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 전투

 



1. 개요
2. 배경
3. 전투
4. 결과


1. 개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玉溪面)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대한해협 해전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 해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이자 최초의 승리로, 해상에서 벌어진 전투는 ‘옥계 해전’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현재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해군옥계지구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2. 배경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양양·강릉 지역의 38선 경비는 국군 제8사단이 담당하고 있었다. 제10연대가 38선 경비를 맡았고, 제21연대는 삼척에 주둔하며 후방 경계의 임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동해 경비는 해군 제2정대가, 해안 경비는 묵호경비부가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은 남침을 준비하면서 동해안 지역에 38선 경비를 담당하던 제1경비여단 이외에 북한군 제5사단을 추가로 투입했다. 그리고 상륙작전이나 오지전투를 담당하는 제766유격대와 제945육전대 병력 등을 배치해 침투 작전을 준비했는데, 제945육전대는 강릉과 삼척 사이에 있는 정동진과 옥계의 해안으로 침투해서 후방에서 강릉에 협공을 가하고 삼척에 주둔하던 제21연대의 지원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고, 제766유격대는 삼척의 임원항과 울진의 죽변항 일대로 상륙해서 후방 교란 작전을 전개하는 임무를 맡았다. 북한군은 이러한 작전으로 국군 제8사단의 퇴로를 차단해 궤멸시킨 뒤에 6월 29일까지 포항까지 남하해서 부산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3. 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5사단이 38선에서 남침을 시작하기 전에 1천8백여 명의 제945육전대 병력은 정동진과 금진·옥계 일대의 해안으로, 1천3백여 명의 제766유격대 병력은 삼척과 임원·죽변 일대의 해안에 상륙해서 태백산맥의 산지로 침투했다.
옥계의 해안초소로부터 북한군이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받은 묵호경비부는 그 사실을 곧바로 해군본부에 알렸다. 그리고 묵호항에 정박해 있던 가평정(YMS 509)에 출동 명령을 내리고, 기지에 근무하던 해군 장병을 중심으로 육전대를 편성해서 옥계 방면으로 출동했다.
60여 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해군 육전대는 옥계로 이동해서 그 지역의 경비를 담당하던 경찰, 청년단 등과 합류했다. 그리고 옥계초등학교에 집결해 있던 북한군을 기습해서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북한군이 반격을 가해오자 도직리 방면으로 물러났는데, 그곳에서도 상륙해온 북한군을 공격해서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출동 명령을 받은 가평정(加平艇)은 안개를 뚫고 북상해서 오전 7시 20분 무렵에 옥계항 인근의 바다에서 북한 함정을 만나 전투를 벌였다. 미군으로부터 1947년에 인수한 소해정(掃海艇)인 가평정은 목선(木船)이어서 철선(鐵船)인 북한 함정보다 전투에 불리했다. 게다가 북한 선박은 40mm 2연장 기관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가평정에는 육군용의 37mm 대전차포와 12.7mm 중기관총만 탑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속도도 북한의 함정이 가평정보다 빨랐다. 하지만 함장인 김상도(金相道) 소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평정을 북한 함정에 가깝게 접근시켜서 포탄을 명중시켰다. 결국 50분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전투는 북한의 함정이 북쪽으로 달아나는 것으로 끝났다.
가평정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포격으로 함수 부분에 손상을 입어서 이를 수리하기 위해 묵호항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수리를 마치고 다시 출동해서 오후 3시 무렵에 옥계 인근의 해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상륙을 마친 북한군이 3~4척의 발동선에서 물자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목격한 가평정은 해안 가까이 접근해 북한군에 포격을 가했다. 북한군은 하역을 중단하고 산지로 이동해 박격포로 응사해왔지만 가평정에 닿지 않았다. 가평정은 해안에 있던 발동선 1척을 파괴하고, 다른 1척을 노획하여 그날 오후 5시 무렵에 묵호항으로 귀환했다.

4. 결과


묵호사령부는 육군과 경찰 병력 등과 연합해서 북한군을 섬멸하려 했다. 하지만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에 퇴로가 차단될 위험이 커지자 6월 26일 포항으로 철수했다.
옥계전투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상륙부대를 싣고 남하하던 북한 함정과 전투를 벌여 패퇴시켰으며, 오후에는 북한군 상륙정을 파괴하고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육전대를 구성해서 해안에 상륙한 북한군을 공격해 30여 명을 사살했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 대한민국 해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이자 최초의 승리였다. 그래서 지금도 강원도 동해시에 사령부가 있는 해군 1함대는 해마다 6월 25일에 옥계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