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북서부에 있는 도. 지리적으로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해당 두 개 시와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권을 형성하고 있는 광역자치단체이다.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1342만 명으로 대한민국 전체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유일하게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 광역자치단체이다. 경기도에 속하는 31개 기초자치단체는 3개 군[11] 을 제외하곤 모두 시(市) 행정[12] 을 실시하고 있고, 특히 이들중 10개 시는 50만 내지 100만 인구를 초과하여 특례시 행정을 실시하고 있을 정도로, 번화한 권역이기도 하다. 그나마 양평군도 인구가 10만명을 넘어 시승격을 추진중인 상황으로, 만일 양평군까지 시로 승격한다면 경기도에서 군은 연천군과 가평군 단 두 곳만 남는다. 여담으로 현재 가장 군이 많은 도는 17개 군을 관할하는 전라남도이며, 시가 가장 적은 도는 청주시, 충주시, 제천시의 단 3개 시만 관할하는 충청북도이다. [13]
강원도, 황해도와 더불어 남북 분단된 3개의 도 중 하나이다. 물론 북한이 변경한 행정구역으로는 휴전선 이북의 경기도 지역은 개성특별시와 황해북도, 강원도로 흡수시켰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분단된 도는 강원도 뿐이다. 반대로 남한이 변경한 행정구역에서도 남한령이 된 황해도 지역은 경기도로 흡수했으나 현재는 인천광역시에 속한다.
2. 상징
3. 청사
[image]
[image]
[image]
경기도청 본청과 경기도의회. 주소는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1(매산로3가 1-1번지). '''인구 1,341만 도의 도청'''치고는 스케일이 크지 않은것 처럼 보이지만, 사진에 있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저 건물은 신관과 제3별관이고 구관, 제1별관, 제2별관, 생활관(현재 문서고로 사용 중)등이 더 있다.[22]
[image]
경기도청 북부청사. 주소는 의정부시 청사로 1(신곡동 800번지)에 위치해 있다.[23]
[image]
2021년 광교신도시로 이전예정인 경기도청 신청사 조감도
4. 경기라는 용어에 대해
다른 도의 이름은 고려~조선시대 지역 내의 대표 도시 두 곳의 첫글자를 딴 것이지만[24] , 경기도라는 이름은 수도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경기(京畿)'에서 따온 명칭이다.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경기(京畿)의 뜻은 '''수도를 중심으로 한 가까운 주위의 지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행정구역의 한 단위인 도(道)를 붙여 고유 지명인 경기도(京畿道)가 된 것이다. 경기도라는 명칭은 본래 중국의 당나라에서 수도였던 장안의 권역을 가리킬 때 사용했고, 그 당의 행정구역을 차용한 고려와 조선, 그리고 현대 대한민국까지 사용되고 있다.
'경기'는 서울(수도)[25] 을 뜻하는 '서울 경(京) 자'와 수도의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경기 기(畿)[26] 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간혹 문화적 측면에서 수도를 포함한 해당 "권역" 일대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부터 수도권이라는 의미로 경기, 기내(畿內)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일례로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긴키(近畿), 혹은 기나이(畿內)라고 하며 이 기(畿) 자를 사용하는데, 모두 수도 주변이란 뜻이다. 메이지 시대에 수도가 에도(도쿄)로 바뀌기 전까지 일본의 명목상 수도는 항상 간사이 지방에 있는 교토였기 때문이다.
4.1. 경기의 사용례
우리 역사 속 경기가 기록된 사례는 신라왕조 때가 최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수도 서라벌 중심지(경주분지 가운데 지역) 동쪽은 대성군(大城郡), 서쪽은 상성군(商城郡)을 두었는데, 전국 다른 군은 밑에 현(행정구역)이 있는 것과 달리 이 대성군과 상성군 두 군은 특이하게 아래에 현 대신 정(停)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상성군은 남기정(南畿停), 중기정(中畿停), 서기정(西畿停), 북기정(北畿停), 막야정(莫耶停) 5개의 정으로 되어있고, 대성군은 약장현(約章縣)과 동기정(東畿停)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기(畿) 자는 '도읍의 주변'이란 뜻으로, 바로 경기도 할 때의 기 자다. 지리적 위치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대성군과 상성군은 일종의 경기도, 내지는 수도권 역할에 해당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정황상 여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왕경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 역시 이 정도 범위까지 포함된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신라의 공식 행정구역명은 '동서남북+기'로 여러 개로 쪼개져 있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여러 구절에 의하면 이를 통틀어 경기(京畿)라는 이름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경기라는 이름으로 실제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된 사례는 고려왕조 때가 최초다. 1062년, 제11대 국왕 문종이 서경[27] 에 부속도서 '경기사도(京畿四道)'를 설치했는데, 이 것이 한국사 최초의 경기도다.[28] 서경을 중심으로 경기도가 네 구역으로 나뉘어 감싼 것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1390년, 고려 마지막 국왕인 공양왕은 수도 개성부[29] 에 부속도서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30] 이 것은 중앙수도에 경기도가 설치된 최초의 사례다.[31]
신라왕조나 고려왕조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경주시, 개성시 주변지역[32] 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조선왕조가 개창된 뒤 공양왕의 전례를 따라 수도 한성부를 중심으로 교외 행정구역 '경기도(京畿道)'를 설치하니,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경기도다. 한편 이렇게 경기도를 만들면서 기존의 양광도에서 북쪽 반쪽 정도가 잘려나갔는데, 양광도의 남은 반쪽을 베이스로 충청도가 만들어졌다.
