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탕(테이스티 사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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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티 사가의 등장 식신. 모티브는 용봉탕.일찍이 패왕별희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 있다. 제멋대로인 데다 호방한 성격으로,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지만 자신의 소중한 형제를 다치게 한 사람은 반드시 기억한다. 자신의 형제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보지 않는다. 지혜로운 장수보다는 용맹한 맹장 타입으로, 자신의 형제를 무척 신뢰한다.
2. 초기 정보
3. 스킬[3]
4. 평가
5. 대사
6. 배경 이야기
6.1. 1장. 봄의 귀환
난 웅황주를 데리고 호숫가의 그 정원으로 돌아왔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정원은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웅황주는 정원 입구에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한창을 주저했지만 좀처럼 정원 안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꾸물거리는 모습에 나는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손을 뻗어 그를 정원 안으로 밀어버렸다.
「안심해, 모두들 좋은 사람이니까.」
문지방에 걸려 비틀거리던 웅황주가 넘어지려던 순간, 마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자추막의 손에 들린 버드나무 가지가 쑥하고 길어지더니, 웅황주를 살포시 받쳐 들었다.
자추막이 웅황주가 이곳에 나타난 걸 수상하게 여기는 듯하기에, 난 재빨리 손을 뻗어 웅황주의 뒷덜미를 낚아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그의 어깨를 힘껏 팡팡 두드리며 자추막에게 소개했다.
「이 녀석은 웅황주라고 해. 그 사교의... 관계자야. 우리랑 같은... 지금 달리 갈 곳이 없어서 이리로 데리고 왔어.」
내 이야기를 들은 자추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웅황주 앞으로 다가갔다.
「이리와, 방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쉬도록 해.」
그동안 구박을 받았던 터라, 웅황주는 다정한 자추막의 태도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날 돌아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한 듯 자추막을 따라갔다.
텅 빈 정원을 바라보며, 난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용수소는 방 안에 숨어 어려운 책들을 읽고 있을 거다. 서호용정은... 분명 호수 바닥에 있는 동굴에 또 틀어박혀 있겠지!
그 녀석이 나 때문에 호수 바닥에서 끌려 나올 때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생각하니, 입가가 저절로 스르륵 올라간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숫가에 어슬렁거리며 도착한 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리곤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고요한 호숫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용정!!!!!! 나와서 술 마시자!!!!!!!! 나 왔어!!!!!!!」
때마침 호숫가에서 노닥이던 한 쌍의 연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난 상관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런 후에 뒤돌아서 용정의 동굴이 자리잡은 호수 한 가운데를 바라봤다.
고요한 호수 위를 맑은 바람이 스치자 가벼운 물결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원래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난 눈썹을 찌푸린 채 몇 번이나 소리쳤다. 그 바람에 아까 그 연인은 귀를 막은 채 자리를 떠났다. 여전히 고요한 호수를 난 실눈을 뜬 채 바라봤다.
「용정, 계속 그렇게 버티면 이쪽도 막 나가는 수밖에 없어.」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호숫가 주변에서 돌멩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머리 크기만한 바윗덩이를 힘껏 호수 한가운데로 던졌다.
풍덩--
바윗덩이가 호수에 떨어지는 순간, 수면 위에 일어난 물결이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호수가 천천히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가 만들어 낸 계단을 밟고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 앞으로 걸어왔다.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채로...
「용봉탕. 여러 번 말했을 텐데, 내 동굴에 돌 던지지 마. 특히 저렇게 큰 돌은.」
「흐흐, 그렇지 않으면 절대 호수 위로 안 올라올 거 잖아! 이번에 좋은 술을 가지고 왔어! 게다가 너희들한테 소개해 줄 녀석도 하나 데려왔지! 어두워지면 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시며 달 구경이나 하자!」
「겨우 그거 때문에?」
「겨우라니? 형제들끼리 같이 술잔을 나누며 달 구경하는 것보다 즐거운 게 어디 있다고! 그런 자리를 네가 빠질 수야 없지 않겠어?」
「......」
「간다, 가!」
6.2. 2장. 여름의 소리
내 마스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가 한때 살았던 자그마한 나라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최연소 장군이었던 마스터, 그가 보필한 군주 역시 최고의 명군이었다. 마스터가 병권을 쥐었다는 이유로 그를 의심하는 일도 없었다. 함께 자란 두 사람은 마치 형제처럼 서로를 믿었다.
