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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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식회사'''
中央日報 株式會社
JoongAng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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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8aa01><colcolor=#fff> '''국가'''

'''설립'''
1965년 3월 17일
'''창간'''
1965년 9월 22일
'''창업주'''
이병철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상암동)
'''대표자'''
박장희, 홍정도
'''임원진'''
[ 펼치기 · 접기 ]
'''발행인 · 대표이사 사장''' 홍정도
'''인쇄인 · 대표이사 부사장''' 박장희
'''주필 · 부사장''' 이하경
'''칼럼니스트 · 전무''' 오병상
'''편집인 · 전무''' 최훈
'''광고사업본부장 · 상무''' 정선구
'''경영지원실장 · 상무보''' 권순국
'''뉴스플랫폼담당 · 상무보''' 남궁유
'''논설주간 · 신문제작총괄 · 상무보''' 고현곤
'''광고사업부본부장 · 상무보''' 한정희
(사외이사 제외)

'''업종명'''
신문발행업, 정기간행물출판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임직원'''
628명 (2019년 12월)
'''매출액'''
2,799억 8,040만 원 (2019년 연간)
'''영업이익'''
65억 2,320만 원 (2019년 연간)
'''순이익'''
607억 5,807만 원 (2019년 연간)
'''그룹'''
중앙그룹
'''최대주주'''
'''중앙홀딩스(유) (지분 64.73%)'''
'''종속기업

관계기업'''
JTBC(주)
JTBC스튜디오(주)
(주)제이콘텐트리
JTBC PLUS(주)
조인디(주)
중앙일보에스(주)
중앙일보엠앤피(주)
중앙일보디자인(주)
JOONGANGILBO USA, Inc.
톡트위원회(주)
(주)차이나랩
'''사이트'''
<colbgcolor=#e8aa01><colcolor=#fff> '''홈'''

'''SNS'''

'''유튜브'''
'''링크'''

'''구독자'''
6.87만명[A]
'''조회수'''
64,331,554회[A]
'''가입일'''
2014년 11월 21일
1. 개요
2. 사시
3. 사가
4. 사옥
4.1. 구 J빌딩 사옥
4.2. 구 순화동 사옥
4.3. 신뢰관 사옥(현재 사옥)
5. 지배 구조
6. 로고
7. 역사
8. 성향
8.1. 경제면
8.2. 대북정책 관련
8.2.1. 국제면
8.3. 좌클릭?[2][3]
10. 이슈패키지
11. 자회사
12. 산하 기관
13. 자매지
13.1. 현존
13.2. 과거
14. 중앙일보 대학평가
15. 여담
16. 관련 인물
17. 관련 문서
18. 관련 문헌
19. 역대 임원
19.1. 회장
19.2. 부회장
19.3. 사장
19.4. 수석부사장
19.5. 부사장
19.6. 부사장대우
19.7. 전무
19.8. 전무대우
20. 역대 법정등록인
20.1. 발행인
20.2. 편집인
20.3. 인쇄인
21. 역대 주요 간부
21.1. 논설고문
21.2. 주필
21.3. 논설주간
21.4. 신문제작총괄
21.4.1. 논설실장
21.4.2. 수석논설위원
21.5. 편집국장
21.6. 편집국장대리
21.7. 편집국장대우
21.8. 뉴스제작국
21.9. 비즈솔루션본부
21.10. 뉴스플랫폼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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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조간 종합 일간 신문.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출범하였으며, 1999년에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었다.[4] 현재는 중앙그룹 계열 중앙일보(주)에서 발행하며,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상암동)에 입주해 있다. 사명은 '중앙일보(주)'. 원래는 '(주)중앙일보'였으나 사명을 2018년 3월에 변경하였다. 원래는 석간 신문이였으나, 1995년 4월부터 조간 신문으로 전환하였다. 의외로 손대는 것이 꽤 많아서 한국 신문사 중에서는 상당히 일찍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고[5], 자사 언론에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오픈토리라는 이름의 위키위키 서비스를 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아시아 최초의 인터넷 신문'이라고 부른다.
신문의 논조와 정치적 성향은 자타공인 보수 우파 성향이며, 또한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보수 우파 신문의 삼대장이자 신문 시장을 독과점하는 족벌 언론 트리오인 조중동이라고 묶여 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아무리 조중동이라고는 하지만, 신문이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고 사양 산업이 되는 세계적인 추세는 피할 수 없었다. 일단 ABC 협회의 신문 유료부수 인증 기준으로 보면, 2020년에 발표된 2019년분 유료부수가 674,123부라고 나왔는데, 최근 몇년간의 중앙일보 유료부수 하락세가 상당히 가파르다. 참고로 이 유료부수 숫자조차, 신문 항목의 내용에도 나와있듯이 대부분 뻥튀기 가짜 유료부수인지라, 언론 업계에서도 이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6] 한편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조사에서 중앙일보의 열독률이[7] 14.4%로 조사되었던 것이 2020년 조사에서는 '''1.4%'''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여년 만에 신문 열독률이 '''10분의 1 수준'''이 된 것. 한 때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을 자랑하던 조선일보조차 매체 영향력이 급속도로 쪼그라든 세상에서[8], 중앙일보 또한 이런 상황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한편 종편에서 JTBC가 확실하게 진보 진영에 소구하는 것에 성공하며 매출이나 뉴스 신뢰도 측면에서 1위를 점유하게 되면서, 계열사인 중앙일보의 입지가 그룹 내에서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일례로 급격히 하락하는 신문 유료부수를 들 수 있는데, 다른 종이신문들과는 달리 본사 차원에서 억지로 유료부수 숫자를 방어하면서 '거품 부수'를 유지하는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언론계에 많다. 또한 JTBC가 손석희를 보도담당 사장으로 영입한 이후부터는 중앙일보 소속 기자들 중 장래성을 인정받고 능력있는 젊은 인재들이 JTBC 보도국 쪽으로 거의 넘어가기도 했고, 또한 대략적으로 10년 이내로 중앙일보 쪽의 보수 성향 고위직 간부들이 무더기로 정년퇴임할 계획이며, 일단은 잠정적으로 신문사 고위직들과 홍정도 사장 쪽과의 분쟁이 중지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홍씨 일가에서 종이신문을 최대한 버리려고 하고 있고, 특히 홍정도 사장이 기회가 될 때마다 매년 종이신문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2021년 2월 현재 네이버 뉴스 카테고리의 구독자수가 500만이 넘는 유일한 매체가 중앙일보라고 알려져 있는데,[9] 종이신문 매출로 따지면 중앙일보가 해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긴 하지만 최소 포털사이트 기사 점유율에서만큼은 중앙일보가 다른 조중동 멤버인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영향력을 뛰어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도 결정적인 맹점이 있다. 하나는 포털 사이트를 통한 온라인 뉴스 소비자들이 포털 사이트에서의 수많은 기사들의 개별적인 출처를 특정 매체 고유의 브랜드로써 구별하여 인식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이다. 아무리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중앙일보 채널의 구독자가 몇 백만이라고 할지라도, 그건 수많은 사용자들이 여러 매체를 대상으로 한꺼번에 구독 버튼을 누른 행위의 결과일 뿐이지, 과거에 집집마다 신문을 한 부씩 구독하며 읽었던 것처럼 특정 매체를 향하여 충성도 높은 독자로서 해당 매체의 보도 방향을 오롯이 추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0년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중앙일보는 '영향력 있는 매체' 조사와, '신뢰하는 매체' 조사에서 모두 10위권 내에도 들지 못했다. 이는 계열사이자, 중앙일보의 보수적 논조와 정반대의 진보적 논조를 보이는 종편 채널인 JTBC가 '영향력 있는 매체' 조사와 '신뢰하는 매체' 조사에서 모두 전체 5위권 내에 꾸준히 자리잡으면서 지상파 채널들과 나란히 경쟁하고 있는 상황과 완전히 대비되는 것이다. 참고로 10년 전인 2010년도의 '언론수용자 조사' 때까지만 해도, 중앙일보는 매체 영향력과 신뢰도 조사에서 모두 5위 정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의 온라인 집중 전략에도 불구하고, 매체 영향력과 신뢰도의 추락을 막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온라인 컨텐츠 판매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전체 신문사 매출에서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2020 신문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업계의 종이신문 매출에서 컨텐츠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비율이 3.4%로 계산되었는데, 신문 구독 및 판매에 해당하는 지대 수입은 이보다 많은 16.5%였으며, 행사나 이벤트를 통해 벌어들이는 기타 사업 수입은 12.7%였고, 광고 수입은 67.3%나 되었다. 전체 종이신문 매출 규모에서 보면, 포털에 기사나 컨텐츠 판매를 통해서 벌어 들이는 매출은 그야말로 푼돈인 셈.[10]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온라인 유료 구독 컨텐츠의 강자인 넷플릭스의 경우, 2020년 연말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유료 구독 계정이 약 380만개 정도인데, 여기서 발생한 한국에서의 구독료 매출이 2020년 한 해동안 약 5173억 원 정도였다고 발표된 바 있다. 대형 언론사들이 수 백만 네이버 뉴스 구독에서 벌어들이는 뉴스 전재료 수익 및 포털 광고비 배분액이 많아 봤자 매년 수십 억 수준에 불과한 것에 정확히 대비되는 것이다.
게다가 포털사이트를 통한 온라인 뉴스 구독자들은 유료 뉴스 구독에 대한 지불 의사조차 없다. 일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0년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유료 뉴스 이용 의사가 있는 사람은 만 18세 이상 국민의 불과 '''1.8%'''밖에 안 된다. 한 마디로 네이버나 다음 포털 뉴스의 수많은 이용자들도 포털 사이트의 뉴스가 공짜니까 구독을 하고 읽어 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온라인은 별로 큰 돈이 안 되고, 여전히 신문사 매출의 80% 이상이 여전히 종이신문의 광고 매출과 종이신문 판매료에서 발생하는 판에, 아무리 포털 사이트에서 온라인 기사 클릭수 장사를 해봤자, 회사의 매출 신장의 면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결국 미국의 뉴욕타임즈처럼 압도적인 규모의 온라인 유료 구독자 성장세를 통해 종이신문 광고 매출 하락세에 따른 손해를 뛰어 넘어, 아예 온라인 유료 구독 매출이 종이신문 매출 규모를 넘어서게 되는 모델이 아니라면, 한국처럼 철저히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송고하여 클릭 장사를 하는 특수한 형태의 모델은 신문사의 매출 전략 측면에서 매우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뉴욕타임스는 2020년 기준으로 약 600만 명의 온라인 유료 독자로부터 우리 돈으로 약 8000억 원의 막대한 연간 온라인 구독료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나라 언론의 경우는 네이버에서 아무리 구독자 수백만 명을 유치해서 뉴스 어뷰징을 통해 엄청난 클릭 장사를 해봤자, 구독자들은 뉴스 구독에 따른 구독료를 해당 언론사에 지불할 의사가 없고, 포털에 받는 전재료 및 포털 광고 분배료 수입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연간 수십 억 원에 불과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심지어 온라인 매체 전략의 세계 최강자로 불리며 온라인 유료 구독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조차도 여전히 종이 신문에서 여전히 매출의 나머지 절반 가량이 발생한다는 점이 장기적 불안요소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판에, 사양산업이 되어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해진 '종이신문'의 지면 광고에 신문사 매출을 여전히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신문사들은 왜곡된 매출 구조의 사정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자매지로는 중앙일보 본사와 워싱턴 포스트와의 돈독한 관계[11] 덕에 2000년대 초반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국제 영자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코리아[12], 중앙 데일리(주 6일 발행)와, 중앙선데이[13], 흑역사가 된 중앙경제신문[14] 등이 있다. 노조는 미가맹이며[15], 종편 출범 이후부터 줄곧 JTBC와 함께 연합 노조를 구성하고 있다. 언론 업계에서 유일한 신문-방송 연합 노조이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은 업무나 경영의 형태가 판이하게 다른 업종인지라, 머지않아 노조가 분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2. 사시


