니라 아름다움까지도 겸 비해야함을 강조하여 유럽의 strong man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선수들의 조각 상을 더 이상적인 것으로 바라보았다.
따라서 신체 단련을 교육했던 사람은 오이겐 산도프라는 사람을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롤모델을 삼았다. 오이겐 산도프는 strong man이면서도 아름다움의 극치로서 평가 받았다. 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과시하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당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파격적인 모습으로 어필 할 수 있었다. 오이겐 산도프에 의해 당시 바벨과 덤 벨 등의 운동기구 판매도 늘었고 자신의 책과 잡지 등을 팔아 총체적 산업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약물 사용이 논란이 되는 레그파크와 달리 확실하게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몸의 롤모델로 평가받는다. 왜냐하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추출되기전에 사망했기 때문. 즉 '''약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죽은 사람이다.'''[1] 물론, 그의 근육량이 네추럴의 한계라는 식의 주장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현대 네추럴 보디빌더 수준으로도 샌도우의 근육이 대단한 몸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수준 체계적인 고립, 분할법이나 영양학과 스포츠의학이 자리를 잡기 전이기 때문에[2] 후대에 들어 비슷한 신장을 지닌 네추럴 보디빌더들은 그보다 더 큰 벌크를 지니기도 한다.
전성기 시절 그의 신장은 5피트 9인치, 체중은 180파운드였다. 미터와 그램으로 환산하면 175cm에 81.6kg이었다.
참고로 독일에서 태어난 그가 영국으로 가게 된 계기중 하나가 징병회피 때문이었다.
인생의 정확히 중간지점이었던 1896년 29살에 블랑쉬 브룩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2녀를 뒀다. 큰딸 헬렌과 둘째딸 로렌이다.
1925년 58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3. 관련 문서


[1]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1934년부터 합성되어 1940년대에는 대량생산 연구가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보디빌딩계에는 이미 1940년대부터 사용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 사용이 부작용을 일으킬 정도로 심해진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2] 그래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당시 상황에서 그만한 수준의 근육을 만든 것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