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순아지매
한국의 시사만화. 원로 시사 만화가 정운경 화백이 여성지에 연재하였던 4컷 만화로 이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으며 2002년에 연재가 종료되었다.
1950년대에 여성지에 연재된 시사풍자만화로 여성지 연재시절에는 주로 여성지의 특성상 가정적인 분위기의 내용으로 연재되었으며 1960년대에 대한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매일 연재로 바뀌었고 1967년에 경향신문으로 이동하여 매일 연재하였다가 1975년부터 중앙일보 사회면에 연재되었다.
여성지 연재 시절에는 주부들의 애환을 풍자하는 내용 중심의 여성만화로 그려왔으나 조간지로 이동하면서 여성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점차 시사적이고 정치적, 사회적인 내용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바뀌면서 시사만화로 굳어지게 되었다. 주인공인 왈순아지매를 통해서 초창기에는 여성 및 주부들의 희노애락을 풍자하여 여성 독자들을 주목하는 역할로 나왔다가 조간지로 이동하면서 점차 이 때부터 정치, 사회적인 내용이 가미되었으며 주인공 역시 초창기와는 다르게 조간지에서는 정치적, 사회적인 대사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여성지에서 조간지로 이동을 하다보니 여성 독자들만을 위한 여성지에서 남녀 특히 남성이 주로 봤던 조간지로 이동을 하였던 점 때문에 점차 조간지 연재에서 여성적인 색채를 줄이고 정치, 사회적인 내용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바뀐 듯 싶다.
1963년에는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이성구 영화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2002년 12월에 70대가 다 되가는 시점에서 건강문제 등을 이유로 중앙일보를 퇴사했고, 이에 따라 만화가에서 은퇴하여 50여년을 이어온 연재도 이 때 종료하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부천시 자유시장 입구에 주인공 왈순아지매의 석상이 세워졌으며 이 일대를 왈순아지매 거리로 명명하였다. 시장의 주 고객이 주부층이라는 점과 주인공이 아지매라는 점이 맞아보여서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여성지에 연재된 시사풍자만화로 여성지 연재시절에는 주로 여성지의 특성상 가정적인 분위기의 내용으로 연재되었으며 1960년대에 대한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매일 연재로 바뀌었고 1967년에 경향신문으로 이동하여 매일 연재하였다가 1975년부터 중앙일보 사회면에 연재되었다.
여성지 연재 시절에는 주부들의 애환을 풍자하는 내용 중심의 여성만화로 그려왔으나 조간지로 이동하면서 여성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점차 시사적이고 정치적, 사회적인 내용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바뀌면서 시사만화로 굳어지게 되었다. 주인공인 왈순아지매를 통해서 초창기에는 여성 및 주부들의 희노애락을 풍자하여 여성 독자들을 주목하는 역할로 나왔다가 조간지로 이동하면서 점차 이 때부터 정치, 사회적인 내용이 가미되었으며 주인공 역시 초창기와는 다르게 조간지에서는 정치적, 사회적인 대사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여성지에서 조간지로 이동을 하다보니 여성 독자들만을 위한 여성지에서 남녀 특히 남성이 주로 봤던 조간지로 이동을 하였던 점 때문에 점차 조간지 연재에서 여성적인 색채를 줄이고 정치, 사회적인 내용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바뀐 듯 싶다.
1963년에는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이성구 영화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2002년 12월에 70대가 다 되가는 시점에서 건강문제 등을 이유로 중앙일보를 퇴사했고, 이에 따라 만화가에서 은퇴하여 50여년을 이어온 연재도 이 때 종료하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부천시 자유시장 입구에 주인공 왈순아지매의 석상이 세워졌으며 이 일대를 왈순아지매 거리로 명명하였다. 시장의 주 고객이 주부층이라는 점과 주인공이 아지매라는 점이 맞아보여서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