  •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진실을 과감/신속하게 보도하고 당파를 초월한 정론을 환기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밝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고취한다
  • 사회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경제후생의 신장을 적극 촉구하고 온갖 불의와 퇴영을 배격함으로써 자유언론의 대경대도를 구축한다
  • 사회공기로서의 언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이성과 실용을 겸비한 건전하고 품위있는 민족의 목탁이 될 것을 자기한다

3. 사가


(1절)겨레를 하나의 마음에 묶어
뜨겁게 타오르는 우리의 정성
인류의 고동 가슴에 품고
자유언론 대도를 우리는 간다
(후렴)아아 푸른깃발 우리의 기상
무궁한 내일의 보람을 안고
나가자 약진하자 중앙일보 중앙일보
(2절)참되고 슬기롭게 오늘을 살며
드높이 펼쳐가는 우리의 이상
내일의 번영 다지고 다져
사회정의 대도를 우리는 간다
  • 작사는 박두진, 작곡은 장일남이 맡았으며 1975년 9월 22일[16]에 제정되었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전까지는 후렴 가사가 '중앙일보 동양방송'이었다.[17]

4. 사옥



4.1. 구 J빌딩 사옥


'''1965년'''에 준공되었다. J빌딩은 1980년대 초반까지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사옥이었으나[18], 1985년 근처에 지은 신사옥[19]으로 이전하였다. 다만 신 사옥에 입주하고 10여년이 지나고서 찾아온 외환위기로 인해 경영난이 왔고, 문제의 순화동 사옥을 삼성생명에 매각했고 '''삼성생명일보빌딩'''으로 개칭했다.
그러나 2011년 중앙일보 사옥에 JTBC가 입주하자, 홍석현 측에서 중앙일보를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J빌딩으로 26년 만에 다시 이주시켰다. 그러나 2015년 JTBC가 상암동 DMCC 타워로 이전하였음에도 중앙일보는 계속 J빌딩에 잔류해있다. 중앙일보 건물 일부를 타 기업[20]이 임차하고 있어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10월, 중앙일보가 JTBC가 사용했었던 사옥(신뢰관)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기존 중앙일보가 사용했던, J빌딩엔 중앙그룹내 광고영업부문, 중앙일보에스가 사용하고 있다.

4.2. 구 순화동 사옥


  • 1985년에 완공된 사옥, 2011년까지 사용하였다. 현재는 중앙일보, JTBC 모두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다. 건물 안에 스튜디오가 설치되었고 방송을 염두에 두고서 설계된 것이 특징. 소유주는 삼성생명인데, 1999년에 중앙일보가 재정난이 오면서 삼성생명에 건물을 팔았기 때문이다. 바로옆이 J빌딩이다.

4.3. 신뢰관 사옥(현재 사옥)


  • 2020년 10월 기존 JTBC가 쓰던 사옥에 중앙일보가 입주하였다. 출처

5. 지배 구조


'''주주'''
'''지분'''
중앙홀딩스(유)
64.73%
홍석현
15.63%
씨제이올리브네트웍스(주)
9.24%
홍석준
0.12%
홍석규
0.12%
홍석조
0.12%
홍라영
0.03%
기타
10.01%
출처

6. 로고


'''▲ 과거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로고'''
사명의 머리글자를 본뜬 로고를 사용했는데, 한자 '''中(가운데 중)'''자가 삼각형으로 모인 형태였다. 이 로고도 자세히 보면 '中央(중앙)'이라는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이 로고는 1965년부터 1995년까지 쓰였다. 현재의 로고는 1995년 창간 30주년에 즈음하여 바뀐 것으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겠다.'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인데, 주황색 원은 눈과 입, 알파벳 J자는 귀를 뜻한다.

7. 역사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언론사업에 관심을 가진 건 해방 후 <대구민보> 소유주 '을유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했을 적이었다. 당시 그는 사업확장에 치중한 터라 언론사업에 신경쓰지 못했다가, 1961년 그룹 비서실이 '신문 창간계획'을 내면서 신문사 설립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1963년 신문발간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64년 서소문 빌딩을 착공하고 1965년에 정식 설립 후 창간했다. 초대 사장으로는 이병철, 부사장으로는 유민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 편집국장은 이원교가 각각 선임되었으며, 창간 당시 이병철 초대 사장이 직접 윤전기 시동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1966년 사카린 사건으로 이병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자 원종훈 상무가 잠깐 사장을 맡았다가, 1968년 이병철 회장, 홍진기 사장 체제로 바꾸면서 홍진기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고,[21] 1974년 12월 21일 동양방송을 합병해 사명을 '(주)중앙일보·동양방송'으로 변경하고 1978년 발행부수 1천만 부를 돌파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방송부문을 한국방송공사에 넘기고 원래 사명으로 환원했다. 1984년에 중구 순화동 신사옥으로 옮기고 1988년 <중앙경제신문>을 창간했다. 1992년 제작방식을 납활자 대신 CTS 체제로 바꾸고 1995년 조간 전환 후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고, 10월부터 가로쓰기를 실시했다.
그래도 해방 이후에 발간된 신문이라 역사 문제에서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 자유롭다고들 하나, 초대 회장 홍진기가 일제시대 판사로 독립운동가를 처벌한 게 드러나서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참고로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을 때 중앙일보에선 여운형을 까면서 좌익-우익 균형 논란 등 물타기 스킬을 시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위키가 저 사설의 일본어판을 근거 삼아 여운형을 친일파라고 기록해놓기도 했다. 여운형이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비록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신문사이지만 기묘하다면 기묘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1999년 삼성그룹에서 ''' 계열분리'''됐다. 현재는 이건희 회장의 처가인 홍씨 일가[22] 소유이다. 그러나 당시 홍석현 회장이 당시에 중앙일보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명의만 바꾸어놓은 위장 계열분리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JTBC 출범 당시, 어느 전직 중앙일보 기자가 했다는 '''"신문은 사실상 이씨 것(삼성가)이고, 방송은 홍씨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이 시사in에 보도되기도 했다.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는 '중앙일보의 실질적인 의결권은 이건희 회장이 행사한다는 계약서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삼성이 중앙일보를 분리하려고 하긴 했지만, 홍씨 일가가 지분을 인수할 돈이 없었고, 궁여지책 끝에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된 주식을 차명으로 홍석현에게 넘기고, 의결권은 이 회장이 행사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23]
일례로 삼성 특검 당시 3차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중앙일보 임광호 재무이사는 "홍석현 회장이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141억원을 증여받아 삼성 계열사들이 가진 중앙일보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드는 자금을 충당한 것"이라고 증언하여, 위장 계열분리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삼성 측 변호인은 "삼성에서 증여받은 돈이 아니라, 홍석현 회장이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삼성 비서실에서 보관했던 돈"이라는 식으로 군색한 변명(...)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위장 계열분리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들이 꽤 나온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가 1999년 계열분리를 선언한 뒤에도, 중앙일보 편집국 내부의 정보 보고 내용이 하루 두 번씩 삼성그룹 구조본[24]으로 전달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중앙일보는 별의 별 이유로 삼성에 돈을 요구하는 일이 많았는데, 심지어 수해를 입은 중앙일보 지하주차장 수리비까지 삼성그룹 본사에 요구해서 삼성 구조본 재무팀에 있는 담당자가 몹시 힘들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삼성그룹 구조본의 김인주 사장은 사무실 창밖에 내다보이는 중앙일보 건물 끝에 있는 'J'자를 가리키면서 '도둑놈'(...)이라고 했다고.
2011년 3월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에 대해서는 '일본침몰'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운명론, 지진 여파에 따른 한국의 반사 이익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칼럼을 실었다가 피해자들을 조롱하냐고 한일 양국에서 신나게 까이기도 했다.
2013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 주요 쟁점에 대한 사설을 자사와 반대편 논조 신문인 한겨레와 비교, 분석하는 지면을 기획했다. 여태껏 국내 주요 언론에서 시도되지 않은데다가 주요 쟁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몇년 가지 않아 이 기획도 흐지부지 되었다.
2014년 4월 14일자부터 "벽을 깼다"라고 크게 어필하며 기존에 여러 메이저 일간지에서 고수해오던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스포츠 - 오피니언으로 이어지는 형식적 지면 편집을 타파하겠다며 콘텐츠 내실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중견 기자들의 분석 및 심층 보도 기사를 대폭 확대하고 요일별 프리미엄 면을 확충한다고 밝혔다. 허나 실상은 각 면에 "종합", "정치" 등으로 나오던 구획 이름을 그냥 톱기사 제목을 그대로 박아넣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혁신이라 보기는 애매하다.

8. 성향



조중동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보수 우파적인 논조이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CBS 라디오 인터뷰에 따르면, 종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진보적 논조라고 평가 받는 계열사인 JTBC와는 달리, 중앙일보는 50년 넘는 오랜 시간동안 보수 언론으로 자리잡아 온 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전두환 신군부언론통폐합으로 방송 사업을 빼았긴 경험도 있고, 1988년도에는 자매지 <중앙경제신문>의 오홍근 기자가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으며, 노태우에게도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적이 있었으니 군부에게는 부정적이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태생적인 한계로 노골적으로 재벌 옹호 노선을 보이고, 대선에서는 김영삼이회창을 노골적으로 밀어주면서 꾸준히 보수 노선을 띄었다. 한편 종편 출범 이후 손석희 사장이 영입된 뒤 JTBC가 급격히 성장할 때 진보적 성향의 기자들이 대거 JTBC 보도국으로 이동했고, 중앙일보에는 보수적 성향의 기자들만 주로 남게 되었는데, 이런 일을 거치면서 중앙일보의 보수 노선이 과거에 비해 강화되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를 즈음하여 방송국 쪽으로 인력 유출이 많아진 이유를 들어 중앙일보에서 신입 수습기자와 더불어 타 언론사 출신의 경력직 평기자들까지 대거 채용했는데, 이때 집중적으로 중앙일보에 입사한 평기자들이 대부분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이 많은 보수적 간부들, 그리고 중앙일보의 보수 노선에 찬성하며 대거 입사한 평기자들 위주로 개편되면서, 자연스럽게 중앙일보 편집국이 과거에 비해 훨씬 보수적 성향으로 재구성되었다.[25]
2000년대 초반에는 잠시 조중동 중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적 색채를 띌 때도 있었다. 일례로 2003년에 홍석현 회장이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놓고 "'조중동'이라는 상징이 중앙일보 내부에서는 불편한 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앙일보가 지향하는 가치가 동아일보, 조선일보하고 상당 부분 같을 수 있지만, 2~3년간 지면을 통해 달리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에 홍석현 회장이 삼성 X파일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이 사건 때문에 홍석현이 주미대사 직을 임명 5개월만에 사퇴한 뒤부터는 참여정부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으며, 이 때를 즈음하여 중앙일보도 다시 원래의 보수적 논조로 되돌아 갔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국면 때는 조선일보 만큼이나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당시 한국기자협회나 언론노조 등에서 가장 선거 중립성을 잃은 신문사로 중앙일보를 꼽은 기자들 사이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중앙일보와 홍석현 회장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었는지, 심지어 대선 이후 홍석현 회장이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몇 개월 뒤 중앙일보 부장단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정권 교체가 될 수도 있고, 신문이 그렇게 무리하게 베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소연 했던 일화가 보도됐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당시 중앙일보 내부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고 한다. 하나는 "(홍석현) 회장이 참 괜찮은 사람인데 밑에서 보좌를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입장을 바꿀 수가 있는가? 사실 대선과정에서의 보도 방향은 (홍석현 회장) 자신이 모두 결정해놓고, 이제와서 아랫 사람들에게 떠넘기느냐?"는 것이었다고.#
아무튼 조선일보가 한국의 전통적인 반공주의 보수 우익 노선, 즉 '이념 우파' 성향이라면, 중앙일보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 노선에 가까운 '시장 우파' 성향에 가깝다. 물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그룹이라는 재벌 계열 언론사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26] 정치나 경제 이슈를 제외하고는 조중동 중에서 사회, 문화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성향이라는 평가가 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섹션별로 논조가 조금씩 다르다. 정치면이나 경제면에서는 조선일보까지는 아니어도 어디까지나 보수 우파적 성향이며 사회, 문화면에서는 조중동 중에서는 비교적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논조를 보이기도 한다.[27][28]
같은 회사 소속인 JTBC와 함께 한경오랑 비슷할 지경의 친페미니즘 언론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중앙일보에서 온라인 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포털사이트 클릭수 장사에 몰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평가가 있다.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층 구독자까지 포섭하려는 조선일보와 달리 극우층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은 편이다. 일례로 2020년 8월 18일자 종이신문 지면에는 대표적 극우인사인 전광훈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고도 마스크를 내린 채 통화하는 모습을 떡하니 싣는 등 극우층과 상당 부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또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19 대량 감염 사태가 터진 이후 전광훈 측의 일방적인 입장문을 전면광고 형태로 충실히 실어준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중앙일보였다.

