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준 유괴 살인 사건

 


1. 개요
2. 사건 내용
2.1. 범행 전
2.2. 사건 발생
2.3. 사건 경과
2.4. 사건 종료 및 진상
3. 결말
4. 둘러보기

자수를 한다면 지은 죄는 밉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아주 최대 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줄 테니까 꼭, 자수하도록[1]

1988년 1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당시 혜준양 가족에게 방문하여 직접 언급했던 약속.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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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3일 서울 송파구 자신의 집 앞에서 놀고 있던 7살 어린이 원혜준(元惠準, 1981년생[2]) 양이 납치되어 결혼자금이 필요했던 범인 함효식에 의해 이튿날 목졸려 살해당한 유괴살인 사건이다.

2. 사건 내용



2.1. 범행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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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24세 함효식(咸孝植 - 서울 관악구 봉천2동 봉송연립 202호)은 1987년 11월 30일 밤 11시에 경기도 구리시에 주차되어있던 김모씨의 붉은색 르망 승용차를 훔친 뒤 몰고 다니면서 범행 대상을 모색했다.

2.2. 사건 발생


동년 12월 2일 낮 12시 30분쯤 서울 송파구 자신의 집 앞에서 놀고 있던 5살 어린이 원혜준 양을 발견, 집이 크고 부잣집 같아 유괴하기로 마음 먹고 다음 날인 3일 낮 11시 30분쯤 유치원을 다녀오던 혜준 양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너희 엄마가 친구집에 있으니 나하고 가자" 라고 유인한 뒤 훔친 승용차에 태워 혜준 양을 유괴했으며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려 차량 트렁크에 실어둔 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터에 하룻밤을 방치한 뒤 다음날 오전 8시쯤 일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혜준 양을 목졸라 살해했으며, 같은 날 오후 혜준 양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 집 부근 봉천동 우체국 앞에서 혜준 양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유괴사실을 알리고 상업은행 계좌를 만들었으니 몸값 500만원을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함효식은 이어 혜준 양의 사체를 뒤 트렁크에 넣어둔 채 차를 몰아 평소 처갓집을 드나들면서 알고 있던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 널미고개에 도착해 산 중턱에서 10m 아래 낭떠러지로 혜준 양을 던져버린 뒤 사체를 나뭇잎으로 덮었다가 암매장하였다.

2.3. 사건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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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요구대로 돈을 입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없자 경찰은 1월 5일부터 표창과 포상금 300만원을 걸고 공개수사로 전환하였으며, 전국적인 탐문수사와 서울대와 각종 전문가들 그리고 당시 최신기술을 총동원하여 수사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전국에서 수백 수천건의 제보가 접수되었고 당시 조폭이나, 유괴, 법질서 위반이라면 치를 떨었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가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강남경찰서에 직접 방문(순시)하여 지시하고 같은 달 13일, 혜준 양 가족에게 방문하여 직접 범인에게 자수를 권하는 등 전국적으로 혜준 양 찾기 범시민 운동이 시작하였다. 그러던 와중 함효식은 12일 유괴범이 유서를 남긴 채 한강에 투신했다는 자작극을 시도했으며 이 사건으로 경찰수사의 큰 혼선을 주었다.

2.4. 사건 종료 및 진상


하지만, 1988년 1월 15일 범인 함효식은 지금까지 비공개로 진행되던 수사가 전국적인 공개수사로 전환되고, 점점 포위망이 좁혀오자 1988년 1월 15일 자수한다. 하지만 그는 공범이 있으며, 자신은 운전만 했을 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수사를 어렵게 만들면서 혜준 양의 가족들만 애타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찰의 심문으로 진술을 번복하여 15일 오후3시 서울에서 70km 떨어진 강원도 홍천군 널마고개 중턱에 암매장된 혜준 양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으며, 19일 범인 함효식은 다소 초췌한 모습에 자수했을 당시 입고 있던 검정색 방한복 차림으로 보도진과 근처 주민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종 무표정한 얼굴로 범행을 재현하며 현장검증을 하였으며, 또한 밝혀진 사실로는 그는 혜준 양이 트렁크에서 혼자 질식사했다는 거짓 진술과 혜준 양이 실족사 한 것처럼 위장했지만 이 역시 경찰의 수사로 거짓임이 밝혀졌다.
결국 혜준 양은 유괴 43일만에 범행 2일째에 범인에 의하여 직접 목이 졸려 질식사로 살해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3. 결말


범인 함효식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아동유괴범에게 전하는 대표적인 말인 "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라는 말처럼[3] 특정범죄가중 처벌법위반(미성년자 약취유인죄의가중처벌)및 시체유기, 절도 그리고 살인죄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고 재심 없이 1989년 8월 4일 "혜준이에게 미안하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4. 둘러보기




[1] 하지만 안타깝게도 혜준양은 이미 범인 함효식에 의하여 살해당한 이후였다.[2] 살아 있었으면 현재 43세.[3] 전두환이 자수하면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어 준다고 한 말은 어디까지나 아이를 살려 보냈을 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