이따금 변경 근처에서 소란을 피우는 마적단을 빼곤, 외적들은 마스터의 명성 앞에서 벌벌 떨며 알아서 조용히 지냈다. 덕분에 주변에서 항상 눈독 들이던 이 땅에도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마스터는 평소 신병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가끔 신병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수리해 주거나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명성 자자한 대장군이었지만 마스터는 전혀 거들먹거리는 법이 없었다.이 역시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아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를 장군보다는 마음 따뜻한 이웃집 형, 잘생긴 조카 손자, 그리고 자신과 같이 자란 형제처럼 여기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런 마스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어렵사리 얻은 휴식 시간에 똑같이 휴식을 얻은 동료들을 이끌고 널따란 연무장에 앉아 밝은 달빛 아래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술잔을 나누는 것이었다. 흥이 오를 때면 분위기를 돋우려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마음껏 땀을 흘리고, 모두와 한바탕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거침없이 술잔을 기울인 채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 삶이란, 원래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마음껏 즐기고 누리는 것이다.
내 마스터는 겉모습처럼 무척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일은 거의 없었다.
햇빛을 닮은 환한 그의 미소는 모든 사람에게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마스터는 항상 말했다. 자신마저 자신있는 미소를 보이지 못하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그런 마스터도 좀처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떠올릴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날의 저녁은 무척 기묘했던 걸로 기억한다. 석양도 평소처럼 따뜻한 붉은 빛이 아닌, 이상할 정도로 붉은 핏빛으로 빛났다.
감시탑에 오르자, 저 멀리 있는 산 정상에서 짙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다음 순간, 꾀죄죄한 그림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관문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자, 장군...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거의 숨넘어갈 듯한 상대의 모습에 난 감시탑 아래로 훌쩍 뛰어내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내를 부축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있는 힘껏 달려온 남자가 쉴 수 있도록 방으로 데리고 가려 했으나, 그는 거듭 고개를 저으며 간청했다.
「장군을 뵙게 해주십시오! 장군을 꼭 뵈어야 합니다!」
나와 주변의 병사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를 마스터 앞으로 데리고 갔다.
마스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대성통곡하며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닌가!
「장군님의 후배께서 쓰신 마지막 서한을 가져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남자는 우리 앞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평온한 겉모습 아래 숨겨진 죄악을 천천히 밝히기 시작했다.
6.3. 3장. 가을의 후회
사교의 행동은 이 사건을 듣게 된 사람들을 모두 큰 충격에 빠뜨릴 만큼 잔인하고 비열했다. 우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마스터를 쳐다봤다. 마스터처럼 밝은 성격의 소유자도 이번 만큼은 눈에 띌 정도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사특한 무리들을 없애기 위해 우린 있는 힘껏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마스터는 우리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할 순 없었다.
마스터는 일국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중임을 짊어지고 있다. 위험에 처한 후배를 구하러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겠지만, 함부로 출병했다가는 타국에 선전포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그의 식신으로서 초조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스터의 무력함이 느껴졌다.
우리의 이웃 나라는 부유한 강대국이다. 막강한 병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국 간 교류도 활발했다. 게다가 그들의 군주는 우리의 든든한 맹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영토가 워낙 광활한 탓에, 그들의 군주가 영토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일일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스터가 감정을 억누른 채, 분노로 떨리는 손으로 사교가 저지른 참극에 대해 황성에 서신을 쓰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는 순진하게도 이렇게 하면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마스터가 예상하지 못한 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극에 대해 알게 된 왕께서, 이웃 국가의 정보를 염탐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맹우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자 상대로부터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는 게 아닌가!
이런 대답에 우리는 분노를 억눌러야 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어렵사리 얻어낸 태평성세를,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스스로 무너뜨릴 순 없었다. 마스터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도, 노력을 기울인 왕도,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참는 쪽을 선택한 마스터...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난 마스터의 어깨를 꽉 잡았다. 나의 위로가 손바닥을 타고 마스터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러자 마스터가 뒤돌아보며 마찬가지로 위로가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답장을 받은 날부터 마스터가 예전처럼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훈련장 앞에 앉아 멀리 흘러가는 흰 구름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마스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언젠가 마스터가 이 모든 걸 떨치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마스터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잘 웃던 원래의 모습을 점차 되찾기 시작했다.