8.1. 경제면


경제면에서는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고 재벌의 기득권을 옹호한다. 그리고 노조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면을 보여준다. 원래 중앙은 태생 자체가 삼성이므로 이름만 다를 뿐 삼성과 연관 대기업의 입장 대변에 충실한 친재벌 신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29]이나 매일경제신문 같은 경제지들과 비슷한 성향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논조 자체는 매일경제와 비슷한 점이 많고, 한국경제보다는 훨씬 유한 편이다.[30]
한편 2016년 개성공단이 사전조치 없이 급작스럽게 폐쇄된 후, 이렇다 할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던 입주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면모를 발하기도 하였다. 주류 경제지인 한국경제신문이 진영논리에 함몰돼, 좌파(?) 공격 및 "신문사 운영"에만 몰두하는 동안[31], 대국적인 안목을 발하며 경제지 역할까지 맡았던 것. 참고로 이는 전통적인 경제-산업부 논조라기 보다는, 중앙일보 특유의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이 표명된 논조라는 분석이 많았다.

8.2. 대북정책 관련


대북정책 면에서는 조선, 동아와 일부 논지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는 '남북경제협력을 통해서 북을 세계자본주의 체계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햇볕정책과 묘하게 유사한 주장 또는 더 나아가 GDP의 1%를 대북경제지원에 쓰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는 사주인 홍석현 회장의 통일에 대한 관심과 신념에서 기인한 것으로, 젊은 시절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분단 조국의 현실을 절감했으며 +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본인이 어린 시절 대산 종법사로부터 '통일에 관해 공부를 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 94년 북핵 위기 당시 국면 전환에 기여한 DJ와 접견한 후 여생동안 관심을 갖고 진력을 기울이는 이슈로 삼았던 것이 '''차츰''' 신문사 경영에도 알게모르게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의 대북 정책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소유와 편집이 분리되지 않은 채, 일개 사주의 가치관에 언론의 논조가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33]
한편 배명복 칼럼니스트 '''·''' 대기자, 김영희 명예대기자처럼 남북관계에서 이념보다 현실을 반영해 실효성있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정식 지면으로 발언권을 얻고있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다음 문단에서 소개할 내용은 이들의 주장을 반영한 중앙일보 기사가 실효를 거둔 사례라 할 수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부터 줄곧 공을 들인 개성공단 및 철도협력 건이 3년 동안 공회전하며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제재 완화 없이도 남북이 할 수 있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배명복 칼럼)[34] 이른 시일 내에 착수할 것을 촉구하는 제언을 하여, 2019년 5월 8일 정부가 해당 사업 착수를 천명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 사업은 특히 같은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통해 지지를 표명하는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낸데다, 지난 2년 동안 인도적 지원에 대해 UN이 결의까지 하고도 진척은 지지부진한 시점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에, 중앙일보에서(by 배명복 대기자, 정효식 특파원) 짚은 것처럼 실현될 경우 예년보다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6월 30일에 열린 남북미정상회담에도 비판 및 비관적인 전망을 낸 문화일보, 동아일보와 달리 중앙일보는 현장의 분위기와 미국, 북한측의 의전[35] 및 통역, 향후 쟁점이 될 이야기(맨 마지막 2개 문단 참조)를 다루는데 공을 들이기도 했다.

8.2.1. 국제면


국제면에서는 친중을 띄는 면이 있다. 중앙일보 내에서도 친중에 가까운 글들이 있고 * 네이버와 협업으로 차이나랩이라는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친중적 움직임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심지어는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느냐는 눈초리도 있다.
대체로 중앙일보의 친중적 움직임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이익이나 관심사를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언론 비평계에서 많았다. 결국 원래 중앙일보 경제면의 논조대로 시장 우파적 성향에서 기인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중앙일보가 중국연구소를 출범시킨 것이 2007년이었는데, 이 때가 마침 중국으로 해외 자본이 대거 몰려들던 때였고, 동시에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도 왕성하게 이뤄지던 시기였다. 결국 신문의 주된 광고주인 기업들의 이익에 부응하는 움직임이었다는 것.
다만 최근 들어서는 홍콩 민주화운동이나 중국 공산당의 권력구조, 그리고 화웨이의 지분구조 등에 대한 기사를 꾸준히 내보내는 등 10여년 전과는 다른 논조를 띠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반중감정 격화 등의 영향도 없진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주로 탈홍콩 유치전이나 반도체업계 등 한국의 경제적 현안과 맞물리는 주제 위주로 다루는 등 단순한 반공주의보다는 본래의 시장 우파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 원래 중앙일보 소속 기자들이 친중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는 보수 우파 성향의 기자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8.3. 좌클릭?[36][37]


2016년 들어서는 강경 보수 우파였던 김진 논설위원이 그만두는 등[38] JTBC손석희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더욱 우파 색채가 옅어지는 면모가 보인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되려 중앙일보 내부에서는 'JTBC가 너무 왼쪽으로 가면 중앙일보 논설위원들이 (보수적인 논조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한다.[39]
어쨌든 이 시기에는 기존의 우파 성향 구독자들이나 조선, 동아 같은 타 우파 언론으로부터 잠시 '좌클릭'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촛불집회도 탄핵반대집회도 다 안 좋은 것이라는 뉘앙스의 논평을 달거나 촛불집회를 조금 거시기(?)한 내용으로 애매하게 서술한 기사들을 보면 그리 완전하게 옅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쨋든, 중앙일보가 개혁성을 보일 때도, 중앙일보 구독층이 계속 이탈해서, 수익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 오면, 논조 기조를 다시 우파적으로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는 분석도 있었는데, 실제 2016년과 2017년 탄핵정국 이후 삼성그룹의 광고가 바닥을 치고[40], 이 때문에 회사의 순이익이 폭락하고, 보수 우파 구독자들의 열독률이 떨어지자, 다시 기존의 우파 논조로 돌아서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런 보수 우파 논조로의 회귀는 홍석현 전 회장의 아들인 홍정도 대표이사 라인과, 중앙일보 간부급 기자들 사이의 알력다툼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례로 2017년 말에 중앙일보는 일요일에 발행하던 '중앙선데이'를 토요일 발행으로 바꾸고, 중앙선데이 자체를 자회사인 중앙일보플러스로 옮긴 뒤, 50대 이상의 시니어급 기자들을 배치하여 대량으로 서서히 구조조정(사실상 해고)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풍문이 언론계에 크게 돌았다.분석 기사 이런 계획에 시니어급 기자들은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결국 시니어 기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구조조정 계획은 백지화 되었지만, 갈등 자체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또 다른 예로 2018년 11월에 홍정도 라인인 반용음 씨가 중앙일보의 대표이사로 내정되었는데, 불과 40일만에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40일만에 낙마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결국 이하경 주필 등으로 대표되는 간부급 기자들과의 마찰로 인해 밀려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반용음 대표이사는 삼성 구조조정본부 출신으로, 원래 나이 많은 신문 기자들을 구조조정하고, 전폭적으로 신문을 디지털 체제로 변환시킬 계획으로 홍정도가 내려보낸 인물이었는데, 심각한 갈등 끝에 우파적인 시니어 기자들이 반용음 대표를 결과적으로 내쫒았다는 것. 이 일은 우파적인 시니어 기자들을 구조조정한 뒤, 중앙일보를 완전히 디지털로 바꾸려는 홍정도와, 종이신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이 많은 신문 기자들 사이의 충돌이 가시화 된 일이었다는 분석이다. 분석 기사
또한 중앙일보가 2018년 12월 이후 편집 시스템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나이 많은 논설위원들의 규모와 영향력이 대폭 커지면서 보수적인 논설위원들의 입김이 지면 편집에 반영되는 비율이 커졌고, 이 영향이 오피니언이 아닌 일반 기사의 논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이 과정에서 신문 지면에서 외부 기고에 비해 내부 논설위원 칼럼의 비중이 매우 커짐과 동시에, 보수적 논조의 보도 또한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이 때를 즈음하여 신문의 일반 보도면이 줄고 오피니언란이 기존의 4면에서 6내지 7면으로 크게 늘었는데, 이 대폭 늘어난 지면을 보수적인 성향의 나이 많은 논설위원들의 기명 칼럼으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개편에 관한 내용은 여담 문단에 후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에게 집권시 내각 참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묘하게도 이 기사가 난 이후 중앙일보에서 문재인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기사나 사설, 칼럼[41]등이 거의 안 나왔었다.
하지만 홍석현이 미국 특사 참여만 하고 문재인의 내각 참여 요청을 고사하며,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추진하면서 다시 '''반문재인''' 성향이 강해졌다. 트위터에서는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1위인 문재인의 이름은 적지 않고 2위인 박정희의 이름은 적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a
3대 메이저 신문이란 위상과는 다르게 신천지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중이다. 인터넷 뉴스에 신천지 뉴스가 떴다 하면 중앙일보인 수준인데, 신천지가 각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집행하는 광고성 기사를 특히 중앙일보가 중점적으로 수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우파 언론이지만 ''''친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다.''' 우파 언론들이 기본적으로는 메갈리아, 워마드 등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조중동을 같이 묶어서 중앙일보도 정론지 취급해주는 경향이 있었고, 같은 계열사 소속인 JTBC 뉴스룸이 워낙 친페미니즘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언론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윤김지영, 이나영 등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은하선 등의 인터뷰 기사가 자주 나오고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당시 언론 중에서는 드물게 워마드를 쉴드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성체 훼손까지 나온 성별 혐오, "표현 방식 동의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성향을 가진 JTBC와 중앙일보지만 특히 여성과 관련된 페미니즘 등 관련 기사에서는 성향과 논조가 별 다를게 없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20대 젊은 층에게 다소 보수우파적이긴 하나 그래도 그나마 치우치지 않은 인상을 주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학교 학내 언론인 연세춘추의 2013년 설문조사[42]에 따르면 자신을 보수우파라 밝힌 학생이나 진보라 밝힌 학생이나 구독률에선 중앙일보가 1위를 차지했다.관련 기사 그러나 2014년 6월에 있었던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43]의 청와대 국무총리 지명 파동에서 문 후보의 과거 발언들이 논란이 되자, 이게 KBS의 왜곡보도라는 지나친 제식구 감싸기를 선보여 언론의 의무인 객관성 확보가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사설1, 사설2하지만 페미니즘 옹호 이후 점점 구독자가 줄고있는 추세이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평범한 무슬림을 구분하고 이슬람포비아를 경계하는 뉘앙스의 기사나 사설, 칼럼 등을 한겨레와 함께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또한 이태원 클럽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당시에도 "방역에 위해가 되는 행태는 비판하되 성소수자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싣은 바 있다.
현재에는 좌우 가리지 않고 까이는 형국인 전두환이지만, 그 중에서도 중앙일보는 비판 수위가 높은 편이다. 동양방송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독재에 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중앙일보는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9. 비판 및 논란




