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삼국지)
虞溥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자는 윤원(允源).
평원 창읍 사람으로 아버지를 따라 농서로 향했고 당시에 독발수기능의 난으로 인해 양주는 크게 혼란한 상태였으며, 그 곳에서 무덤에 있는 기록에 관심을 가졌고 국경에서 군사 훈련이 일어나 여러 사람들이 구경을 갔지만 우부는 관심이 없었다.
우부는 효렴을 통해 시중이 되었고 이어서 상서도령사를 지냈다가 우부는 5등작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채택되었으며, 공거사마령, 파양내사 등을 역임했다. 문서의 편찬 사업을 하면서 많은 학자들을 모아 700여 명이 모였고 유교로 교화하는 정치를 했으며, 우부의 정치는 엄격했지만 사납지 않았다.
우부는 춘추의 주석을 달았고 강표전을 저술했으며, 문중, 시부 수십 편을 만들었고 62세에 낙양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