마스터는 형제들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예전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난 한숨 돌리며, 손에 든 술을 그에게 건넸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날부터 그동안 마스터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퍼붓던, 감정적으로 굴지 말라던 늙은 문관들이 장군의 웃음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들은 탄식 어린 말투로 장군이 어른이 됐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예전에는 확실히 고집스러워서 나이 든 선생들을 걱정시켰었다고 비웃어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 담긴 뜻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또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마스터에게 연모하는 상대가 생겼다.
다행히, 그 소저 역시 용맹하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마스터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보였다.
마스터와 잘 어울리는, 무척이나 귀여운 소저였다.
두 사람은 꽃 앞에서 인연을 맺었고, 달 아래서 평생을 약속했다.
화려한 붉은 가마 행렬이 늠름한 백마의 호위 아래 꽃처럼 아름다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 속에, 두 사람은 효성스럽고 듬직한 아이들을 얻었다.
큰아들은 학문에 조예가 깊어 태자를 보필했고, 둘째 아들은 무예가 뛰어나 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자상한 마음씨로 이름을 떨친 막내딸은 수많은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아이들 중 몇몇은 날 정답게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찹쌀떡처럼 말캉한 볼을 가진 아이가 내 손가락을 잡고 배시시 웃으며 날 올려다볼 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게 동화 속 해피 엔딩 같았다. 왕의 견제도, 형제간의 갈등도, 가정의 불화도 없었다. 혈기 넘치는 소년이었던 마스터가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는 모습을 나는 함께했다.
하지만, 인간은 세월의 흐름 속에 내리막길을 걸어 가야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평생을 함께해 온 형제 곁에 서서, 늙어버린 마스터가 내게 손을 내밀며 뭔가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평탄한 그의 삶에 아쉬운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등지기 전에, 내 손을 꽉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했다.
「용봉탕, 내가 몸담았던 사문에는 동문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생전에 이루지 못한 바람을 최선을 다해 들어줘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내 여태 행복하게 살아왔다만, 이 일만은... 네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 같구나.」
주름으로 뒤덮인 그의 손이 품 안에서 수십년 동안 품고 있었을, 서신들을 꺼냈다.
그제야 나는 그가 그 일을 즐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4. 4장. 겨울 여행
마스터는 나를 소환한 후, 나를 자신의 친형제처럼 여겼다.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식신인 난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 치도 앙설이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내 앞을 수 차례 막아섰던 인간에게는 족히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그의 바람은, 곧 내가 존재하는 의미이다.
아쉬워하는 조카들을 뒤로하고 난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신물과 여비를 들고 여정에 올랐다.
여정에서 나는 점점 세력을 키우는 사교와 몇 번이나 부딪혔다. 한 번은 그들과 싸우다가 황천길에 오를 뻔하기도 했다.
다행이 서호용정과 자추막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뒤로 나는 그들의 정원에 머물게 됐다.
정원에는 용정 말고도 다른 식신들도 있었는데, 모두 사교에 피해를 입은 식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놈들의 거점에 관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리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그놈들과 함께 죽겠다는 각오를 품고 혼자 여정에 올랐다.
용수소는 겉모습과 달리 꽤 여린 타입이라,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놈들에게 맞서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추막은 어렵사리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왔다. 그 속에서 우리한테 걸려든 서호용정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우리가 눈 감아주는 바람에 세력이 부쩍 커버린 사교가 그들을 또 다시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것을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다.
정원에서 한가로이 달 구경이나 하는 게 녀석들에게 가장 어울린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길가에서 꾀죄죄할 정도로 남루한 옷차림을 한 식신을 만났다.
상처투성이의 온몸, 당장이라도 사라질만큼 괴로운 안색, 한 여성 식신이 그런 그를 옆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길이었는데도, 그자는 날 불러세웠다.