10. 이슈패키지



11. 자회사


중앙그룹을 참고할 것.

12. 산하 기관


  •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구 공산권조사연구소-동서문제연구소-통일문제연구소. 북한정보 사이트 '북한네트' 운영.

13. 자매지



13.1. 현존


  • 일간스포츠: 과거에는 한국일보 자매지였다.
  • 중앙SUNDAY: 일요판이었으나 중앙선데이 창립 11주년이 되는 2018년 3월, 중앙선데이가 일요일 배달 신문에서 토요일 중앙일보 토요일판을 대신하여 전국 독자에게 배달하였다.[44] 판형은 중앙일보랑 크기가 같으나 제목이 파란색으로 다르다. 예술 관련 부가지를 끼워서 판다. 2007년부터 발행하였으며 주로 1주 동안의 관련 이슈를 모아 보도해 주간지랑 비슷한 성격이다. 탐사보도도 자주 실리는 편. 중앙일보(주)에서 운영하였으나, 2018년부터는 중앙일보에스(주)에서 운영하고 있다.
  • 월간중앙: 신동아나 월간조선의 작고 굵은 모양과는 좀 다른 전형적인 월간지 형태다.[45]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가 1988년 복간했으며 1995년 4월호에서 잠정 중단했다가 6월부터 제호를 '시사월간 WIN'으로, 1997년에는 '월간중앙 WIN'이 되었다가 1999년부터 제호에서 'WIN'을 뺐다.
  • 뉴스위크 한국판: 1991년부터 발행한 뉴스위크의 한국판. 자체 보도도 한두 꼭지씩 실린다.
  • 이코노미스트: 경제주간지.
  • Weekly 소년중앙: 어린이주간지. 아래 소년중앙의 실질적인 후신에 가깝다.

13.2. 과거


  • 문예중앙 (1977~2017)
  • 뮤직시티 (1989)
  • 소년중앙 (1969~1994)
  • 스테레오 뮤직 (1989~2000) - 2000년 SMMEDIA로 분사한 후 2004년 폐간.
  • 쎄씨 (1994~2018)
  • 여성중앙 (1967~1994/1998~2017)
  • 영레이디 (1984~1994)
  • 월간미술 (1976~1997) - 1997년 독립. 구 계간미술.
  • 음악세계 (1984~1989)
  • 하이틴 (1973~1994) - 구 학생중앙.
  • CALLA (1994~1998)
  • Seoul Eye (1995~1996)
  • 러시아 포커스(~2017): 러시아의 라씨스카야 가제타(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가 발행하는 영자지 'Russia Beyond The Headlines'의 한국어 판. 중앙일보가 배포를 담당한다. 러시아에 대한 뉴스와 정보에 대해서 다루는 월간지 형태이다. 정치,경제,한러관계뿐 아니라 문화와 러시아의 각종 여행지,밀리터리 정보에 대한것도 다루기 때문에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꽤 흥미로운 것이 많다. 그리고 서구의 시각이 아닌 러시아의 시각으로 보는 국제 정세[46]에 대한 기사와 칼럼들도 연재된다.홈페이지 하지만 본사에서 사업을 축소하면서 2017년부터 기사가 안 올라온다 [47]

14. 중앙일보 대학평가


중앙일보 대학평가 문서로

15. 여담


  • 1995년 4월 15일 석간신문에서 조간신문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 9일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전환하였다.
  • 위와 비슷한 시기 국내최초로 콩기름 윤전기를 도입하였다.
  • 한국 3대 메이저 신문 중에서는 넘버 3지만 신문 판형에 미치는 영향력만은 넘버 1이다. 1994년 한국의 일간신문 중 최초로 일반/경제/스포츠의 3섹션 분리 신공을 펼쳤으며,[48] 이 체제는 현재 발행하는 대다수의 중앙일간지가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3월에는 판형을 기존 판형보다 좀더 작은 베를리너판[49] 으로 변경했다. 이후 일부 지방지가 중앙일보에 이어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꿨으며, [50] 다만 광고주들은 '신문 크기가 줄었으니 광고 단가도 깎아 달라능!'이라 주장했지만 중앙일보 측에서는 작아진 만큼 광고 주목도가 높아졌다는 이유로 쿨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부터 전반적으로 신문 광고 시장이 쪼그라드는 터라, 이리저리 매출에 별 도움은 안 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한편 전국 일간지 중에선 국민일보가 2018년 12월 3일자를 기해 자사의 윤전기를 매각하고, 중앙일보 측에 인쇄를 의뢰하여 납품을 받는 방식을 통해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꿨다.
  • 2009년에 신문의 판형을 기존의 대판보다 작은 베를리너판으로 변형한 후, 공교롭게도 이 시점을 전후로 종이 신문 업계가 전체적으로 극심한 하락세를 맞게 되었던 터라, 당시의 경영 판단이 옳은 것이었는지 의구심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윤전기 도입을 위해 들여온 약 3700억 원 규모의 엄청난 차입금이 회사 경영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아, 재무제표 상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 차입금을 갚으려고 10여 년 째 이리저리 회사의 자산을 매각하거나 유상증자를 하고는 있지만, 2019년 현재도 차입금의 규모가 무려 1800억 원이나 되어 지속적인 재무적 부담이 되고 있다. 심지어 중앙일보의 유료부수 또한 2009년 기준 약 98만 부에서 2020년 발표[51] 기준 약 67만 부 규모로 쪼그라드는 바람에, 윤전기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했지만, 부수 확장에서 완전히 실패한 셈이 되었다. 이 때문에 다른 신문사로부터 대쇄[52]를 수주하는 방향으로 활로를 찾고는 있지만, 그닥 결정적인 매출 신장은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 2017년에 발표된 2016년 기준 ABC 유료부수 순위에서 동아일보에 약 1만 부 차이로 밀려서 3위가 되었다. 당시 중앙일보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뒤로 2020년까지 4년 째 꾸준히 동아일보에 유료부수가 밀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2020년 발표 직후에는 ABC 유료부수 집계 자체를 비난하는 연속 기사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이 중앙일보와 JTBC에 집행하는 광고의 등급이 기존의 A등급에서 한겨레경향신문 수준인 C등급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이렇게 최하 등급으로 전락한 뒤, 삼성 광고가 거의 사라진 바람에 중앙일보가 매출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광고는 전년 대비 10분의 1 수준이며, 협찬은 아예 없어졌다는 후문이다. 다만 JTBC의 경우 중소형 및 외국계 광고주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줘서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기사
  • 2017년 중앙일보는 200~300억 가량의 적자가 예상되는 반면[53] JTBC는 개국 7년 만에 흑자로 전환되었다. JTBC가 삼성에 부정적인 내용을 보도하면서 삼성의 광고 비중이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다. 특히 타 종편들(TV조선, 채널A, MBN)이 흑자를 내는 것이 제작비 쥐어짜기, 과도한 협찬 요구로 인해서인 반면 JTBC는 단지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 이루어낸 흑자 전환이라는 점이 다르다. 중앙일보는 최근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를 중앙일보에서 분사시키고, 자매지인 여성중앙을 2018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잠정 휴간[54] 하는 한편 시니어급 기자(45세 이상)들을 중앙SUNDAY 쪽으로 전보시킬 방침이어서 사실상 구조조정 수순에 돌입하여 흉흉한 분위기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2018년 1월 중앙일보는 시니어급 기자들의 소속변경을 백지화하는 대신, 기존의 파견형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희비로 인해 중앙일보와 JTBC 사이에는 묘한 감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홍석현 전 회장과 중앙일보 및 JTBC의 간부들이 나눈 대화가 손석희 사장에 대한 음해 찌라시로 생산되어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삼성 광고의 유치를 위해 보수우파적 논조를 통해 JTBC의 손석희 사장을 공격해야만 하고, JTBC는 회사 매출 상승을 위해 압도적 신뢰도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손석희 사장을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 간부들의 ‘손석희 흔들기’
  • 여운형이 만든 조선중앙일보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관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55]
  •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주최하는 곳이기도 하며, 1977년부터 행정안전부와 공동으로 '청백봉사상'을 매년 시상해 청렴/우수 공직자들을 발굴해오고 있다.
  • 과거 소년중앙이라는 만화잡지와 소년잡지가 섞인 듯한 월간지를 발간하여 육영재단[56]어깨동무나 어문각의 새소년과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일단 제일 오래 살아남았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중앙 M&B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여기서 용자 북박스가 탄생한다. 다만 지금은 중앙일보에서 손을 뗀 상태. 북박스가 완전히 갈려 나간 현재는 중앙북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가끔 코믹스를 발행하기도 한다.
  • 조중동 중에선 그나마 자유로운 데스크 분위기라서 그런지 똑같이 발을 들여놨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가장 먼저 빠져나오는 게 중앙일보다. 다만 너무 태도가 금방 바뀐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 1999년 9월 30일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사장 홍석현이 대검찰청에 소환됐을 때, 기자라는 인간들이 모여서 이른바 '삼성식 경호'를 펼치는 와중에 "홍 사장, 힘내세요!"[57]라고 외치는 희대의 촌극이 발생했다. 이후 중앙일보에는 기자는 없고 월급쟁이들만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5년에는 대선자금 X파일 사건 때 1997년 삼성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아 유력 대선후보에 전달하는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와중에 대선자금의 일부를 횡령한 것이 아니냐는 배달 사고 의혹까지 일었다는 것.
  • 인터넷 신문(조인스닷컴)을 시작하면서 다른 메이저신문들처럼 일본어판을 별도로 내세웠는데, 중앙일보 게시판은 특이하게도 거기에 한일번역 커뮤니티도 시도했었다. 인조이재팬 이전부터 이미 한일간의 번역게시판 키보드배틀 문화가 싹튼 곳이기도 하다. 당시 doronpa라는 필명을 쓰던 사쿠라이 마코토도 인조이재팬이 아닌 조인스닷컴 일본어판 번역게시판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정도로 유서깊은(?) 번역게시판이었으나 인조이재팬포탈의 힘으로 급부상한후 번역게시판 중에서 콩라인이었다가 2010년대 이후로는 홈페이지 리뉴얼을 여럿 거치면서 사라졌다.
  • 2010년 10월 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딸이 한국에 시집온다는 오보를 내서 곤욕을 치뤘다. 당일 신문 2면에 올라온 자료는 오보나 창작(…)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상당히 치밀해서 확실히 잘못된 기사인지는 미묘하다. 다만 소문에 따르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등재된 해당 무관이 푸틴에게 불려가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확실히 기사 앞부분에는 '그때까지(자세하게 결혼 발표를 할때까지) 보도를 자제해달라'라고 했으니 사실이어도 억울할 듯. 몇달 후, 윤씨는 상대와의 모든 연락이 끊어졌다고 발언했다. 게다가 기사로 인해서 신변노출에 의한 신변 안전 우려가 커져서 다니던 현지 직장에서 짤리게 되었다. 게다가 2011년에 윤씨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앙일보는 다시 한 번 욕을 먹었다.
  • 2011년 9월 21일 3D 열풍을 의식했는지 입체신문이라는 모험을 강행했다. 당일 아침 3D 안경이 신문과 함께 배달되었으며 대부분의 사진이 일그러져서 나오는 충공깽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 1996년 7월 15일, 경기도 고양시 중앙일보 남원당지국 직원이 같은 지역 조선일보 지국 직원과 보급권 문제로 다투다가 조선일보 직원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참극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 당시 조선과 중앙은 서로 죽어라 헐뜯는 보도를 했다. # 당시 중앙일보가 판촉전략에서 승리해서 매출액 1위를 기록하자, 조선일보가 삼성그룹을 대놓고 까대는 양상이었는데, 조선일보는 중앙일보를 '살인자 감싸는 막돼먹은 신문사'라고 비난했고, 이에 열받은 중앙일보는 일개 직원 한 명의 잘못으로 회사 전체를 매도한다며 과거 조선일보의 친일행적까지 걸고 넘어가 '지들은 과거 단지 몇 명의 실수였다라고 변명하면서 이중잣대 쩐다'는 식의 보도와 사설까지 쓰며 서로를 무척 깠다. 한편, 당시 세계일보에선 이 일을 ‘조폭들고 신문 보라고 강매하는 행위’라고 비꼬는 시사만화를 그린 바 있다. 이 때 얼마나 서로를 비방했냐하면 신문 헤드라인과 1,2면을 할애해서 한달반 동안 싸웠다. 오죽 심했으면 작작하고 다른 기사 좀 실으라고 구독자들이 항의전화까지 했을 정도. 이 때가 절정이었고 연말까지도 간간히 상호비방을 하며 싸웠는데 중앙일보가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들춰내서 공격하면 조선일보는 중앙일보 지국원들을 '이건희 사단#s-3'이라면서 까댔다.
  • 이처럼 언론계의 추태가 실시간으로 드러나다보니까 당시 PC통신 상에서도 '이러한 싸움이 평소에도 일어났으면 평소에 재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언론사들이 진작에 개혁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웃지못할 평이 나왔다.
  • 대만에도 중앙일보라는 신문사가 있었다. 국민당의 당 기관지로 1966년에 창간했는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은 국민당 1당 독재국가였기에 주요 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정기적으로 구독을 해야 했고, 국민당원일 경우에도 왠만하면 구독을 해야 했다. 그런데다가 지금의 인민일보 비슷하게 대만내 주요 정책에 대한 기사들이 중앙일보를 통해 전달되었기에 매우 중요한 언론기관으로 손꼽혔고, 그래서 창간연도가 상당히 늦음에도 연합보, 중국시보와 함께 3대 신문사로 손꼽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민주화가 가속화되고 국민당 1당 독재체제가 끝나게 되어 주요기관이나 학교에서의 구독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고, 자유시보와 애플데일리(빈과일보) 등 경쟁 신문사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적자가 누적되어 결국 2006년 폐간되었다.
  • 옛날에 사용했던 상표가 천일여객 상표와 상당히 비슷하다.
  • 아이돌 가수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의 유명세를 내세와 200억을 사기쳤는데 인용 이미지가 아이돌 마스터였다. 당연히 반응은 기자가 러브라이버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 2017년에 일본은 1080p 화질인데 한국은 아직도 720p HD 해상도라는 정말 말도 안나오는 상식 이하의 기사를 썼다(...)# 문제는 이게 카카오톡 카카오채널에 소개되면서 접한 저연령층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심지어 자기가 보고 있는 1080p 한국 가수 뮤비에서 댓글로 일본은 1080p인데 한국은 720p라고 말하는 진기명기 현상에 일조했다.
  • 2018년 들어서 상당히 황색언론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근거 없는 남녀갈등 조장은 기본이고 대통령의 영어 실력 수준이 부족한 걸 이유로 들어 당선 된다는게 우려스럽다 라던지..
  • 예전에 딴지일보가 흥해서 미투 딴지가 여러개 생겼을 무렵, 망치일보라는게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생겼는데, 딴지일보가 (외견상에서) 조선일보를 비틀은 스타일이었다면, 망치일보는 중앙일보를 패러디했다. J로고만 망치모양으로 바꿔서 망치일보란다(...). 운영자는 천리안 출신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으로 추정되는 I모씨였다. 자세한 설명은 딴지일보 문서의 '아류'문단 참조. 아카이브가 남아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여기에 1999~2001년분 크롤링을 참고하면 된다. 그나마 아류중에선 비교적 지속된 편.
  • 2018년 3월 17일, 중앙일보는 토요일 신문 발행 대신, 중앙SUNDAY로 대체하였다. 기존에는 중앙일보(월요일 ~ 토요일), 중앙SUNDAY(일요일) 매일 신문을 발행하였으나, 중앙일보(평일), 중앙SUNDAY(주말 겸용) 로 바뀌게 되었다.
  • 2019년 2월 28일, 중앙일보는 3월분부터 월 구독료를 15000원에서 20000원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출처
  • 2019년 3월 18일, 중앙일보는 본문 활자를 10.2포인트에서 10.8포인트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지난번에 있었던, '설날 차례상 보도 조작 논란'과 관련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디지털 기사 수정 매뉴얼을 만들고, 새로운 '중앙일보 윤리강령'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출처
  • 이른바 전국단위 종합 신문 중에서 포털사이트 송고용 인터넷 전용 기사를 쏟아내는 비중이 가장 큰 편이다. 2019년 10월 30일자 기자협회보 기사에 따르면, 2019년 10월 기준으로 네이버 송고 기사들 중 종이신문 지면에 실제 실리는 기사의 비율이 24.57%에 불과하여, 9개 전국단위 종합 조간 신문 중에서 국민일보의 22.80% 다음으로 가장 낮았다.출처 다른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동아일보의 경우 해당 비율이 50% 수준인 것에 비해 중앙일보가 유독 낮은 것. 그러나 이 마저도 과거에 비해 온라인 기사를 줄인 것이라고 한다. 일례로 중앙일보 한 기자는 "Eye24팀의 '온라인 대응 기사'와 취재기자들의 '출입처 기사'로 온라인 대응을 하는 셈인데 초기엔 정말 기사를 많이 쓰다 현재는 줄였다. 급하게 쓴 기사가 논란에 휘말리는 일이 있었고 기사 수를 줄여 (조회수를) 모으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온라인 기사는 특별한 일이 터지지 않는 한 하루 기사 수를 정해놓고 대응하는 분위기"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 2018년 하반기, 지면 제작과 콘텐츠 생산을 명확하게 분리하기 위해 조직을 크게 '신문제작본부' '편집국' '뉴스서비스국'으로 재편하였다. '신문제작본부' 산하에 논설주간(논설위원실+칼럼니스트)과 제작국(콘텐트제작에디터: 논설위원 겸직)을 두었고, 주요업무는 종이신문 제작이다. 논설위원과 사내 칼럼니스트들은 사설, 칼럼(OOO의 시시각각, OOO의 시선), 논설위원이 간다, 직격 인터뷰 등등의 코너를 통해 종이신문의 오피니언(7면) 중 일부를 담당한다. 그리고 콘텐트제작에디터는 편집국에서 생산한 200여개의 기사 중 일부를 골라 분량을 조절한 뒤 지면에 배치한다. 조직개편 이전에는 '편집국 산하 취재기자'들이 '디지털 기사'와 '지면용 기사'를 따로 작성해야 했으나, 이번 개편으로 취재기자들은 더이상 지면용 기사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대로, 나이 많은 논설위원들이 지면 기사의 편집과 데스킹에 직접 개입하게 된 바람에 지면의 내용과 기사 논조가 더욱 우경화, 보수화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종이신문 출신 시니어급 기자들이 그대로 온라인 편집과 취재를 맡았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였던 셈. 그렇게 신문과 디지털이 완전히 분리된 줄 알았지만, 취재 기자들이 완전히 지면제작에 손을 땐건 아니였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취재 기자들이 지면제작에 관여하는 것을 완전 차단하기 위해 2019년 12월에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자세한 내용을 다음단락에 후술.
  • 2019년 12월 5일, 홍정도 대표는 중앙일보 법인을 종이신문을 담당하는 중앙일보A와 디지털을 담당하는 중앙일보M으로 분할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신문 제작 부문과 디지털 뉴스 부문의 업무를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당장의 법인 분할은 아니지만, 우선 인사발령과 조직개편을 통해 공통의 대표이사와 편집인 산하에 신문 담당 제작 총괄과 디지털 담당 뉴스 총괄 두 부문을 신설하고, 각각 별도의 수장을 두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각 부문의 책임경영 체제도 구축하겠다고 한다. 이는 종이신문이 아닌, 디지털에서도 수익을 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향후 실질적으로 법인이 분할되었을 때, 존속법인-신설법인 구분에 의한 임직원 단체협약 적용 문제나 구조조정 등의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앙일보 구성원들은 법인분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듯 하다.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72.8%가 법인 분할에 반대했으며, 심지어 법인 분할등 구조개편이 진행될 경우 응답자 중 35.4%가 퇴사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출처1출처2
  • 2020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개편을 단행하였다. 우선 오피니언면을 7면에서 9면으로 늘리고 외부 전문가들이 쓰는 "전문가 기고형 기사" outlook와 중앙일보 에디터들이 쓰는 "분석 기사" view를 도입하였다. 출처
  • 2020년 10월 9일 중앙일보가 서소문에서 상암으로 이전 하였다. 출처
  • 온라인 전략 강화 후, 타사 단독 뺏어가기로 악명이 높아지고 있다. 타사보다 훨씬 늦게 기사를 올리고 [단독]을 달아 조회수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 '중앙단독일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중앙일보 입장에서는, 온라인 전략 강화야 어느 언론사나 그렇고 그 중에 유독 심한 정도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단독 경쟁이 심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5분 이내 차이로 동시에 올리고 '내가 단독 먼저 썼다'하는 정도지, 중앙일보처럼 열 몇 시간, 며칠 늦게, 심지어 1년여 뒤에 올리고 [단독] 을 붙이는 언론사는 없다. 사례가 워낙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다.