「당신, 어둠의 땅으로 가려는 겁니까?」
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려 상처투성이의 녀석을 수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왜? 넌 그쪽 사람이냐?」
그는 내 말에 담겨있는 적개심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흥미로운 상대이다. 부드러운 인상을 띠고 있지만 그보다는 뼛속부터 오만함이 흘러넘쳤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 어둠의 땅에는 꼭 가야 하니 막을 생각하지 말라고.」
「그곳은 이미 파괴됐습니다. 괜찮다면, 한 사람을 구하러 가줬으면 합니다...」
무너진 담벼락 앞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식신과, 척 봐도 높은 자리에 앉은 것으로 보이는 사교 신도를 쳐다봤다. 여정 내내 봤던, 사교에 의해 파괴된 마을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죄없는 사람들, 당초 자신의 잘못을 후회했으면서도 끝끝내 돌아서지 못한 신도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연거푸 떠올랐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몸을 돌려 떠나려 했지만 몇 걸음 채 못 가서, 마음을 독하게 먹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다시 몸을 돌려 가라앉지 않는 분노를 품고선, 바닥에 쓰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식신을 데리고 초토화된 땅을 빠져나왔다.
6.5. 5장. 용봉탕
어둠의 땅에서 웅황주를 데려온 용봉탕은 근처의 객잔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카오야가 남긴 말뜻을 몇 번이고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웅황주가 깨어난 후, 그의 멍한 모습에 용봉탕은 가까스로 눌러왔던 분노, 오랫동안 쌓아뒀던 사교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다정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던 용봉탕이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웅황주의 역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리곤 그가 그동안 저지른 일을 힐문하며 속셈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웅황주의 멍한 모습에 맥이 빠지고 말았다. 용봉탕은 갑자기 손에서 힘을 빼곤 멱살을 풀었다.
그 순간, 그는 카오야의 말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불쌍한 녀석이랍니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웅황주를 쳐다보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튼날, 용봉탕이 웅황주의 방을 다시 찾았을 땐, 심한 부상이 아직 남아있는 녀석이 어제 자신이 떠날 때와 똑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는 게 보였다. 멍하고 막막한 표정의 웅황주를 보며 용봉탕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는 웅황주를 사교에 의해 유린당한 마을로 데리고 가서, 품에 숨겨 놨었던 책자를 꺼내 들었다.
「마을 서쪽에 사는 할머니네는 식구가 넷이지. 손녀가 사교 신도의 제물로 끌려가게 되자, 그 부모가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가족을 잃은 할머니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지.」
「......」
「북쪽 입구에 살고 있던 한 가족은, 신교를 따르지 않겠다고 해서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거기엔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된 갓난아이도 있었지.」
「......」
「성 동쪽에는 두부 파는 소녀가 살고 있었지. 교주의 첩이 되는 걸 거부했다가, 산 채로 창에 꿰뚫려 숨통이 끊겼다.」
「...난...」
「보여? 이게 바로 네가 만든 약이 가져온 결과다.」
「나, 난... 미안해...」
웅황주의 머리가 바닥까지 숙여졌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을 알지 못하는 웅황주의 모습에, 용봉탕은 미간을 찌푸렸다.
식신으로서, 마스터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모, 형제처럼 마스터는 이제 막 이 세상에 온 식신을 세상으로 이끈다.
용봉탕의 마스터가 눈 부신 태양이라서 용봉탕의 온 세상이 밝게 빛날 수 있었다면,
웅황주의 마스터는, 손을 뻗어도 제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이었다. 벼랑 밖에서 춤추는 한 마리 반딧불.
그 아스라한 빛에 대한 동경이 웅황주를 점차 벼랑 밖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사교가 가져다준 엄청난 고통을 젊어지고 있는 카오야가, 사교를 위해 일한 녀석을 풀어주기로 선택한 이유를 웅황주도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용봉탕은 웅황주를 데리고 많은 곳을 방문했다. 파괴된 마을을 찾을 때마다 웅황주는 용봉탕이 알려준 대로,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모두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웅황주는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생존자를 도울 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옆에 서 있던 용봉탕은 뾰족한 돌이 웅황주를 향해 날아드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웅황주는 피하지 않았다. 인간에 의해 목숨을 잃지 않는 식신이라고 하지만 공격을 받으면 아프고, 인간처럼 피도 흘린다.
충분히 분이 풀린 건지, 아니면 아프다고 비명도 한 번 안 지르는 웅황주가 시시하다고 느낀 건지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용봉탕은 웅황주 곁으로 걸어가서 그가 조제한, 낙신을 쫓을 수 있는 단약을 바닥에서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몸에 남아있는 썩은 채소나 달걀 껍데기를 떼어내더니, 옷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 주었다.
「돌아가지,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