16. 관련 인물


  • 중앙일보 가문
  • 고흥길
  • 김상택
  • 문창극: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미주총국장으로 일했으며 다시 돌아와 주필을 지냈다. 칼럼 투고 당시 중앙일보측에서 강경파적인 입장으로 유명했으며,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에 의해 차기 총리지명자로 내정된 상태였으나 자극적인 발언을 했던 점이 뉴스에 나가서 구설수를 일으키고 이내 문씨가 스스로 자진사퇴하겠다고 밝혀서 허무하게 끝났다.
  •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서울문화사) 창업주
  •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칼럼 연재 중.
  • 정운경
  • 홍혜걸 - 의료분야 기사를 주로 투고했던 기자. 과거 2002년 황우석 엠바고를 깨서 비난을 일시적으로 받은 바도 있으나, 그가 엠바고를 깨면서까지 보도한 황우석의 실체는.... 그냥 항목을 참조하자.

17. 관련 문서



18. 관련 문헌



19. 역대 임원



19.1. 회장


  • 홍진기 (대표이사, 1966.12 ~ 1967, 1980.9 ~ 1986.7)
  • 이병철 (대표이사, 1968.2 ~ 1980.9)
  • 홍석현 (대표이사, 1999.10 ~ 2002.2, 2006.12 ~ 2015.3/대표이사 · 발행인, 2002.2 ~ 2003.1/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03.1 ~ 2005.2) → (2015.3 ~ 2017.3)[58]
  • 홍두표 (방송담당, 2011.3)

19.2. 부회장


  • 이종기 (대표이사, 1989.7 ~ 1992.12)[59]
  • 금창태 (2001.2 ~ 2002.1)
  • 송필호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11.4 ~ 2015.12/대표이사, 2016.1 ~ 2016.3) → (2016.3 ~ 2017.12)

19.3. 사장


  • 이병철 (대표이사 · 발행인, 1965.9 ~ 1966.12)
  • 원종훈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66.12 ~ 1968.2)[60]
  • 홍진기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68.2 ~ 1970.3, 1980.5 ~ 1980.9/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70.3 ~ 1980.4)
  • 이종기 (대표이사 · 발행인, 1980.9 ~ 1989.7)
  • 홍두표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92.2 ~ 1993.3)
  • 이필곤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3.3 ~ 1994.3)[61]
  • 홍석현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5.3 ~ 1997.9/대표이사 · 발행인, 1997.9 ~ 1999.2/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99.3 ~ 1999.10)
  • 금창태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9.10 ~ 2001.2)
  • 이제훈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01.2 ~ 2002.2/대표이사 · 인쇄인, 2002.2 ~ 2003.1)
  • 권영빈 (발행인 · 편집인, 2005.2 ~ 2006.1/발행인, 2006.1 ~ 2007.1)
  • 남선현 (방송담당, 2010.9 ~ 2011.3)
  • 송필호 (대표이사 · 인쇄인, 2005.2 ~ 2007.1/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07.1 ~ 2011.3)
  • 홍정도 (대표이사, 2015.12 ~ 2018.11/대표이사 · 발행인, 2018.11 ~ 현재)[62]
  • 반용음 (대표이사, 2018.11 ~ 2018.12)[63]

19.4. 수석부사장


  • 한남규 (부발행인, 2003.1 ~ 2005.1)

19.5. 부사장


  • 홍진기 (1965.9 ~ 1966.?) → (대표이사, 1966.? ~ 1966.9)
  • 이맹희 (1968 ~ 1970)
  • 홍성유 (대표이사, 1971 ~ 1980/대표이사 · 편집인, 1980.5 ~ 1980.9)[64]
  • 양수제 (영리담당, 1988.10 ~ 1992)
  • 김동익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89.7 ~ 1992.1)
  • 현영진 (중앙경제신문 주필 · 편집인, 1989.7 ~ 1991.3/1993.5 ~ 1994.3)
  • 홍석현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4.3 ~ 1995.3)
  • 배종렬 (경영위원, 1994.3 ~ 1996)
  • 송용로 (경영위원, 1995.3 ~ 1995.6)[65]
  • 금창태 (편집인 · 인쇄인, 1997.9 ~ 1999.2)
  • 이제훈 (편집 및 광고담당, 1999.3 ~ 1999.10/편집인, 1999.10 ~ 2001.2)
  • 송필호 (2000.1 ~ 2001.2) → (대표이사, 2001.2 ~ 2005.2)
  • 권영빈 (편집인, 2003.1 ~ 2005.2)
  • 김수길 (주필, 2011.12 ~ 2013.1)
  • 홍정도 (대표이사, 2014.12 ~ 2015.12)
  • 김교준 (부발행인 · 편집인, 2015.12/발행인 · 편집인, 2016.1 ~ 2016.11/대표이사 · 발행인, 2016.12 ~ 2018.11)[66]
  • 이하경 (주필 · 제작총괄 · 신문제작본부장, 2018.11 ~ 2019.12/주필, 2019.12 ~ 현재)
  • 박장희 (대표이사, 2020.11 ~ 현재)

19.6. 부사장대우


  • 정운경 (화백, 2001.2 ~ 2002.1)
  • 김영희 (대기자, 2001.2 ~ 2003.1)

19.7. 전무


  • 안태신 (1965)
  • 김동극 (1966.12 ~ 1967.6)
  • 원종훈 (대표이사, 1968.2 ~ 1971.5)
  • 김덕보 (대표이사, 1971.5 ~ 1971.9)
  • 이현우 (대표이사, 1978.2 ~ 1979.2)
  • 박무승 (1979 ~ 1980)
  • 이종기 (1978.2 ~ 1980.2) → (대표이사, 1980.2 ~ 1980.9)
  • 전응덕 (1980.9 ~ 1981)
  • 주영만 (1984 ~ 1986)
  • 최종률 (주필 · 편집인, 1986.9 ~ 1986.10/주필 · 편집인 · 인쇄인, 1986.10 ~ 1988.9/논설고문, 1988.10 ~ 1991)
  • 손근 (1986.10 ~ 1988.1)
  • 정병순 (1987.1 ~ 1989)
  • 현영진 (중앙경제신문 주필, 1988.8 ~ 1989.7)
  • 김동익 (주필 · 편집인 · 인쇄인, 1988.10 ~ 1989.7)
  • 최우석 (주필, 1993.3 ~ 1994.3)
  • 송용로 (경영지원실장, 1994.3 ~ 1995.3)
  • 금창태 (편집인, 1995.3 ~ 1997.9)
  • 권영빈 (주필, 2001.2 ~ 2003.1)
  • 한남규 (편집인, 2001.2 ~ 2003.1)
  • 송필호 (경영지원실장, 1998.1 ~ 2000.1)
  • 기노창 (광고총괄, 2006.1 ~ 2007.1/마케팅총괄, 2007.1 ~ ?)
  • 문창극 (주필, 2006.1 ~ 2007.1/주필 · 부발행인, 2007.1 ~ 2008.11)
  • 김수길 (부발행인 · 방송본부장, 2010.1 ~ 2011.1/총괄본부장, 2011.1 ~ 2011.4)
  • 홍정도 (제작총괄, 2011.4 ~ 2011.12)
  • 김교준 (제작총괄 · 부발행인 · 편집인, 2013.12 ~ 2015.12)
  • 박보균 (대기자, 2013.12 ~ 2014.12)
  • 민병관 (광고사업총괄, 2013.12 ~ 2014.12)[67]
  • 이하경 (논설주간, 2015.12 ~ 2016.11/주필 · 중앙종합연구원장, 2016.12 ~ 2018.11)
  • 박의준 (경영기획 및 지원총괄, 2017.11 ~ 2018.11)[68]
  • 오병상 (편집인, 2018.11 ~ 2019.12/뉴스총괄 · 편집인, 2019.12 ~ 2020.4/뉴스총괄 · 뉴스코디네이터 · 편집인, 2020.5 ~ 2020.6/칼럼니스트, 2020.7 ~ 현재)
  • 박장희 (경영총괄 · 미디어비즈니스본부장 · 중앙M&C 대표이사, 2015.12 ~ 2017.6/중앙일보데일리 대표이사, 2017.7 ~ 2017.12/미주법인 · LA중앙일보 대표이사, 2017.12 ~ 2019.1/대표이사, 2019.1 ~ 2020.11)
  • 최훈 (편집인, 2020.11 ~ 현재)

19.8. 전무대우



20. 역대 법정등록인



20.1. 발행인


'''역대 중앙일보 발행인'''
[ 펼치기 · 접기 ]
1965.9 ~ 1966.12
이병철
1966.12 ~ 1968.2
원종훈
1968.2 ~ 1980.9
홍진기
1980.9 ~ 1989.7
이종기
1989.7 ~ 1992.1
김동익
1992.2 ~ 1993.3
홍두표
1993.3 ~ 1994.3
이필곤
1994.3 ~ 1999.10
홍석현
1999.10 ~ 2001.2
금창태
2001.2 ~ 2002.2
이제훈
2002.2 ~ 2005.2
홍석현
2005.2 ~ 2007.1
권영빈
2007.1 ~ 2015.12
송필호
2016.1 ~ 2018.11
김교준
2018.11 ~ '''현재'''
홍정도


20.2. 편집인


'''역대 중앙일보 편집인'''
[ 펼치기 · 접기 ]
1966.12 ~ 1968.2
홍성유
1968.2 ~ 1980.9
이규현
1969.2 ~ 1970.3
홍성유
1970.3 ~ 1980.4
홍진기
1980.5 ~ 1980.9
홍성유
1980.9 ~ 1988.9
최종률
1988.10 ~ 1992.1
김동익
1992.2 ~ 1993.3
홍두표
1993.3 ~ 1994.3
최우석
1994.3 ~ 1999.2
금창태
1999.3 ~ 1999.10
홍석현
1999.10 ~ 2001.2
이제훈
2001.2 ~ 2003.1
한남규
2003.1 ~ 2006.1
권영빈
2006.1 ~ 2009.8
김수길
2009.8 ~ 2011.8
박보균
2011.8 ~ 2016.11
김교준
2016.12 ~ 2020.6
오병상
2020.7 ~ '''현재'''
최훈

  • 최훈 (상무, 2020.7 ~ 2020.11/전무, 2020.11 ~ 현재)

20.3. 인쇄인


'''역대 중앙일보 인쇄인'''
[ 펼치기 · 접기 ]
1965.9 ~ 1968.2
원종훈
1968.2 ~ 1980.9
홍진기
1980.9 ~ 1986.10
이윤표
1986.10 ~ 1988.9
최종률
1988.10 ~ 1992.1
김동익
1992.2 ~ 1993.3
홍두표
1993.3 ~ 1994.3
이필곤
1994.3 ~ 1997.9
홍석현
1997.9 ~ 1999.2
금창태
1999.3 ~ 1999.10
홍석현
1999.10 ~ 2001.2
금창태
2001.2 ~ 2003.1
이제훈
2003.1 ~ 2005.2
홍석현
2005.2 ~ 2015.12
송필호


21. 역대 주요 간부



21.1. 논설고문


  • 최종률 (1988.10 ~ 1991)
  • 현영진 (1991.3 ~ 1993.3)
  • 강위석 (1994.9 ~ 1999.1)
  • 송진혁 (1999.11 ~ 2005.1)
  • 유승삼 (2001.7 ~ 2002.3)[69]
  • 최철주 (2003.1 ~ 2006.3)
  • 변상근 (2003.1 ~ 2004)
  • 권영빈 (2007.1 ~ 2007.7)

21.2. 주필


'''역대 중앙일보 주필'''
[ 펼치기 · 접기 ]
1966.11 ~ 1970.3
홍성유
1973.9 ~ 1980.6
김승한
1984.10 ~ 1988.9
최종률
1988.10 ~ 1989.7
김동익
1991.3 ~ 1992.2
장두성
1993.3 ~ 1994.3
최우석
1995.3 ~ 1999.2
성병욱
2001.2 ~ 2003.1
권영빈
2006.1 ~ 2008.11
문창극
2011.12 ~ 2013.1
김수길
2016.12 ~ 현재
이하경

  • 이하경 (전무, 2016.12 ~ 2018.11/부사장, 2018.11 ~ 현재)

21.3. 논설주간


'''역대 중앙일보 논설주간'''
[ 펼치기 · 접기 ]
1965 ~ 1966
홍성유
1968.2 ~ 1973
김승한
1980.6 ~ 1984.10
최종률
1989.7 ~ 1991.3
장두성
1992.2 ~ 1995.3
성병욱
1999.3 ~ 1999.11
송진혁
1999.11 ~ 2001.2
권영빈
2003.12 ~ 2006.1
문창극
2008.12 ~ 2010.12
허남진
2013.1 ~ 2013.12
김진국
2013.12 ~ 2016.11
이하경
2016.12 ~ 2018.11
이철호
2018.11 ~ 2020.11
최훈
2020.11 ~ '''현재'''
고현곤

  • 고현곤 (상무보, 2020.11 ~ 현재)

21.4. 신문제작총괄


명칭변경 : 신문제작본부 → 제작총괄 → 신문제작총괄
2018년 11월 20일 인사 '''·''' 조직개편에서 생긴 신문제작본부는 주필 직속으로 되어있고, 그 아래에 논설주간과, 제작국이 편제되었다. 신문제작본부장은 이하경 주필이 맡았었다. 2019년 개편엔 제작총괄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제작총괄의 수장은 상무로 승격한 최훈 논설주간이 맡게 되었다. 또한, 신문제작본부 산하에 있던 제작국은 폐지됐고, 제작총괄 산하에 논설위원실과 편집국을 배치 하였다.
  • 이하경 (신문제작본부장 · 부사장, 2018.11 ~ 2019.12)
  • 최훈 (제작총괄 · 상무, 2019.12 ~ 2020.6)
  • 고현곤 (제작총괄, 2020.7 ~ 2020.11/신문제작총괄 · 상무보, 2020.11 ~ 현재)

21.4.1. 논설실장


'''역대 중앙일보 논설실장'''
[ 펼치기 · 접기 ]
1994.7 ~ 1999.2
송진혁
2001.2 ~ 2001.7
김영배
2001.7 ~ 2003.1
최철주
2003.1 ~ 2003.12
문창극
2003.12 ~ 2006.1
허남진
2006.1 ~ 2008.11
박태욱
2009.8 ~ 2011.1
김교준
2010.12 ~ 2013.1
김진국
2013.1 ~ 2013.12
이하경
2014.12 ~ 2016.11
이철호
2016.12 ~ 2017.6
최훈
2019.12 ~ 2020.11
고현곤
2020.11 ~ '''현재'''
이정민[76]

논설위원실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 이정민 (2020.11 ~ 현재)

21.4.2. 수석논설위원


'''역대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 펼치기 · 접기 ]
1986.9 ~ 1987
김영희
1987 ~ 1988
이억순
1988.1 ~ 1989
최우석
1991.11 ~ 1992.4
노계원
1992.4 ~ 1994.7
송진혁
1998.1 ~ 1999.11
권영빈[77]
1998.1 ~ ?
전육
2003.6 ~ 2006.1
이수근
2006.1 ~ 2008.1
신성호
2008.1 ~ 2008.6
김두우
2008.6 ~ 2008.12
신성호
2008.12 ~ 2012.1
안희창
2010.12 ~ 2012.11
오병상
2013.12 ~ 2014.12
이철호
2017.7 ~ 2017.11
홍승일
2018.1 ~ '''현재'''
고대훈

  • 고대훈 (2018.1 ~ 현재)

21.5. 편집국장


'''역대 중앙일보 편집국장'''
[ 펼치기 · 접기 ]
1965.9 ~ 1967.7
이원교
1967.7 ~ 1967.10
조기호
1967.10 ~ 1971.5
이규현
1971.5 ~ 1974.6
김인호
1974.6 ~ 1975.2
조동오
1975.2 ~ 1977.2
김인호
1977.2 ~ 1980.6
김동익
1980.6 ~ 1983.11
심상기[78]
1983.11 ~ 1986.9
김영희[79]
1986.9 ~ 1988.1
최우석
1988.1 ~ 1989.7
이돈형
1989.7 ~ 1991.3
성병욱
1991.3 ~ 1992.4
송진혁
1992.4 ~ 1994.3
이제훈
1994.3 ~ 1995.3
신성순
1995.3 ~ 1997.1
고흥길[80]
1997.1 ~ 1998.1
전육
1998.1 ~ 1999.11
한남규
1999.11 ~ 2001.7
최철주
2001.7 ~ 2003.12
이장규[81]
2003.12 ~ 2006.1
김수길[82]
2006.1 ~ 2007.12
박보균
2007.12 ~ 2009.8
김교준
2009.8 ~ 2010.12
민병관
2010.12 ~ 2012.6
전영기[83]
2012.6 ~ 2013.12
김종혁[84]
2013.12 ~ 2016.11
최훈
2016.12 ~ 2017.7
남윤호
2017.8 ~ 2018.11
이정민[85]
2018.11 ~ 2019.12
박승희[86]
2019.12 ~ 2020.11[참고]
김현기[87] 편집국장, 강주안 뉴스룸국장
2020.11 ~ '''현재'''
김종윤

  • 김종윤 (2020.11 ~ 현재)

21.6. 편집국장대리


  • 김인호 (1969 ~ 1971.5)[70]
  • 이광표 (1971.5 ~ 1973)[71]
  • 김동익 (1975.2 ~ 1977.2)[72]
  • 손기상 (1980.9 ~ 1985.4)
  • 주명갑 (1980.9 ~ 1981/1982.10 ~ 1985.4)[73]
  • 손주환 (1980.9 ~ 1982/1983.11 ~ 1985.4)
  • 최우석 (1985.4 ~ 1986.9)
  • 금창태 (1985.4 ~ 1988.1)
  • 성병욱 (1988.6 ~ 1989.7)
  • 김두겸 (1990.? ~ 1990.6)
  • 이영식 (1991.4 ~ 1992.4)
  • 한남규 (1994.7 ~ 1995.3)
  • 임준수 (1994.3 ~ 1995.3)
  • 문병호 (1998.7 ~ 1999.1)
  • 허남진 (2001.10 ~ 2003.12)
  • 이하경 (2008.11 ~ 2009.8)[74]
  • 오병상 (2009.6 ~ 2010.12)[75]
  • 고현곤 (2014.7 ~ 2015.11)
  • 남윤호 (2015.12 ~ 2016.11)
  • 박재현 (2016.12 ~ 2018.7)

21.7. 편집국장대우


  • 이태영 (1988)
  • 노계원 (1988.6 ~ 1989.7)
  • 김두겸 (1989.7 ~ 1990)
  • 이영식 (1989.7 ~ 1991)
  • 송진혁 (1990.6 ~ 1991.3)
  • 김동수 (1993.3 ~ 1993.8)
  • 이은윤 (1994.3 ~ 1995.3)
  • 문병호 (1999.1 ~ 1999.11)

21.8. 뉴스제작국


  • 조주환 (뉴스제작국장, 2019.12 ~ 2020.11)
  • 김영훈 (뉴스제작국장, 2020.11 ~ 현재)

21.9. 비즈솔루션본부


  • 권혁주 (비즈솔루션본부장, 2020.11 ~ 현재)

21.10. 뉴스플랫폼담당


  • 남궁유 (상무보, 2019.12 ~ 현재)

[1] 현재 사용중인 로고타입은 1995년 10월부터 만들어졌으며 그 이전에는 한자 로고타입를 사용했다. 상징 로고도 주황색 원 안에 J 자를 넣은 로고를 사용했으며, 그전에는 한자 中을 삼성그룹의 구 로고 형태로 디자인된 로고를 사용했다. 이 로고는 동양방송 문서에서 볼 수 있다.[A] A B 2020년 11월 29일 기준[2] 원래 진보 -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세금정책, 복지와 인권, 기업 정책, 국방에 대한 관심으로 판가름 나는게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기에 대북정책이라는 잣대가 추가되고 있는데, 한 때는 이게 지나쳐서 이승만 정권이나, (71년 대선 이후)박정희 정부 시기처럼 대북정책이 보수 - 진보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었던 시절도 있었다.[3] 절대적인 기준이란 얘기가 아니다. 비스마르크처럼 복지정책을 사회주의의 준동을 막는 방편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기 때문.[4] 참고로 김용철 변호사는 이를 주식의 차명 전환을 통한 위장 계열분리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5] joongang.co.kr 으로 1995년에 열었다. 매~우 썰렁한 홈페이지였지만 오픈할 당시에는 MBC나 중앙일보를 제하면 가볼 한글 언론사 홈페이지가 없어서 가보곤 했었다. joins.com 이라는 포털 비스무레한 사이트가 됐다가 현재는 한국 MSN과 합쳐 joinsMSN이 되었다. 여기서는 다른 포털과 마찬가지로 다른 신문사 기사도 볼 수 있지만 joongang.co.kr로 들어가면 중앙일보 홈페이지로 갈 수 있다.[6] 일례로 심지어 최근에는 종이신문 1년 구독이라면, 8개월 무료 구독에 현금 5만원, 그리고 경제신문 1개 서비스까지 세트로 해주는 방식으로 신문 영업이 이루어진다. 특히 이 '현금 5만원'은 10년 넘게 신문 영업 균일가라고. 신문사의 영업비 책정에 따라 현금 말고 자전거, 비데, 커피포트 등의 사은품을 끼워 줄 때도 있다.[7] 지난 일주일 내에 하루 이상 해당 종이신문을 접했던 사람의 비율[8] 조선일보 또한 같은 기간 동안 열독률이 6분의 1 수준이 되었다. 2020년 조사 기준, 조선일보의 열독률은 3.2%로 나타났다.[9] 조선일보와 JTBC의 경우에는 구독자 수가 400만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10] 심지어 이는 다양한 형태의 기사 유료 판매 등을 합산한 금액이며, 포털에서 받는 전재료로만 따지만 또 일부분이 된다. 참고로 각 언론사가 순수하게 포털 사이트 기사 판매로 벌어들이는 전재료나 포털 광고 분배 금액은 적게는 연간 수 억에서 많게는 수십 억 정도밖에 안되는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총 매출이 몇 십억 수준인 소규모 언론사나 몇 백억원 수준인 중간 규모 언론사라면 이 정도 규모의 포털 기사 전재료가 매우 달콤할 지는 몰라도, 연 매출 2천억 원 이상에다가 종이신문 광고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는 조중동급 대형 신문사 입장에서 보자면, 포털에 기사를 팔아서 벌어 들이는 이 정도의 금액은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껌값이다.[11] 뉴스위크 한국판 발행 등[12] 2007년 이후 워싱턴 포스트가 NYT에 IHT 지분을 매각한 상태지만 여전히 중앙일보가 발행하고 있다.[13] 원래는 별도의 일요일 판이었으나, 주 6일 신문 발행 체제로 바뀌면서 일요일 발행을 중단하고 대신 중앙선데이를 토요일로 옮겼다.[14] 1994년 7월에 중앙일보와 통폐합 처리. 이후 경제 섹션을 분리하면서 '중앙경제'라고 이름 붙여놓고 '부활'이라고 우겼다.[15] 1987년 12월 1일부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언노련이 2000년에 민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화 된 후 중앙일보 노조는 언노련을 탈퇴했다.[16] 창간 10주년[17] 동양방송 문서에서 개사 이전 사가를 들어볼 수 있다.[18] 준공 당시 건물명은 '중앙 매스컴센터'.[19] 높다란 갈색 건물로, JTBC의 개국 초기 사옥으로도 쓰였던 건물이다. 부영그룹 사옥(부영태평빌딩 (구 삼성생명빌딩))과 건물 외관이 비슷하다.[20] 코웨이삼성생명[21] 애초에 이병철 회장의 구상은 3남 이건희에게 동양방송, 중앙일보만을 주어서 계열분리를 시키는 것이었으나,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와의 갈등 끝에 둘을 모두 내치고 나서 이건희를 후계자로 내정했고, 이로 인해 동양방송과 중앙일보의 사장이자 자신의 사돈이었던 홍진기에게 중앙일보를 넘겼다는 설이 있다.[22] 홍씨 일가는 이외에도 '''보광그룹'''을 소유하고 있다.#[23] 그러나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앙일보 위장 계열분리 의혹을 묵살하였고, 삼성 특검은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 이외에는 증거가 없다면서 무혐의 처리했다.[24] 당시의 구조조정본부. 현재의 미래전략실[25] 일례로 종편 출범 초창기에는 이하경, 전영기 등의 중앙일보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고위급 기자들이 그대로 JTBC 보도국으로 이동해서 간부를 맡았지만, 손석희 사장의 영입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중앙일보로 되돌아갔고, 이 기자들이 그대로 중앙일보 고위직을 다시 차지했다.[26] 물론 기자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신문사든 성향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언론사의 편집 방향을 대표하는 사설이나 소속 논설위원이나 기자들이 쓰는 칼럼으로 보면 대략적으로 그러하다. 한편 중앙일보의 다른 논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들이 일반적으로 보수 우파적인 논조를 보이는 것에 반해, 권석천 칼럼니스트의 칼럼만은 이질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진보적인 편이었다.[27] 조선일보의 보수적 논조는 어느 시대에나 굳건하지만,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논조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김대중 정부 초반까지는 동아일보가 조중동 중에서 가장 덜 보수적이었고, 노무현 정부 초반에는 중앙일보가 약간 덜 보수적이었다. 한편 김영삼 정부 말기에는 중앙일보의 보수성이 강해졌고, 이명박 정부 때는 동아일보가 조선일보만큼 보수적인 논조를 보였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조중동이 공히 모두 비슷한 보수적 논조를 보였다가, 말기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 들어선 이후에는 잠시 중앙일보의 보수성이 상대적으로 덜해지기도 했다.[28] 정치, 경제, 사회는 속칭 '정경사'라고 하여 언론사에서 주류 취급을 받는 부서인데, 어느 언론사에서나 사회부 만큼은 정치부나 경제부와는 논조가 조금 다른 경향성이 있다. 사회부에서 다루는 이슈 그 자체는 정파성을 비교적 덜 가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회적 이슈가 정치면으로 넘어오면 정치면과 사설의 논조를 따라가게 된다.[29]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돈줄이므로 친기업 성향의 논조를 보인다.[30] 한국경제신문 같은 경우는 언론사의 주주들이 재벌, 대기업들이기 때문에, 전경련의 기관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어떤 측면에서든 기득권과 대기업, 자본가를 옹호하는 편이며, 때문에 대중성을 중시하는 조중동보다도 극단적인 논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31] 2016년 하반기 THAAD 배치 파동 당시에도,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든 명동의 모습을 외면하다 → 대기업 피해자가 나오자, 비로소 정부의 역할을 원론적으로 촉구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반면 중앙일보는 강하게 나서야 할 것을 주장하며,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투자자국가소송(ISD) 카드를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32] 2000년 총선 승리로 다수를 점한 한나라당에서 내놓은 일부 법안을 반대해 현장을 이탈한 국회의장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색-체포(?)해온 해프닝 다음날에 실린 사설이다.[33] 하지만, '''"통일방안은 오직 흡수통일과 적화통일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조선일보, 2000년 하반기)[32]"'''이라는 내용을 사설에 실었을만큼 반공논조 경향이 매우 강한 조선이나, 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대북 우파논조로 바뀌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연설문 작성의 주요 참고자료가 된 동아일보 논조와 다르게, 현실성있는 제언을 싣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다음 문장에 소개된 2019년 5월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재개를 촉구하는 칼럼이다.[34] 2020년 3월 시점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문단이 추가된 내용으로 기사가 수정된 상태다[35] 북한쪽은 김여정이 비춰지는 빈도수가 줄어들었고, 미국쪽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대신 볼턴의 후임으로 영전할 것이 예상되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더 많이 비춰졌다. 반면 중앙일보측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정책을 드리블할 폼페이오 장관을 비중있게 카메라로 담았다.[36] 원래 진보 -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세금정책, 복지와 인권, 기업 정책, 국방에 대한 관심으로 판가름 나는게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기에 대북정책이라는 잣대가 추가되고 있는데, 한 때는 이게 지나쳐서 이승만 정권이나, ('''71년 대선 이후''')박정희 정부 시기처럼 대북정책이 보수 - 진보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었던 시절도 있었다.[37] 절대적인 기준이란 얘기가 아니다. 비스마르크처럼 복지정책을 사회주의의 준동을 막는 방편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기 때문.[38] 김진 본인은 회사에서 밀려나서 그만 뒀다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사실 형태는 그냥 계약직 신분인 임원의 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것이었다고.[39] 출처 : 손석희 저널리즘, p.138, 정철운[40] 일례로 이때 삼성이 집행하는 중앙일보에 대한 광고 단가 책정 기준이 한겨레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41] 예를 들면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는 40%가 안되는 지지율로 문재인 당선 직후 미국이 멋대로 북한을 폭격 하고 코스피가 폭락한다는 가정을 쓰면서 욕을 먹었다.# 결과는 41.1%의 득표로 문재인 당선 직후 폭격은커녕 코스피 상승과 이낙연 총리 내정에 지지율 70% 박스권이 되고 한미외교도 정상적으로 하며 트럼프는 코리아패싱을 부정하며 대화 노선을 이어가는 등, 이 분이 쓴 칼럼은 대체역사소설이 되어 문재인 지지자들이 비웃고 있다. 이것 말고도 보수 우파 언론들이 종북좌파, 안보불안, 친문패권 등의 프레임으로 때리고 있지만 문재인의 당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42] 물론 대학언론이라 신뢰도가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을 유념하자.[43] 본사가 아닌 미주 중앙일보의 인력이다. 칼럼 투고 당시 강경파적인 입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44] 원래 수도권 지역만 배달이 가능했었다.[45] WIN 발행 전에는 신동아와 월간조선의 판형과 같았다.[46] 중동문제, 유로마이단[47] 스푸트니크도 한국어판 발행을 했다가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2017년부터 한국내에서의 사업을 중단한 상태이다.[48] 그 이전에는 명절이나 기획기사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별지 없이 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49] 다만 2001년에 이미 국민일보와 그 계열의 스포츠투데이가 베를리너판과는 다른 판형인 USA투데이판을 적용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국내에서 기존 판형을 줄인 시도는 중앙일보가 최초는 아니라는 것.[50] 대구일보, 울산매일신문 등 경상도 지역 신문들이 베를리너 판으로 전환했고, 2016년 8월 1일 강원도 최초로 강원도민일보가 베를리너판으로 전환했다. 기사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판형을 바꾸려면 신문을 찍어내는 기계인 윤전기를 바꿔야 하는데 이 윤전기의 가격이 한 대당 수백억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일본에서 대당 250억 6대를 구입했으므로 다른 회사들은 엄두도 내질 못할 것이다. 사실 중앙일보도 윤전기를 바꿔야 했던 상황이 왔고 겸사겸사 해서 종이값, 잉크값, 배달비, 발송비 등을 줄일 수 있는 작은 판형의 베를리너판 윤전기로 바꿨다는 업계의 소문이 있다.[51] 2019년 조사[52] 자사 윤전기로 대신 인쇄를 하여 다른 신문사에 납품하는 것[53]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보면, 2017년에는 전폭적인 자산 매각을 통해 적자 규모를 약 70억 원 선에서 방어를 하였으나, 결국 2018년에 약 220 억원 정도의 큰 적자가 났다.[54] 미주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여성중앙 미국판의 경우 2018년 2월호부터 자매지인 "헤렌"의 내용으로 개편하였다가 2018년 10월부터는 Singles로 대체하였다.[55] 어떤 분들은 조선중앙일보를 친일 신문으로 오해하여 조중동은 죄다 친일 신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중앙일보는 일제 강점기에 없었으므로 타임 패러독스가 되는 주장이다.[56] 박근혜와 동생인 박근령이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 1990년 박근령이 경영권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57] 기자들은 직업활동 시 취재/보도 대상에게 쫄지 말고 당당해지라는 의미에서(실제로는 일본어의 잔재라는 주장도 있음) 누구에게도 을 절대 붙이지 말라고 교육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힘내세요' 사건에 대해 중앙일보 기자들은 자신들은 "홍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쳤다고 필사적으로 주장한다.[58] 초대 회장 홍진기의 아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처남. 2015년 3월 30일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2017년 3월 18일 회장에서 물러났다.[59] 이후 제일제당 부회장, 삼성화재 부회장 및 회장을 지냄. 2006년 10월 작고.[60] 1966년 12월 상무이사에서 대표이사 사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전 함안 및 밀양군수. 퇴임 이후 동방생명 사장, 한국보험협회장 역임. 1987년 작고.[61]삼성물산 대표.[62] 홍석현 전 회장의 아들. 2015년부터 중앙일보와 JTBC를 비롯한 중앙그룹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져왔다.[63] 2018년 11월 20일 대표이사를 맡은지 40일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처. [64] 이후 삼성그룹 회장실 고문으로 재직함. 2006년 작고.[65] 1995. 3 ~ 1995. 6 까지 중앙일보 경영위원을 맡다가, 1995년 7월 삼성전자 정보통신 본부장에 임명되었다. 출처 [66] 2018년 11월 20일 인사에서 상근고문 발령.[67] 2013년 12월 ~ 2014년 12월까지 JTBC · 중앙일보 광고사업총괄 업무를 맡았었다.[68] 2018.11 중앙일보 마케팅 대표이사 선임.[69] 이후 대한매일 첫 민선사장으로 영전됨.[70] 편집국장 직무대행[71] 편집국장 직무대행[72] 편집국장 직무대행[73] 1982년 10월 종합편집부장 겸직.[74] 2008.11 ~ 2009.5 신문혁신에디터 겸직. 2009.5 ~ 2009.8 정치·국제에디터, 행정국장 겸직[75] 2009.5 ~ 2010.12 콘텐트·디자인혁신에디터 겸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