4.2. 서울시와 경기도의 동질성
대한민국의 경기도는 휴전선으로 인해 잘려서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전체 경기도 지도를 보면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한 타원형에 가까운 편이다. 즉 서울은 경기도 안에 들어와 있으며, 당연히 상호 영향을 받았다.
정치, 행정 상으로는 1946년에 서울특별시가 경기도에서 분리되었기에 '경기'라고 볼 수 없다.[33]
언어·문화(풍습) 상으론 서울도 경기의 일부에 속한다. 단적인 예로, 서울 방언이 경기 방언의 하위 방언으로 취급되는 것으로 꼽을 수 있다.[34] 향토 전통 요리도 왕실 음식을 빼면 서울 요리와 경기 요리도 서로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경기 민요의 지역적 범위에 서울, 인천이 포함된다.
5.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평안도와 쌍벽을 이루는 한반도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서, 중국의 '중원'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다.
초기 백제가 터를 잡았던 지역이며 장수왕 때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가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다. 삼국이 돌아가며 한강유역을 차지한 것이 각자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 위상이 공고했다. 이 때 신라가 이 지역을 접수했음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국보인 북한산 순수비다.
통일신라 때는 9주 5소경 중 한주(한산주)였는데, 지금의 도청(행정)에 해당하는 주치는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이성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한주의 중심도시가 지금의 광주시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당시 한주가 고려시대 광주가 됐고 광주에서 나중에 하남시가 독립한 것이므로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당시에는 행정구역의 숫자가 적어 신라의 변방으로 인구밀도는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사적으로는 중요해서 지방군인 10정을 다른 주에는 1정씩 배치했으나 한주에는 특별히 2정 배치하기도 했다.
고려 시대에는 패서 지역의 호족이었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다시금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고려시대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개경(송도) 및 그 주변 지역에 해당되었는데, 이 당시의 경기는 현재 북한에 남은 경기도 범위와 비슷하다. 중기 이후 남경(南京, 현 서울특별시 사대문안 일대)이 중요시되면서 경기의 영역이 남경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고려 시기 경기가 본격 확장된 것은 문종 23년(1069년)인데, 이 시기에 양광도에서 경기로 편입된 지역은 지금의 서울(단, 구 광주군 지역인 강남, 송파, 강동 제외), 인천, 부천, 김포, 광명, 시흥, 안산, 화성 서부(구 남양군), 안양, 과천, 군포, 고양, 파주,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 구리, 남양주 일대에 속한다. 다만 이 시대의 경기는 개성 중심의 주변지역이었으므로 지금의 황해도 동부까지 경기에 속했고, 도(행정구역)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경기'라는 특수한 행정구역이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수도가 남경(한성, 한양)으로 천도되면서 현재의 경기도 영역이 확정되고 정식 도(道)가 되었다. 실제로 다른 도와는 달리 이 지역을 총괄하는 수장인 종2품 관찰사직의 경우 '경기도관찰사'보다는 '''경기관찰사'''란 직함으로 불린 사례가 더 많다. 실록에서 검색되는 '경기도관찰사'는 원문을 찾아보면 '京畿'''道'''觀察使'가 아니고 '京畿'''都'''觀察使'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道'를 쓰는 다른 도의 관찰사들과는 약간 차이가 난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경성부)이 경기도에 포함되었다.
해방 이후 1947년 서울시가 서울특별자유시(1949년 현재의 서울특별시로 개칭)로 승격되어 경기도에서 분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청은 그대로 서울시내에 있다가 1967년 수원으로 옮겨갔다. 개별 행정구역이었다가 강제합병된 서울과는 다른 예지만 분리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예로는 경상남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전라남도청이 광주에서 무안으로, 충청남도청이 대전에서 홍성으로 옮겨간 것과 유사하다. 애초에 조선왕조 때에도 경기도 감영[35] 이 한성부 내에 있었다. 다만 1896년부터 수원으로 이전, 1910년까지 14년 동안 있었다. 1967년 당시 경기도청 유치 과정에서 경기도의 양대 대도시였던 수원과 인천이 치열하게 유치전쟁에 나섰다. 결국 유치전에서 수원이 승리했는데, 앞의 주석에서 설명한 대로 구한말에 14년 동안 경기도 관찰부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사통발달 교통이 편리하여 접근성이 뛰어난 점을 감안한 듯하다. 이후 인천은 1981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인천직할시로 분리되어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변경된다.
역사 관련 서적에서(특히 조선 이전의 시기를 설명할때) '경기 지역', '경기 일대'이라는 표현은 행정구역상 지금의 경기도 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북한의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개풍군, 장풍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역사책에서 삼국시대에 관해 설명할때 '백제는 지금의 경기지역을 상실하였다'는 표현에서 경기지역은 지금의 경기도(미수복 지역 포함) 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지역도 포함한다는 의미라는 것.
5.1. 인구
2020년 기준 '''1,342만''' 명으로 한국에서 인구 1위, 인구 증가율 1위를 하고있는 지역이다. 최근에 개발된 화성시, 용인시, 남양주시, 김포시 등 도농복합시 지역이 인구가 빠르게 늘고있으며 반면 도시의 역사가 오래된 일반 특례시 성남시, 부천시, 안양시, 안산시 등은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평균 연령도 전국에서 가장 젊은 지역 순위권에 드는 지역이지만 북동부를 중심으로 고령화 현상이 돋보이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북동부 3개의 군 지역들은 전라남도 평균보다도 고령화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남서부에 위치한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 용인시, 시흥시, 김포시는 평균 연령 40세가 되지 않는 젊은 동네다.
5.2. 인구 추이
6. 지리
[image]
수도권(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을 나타낸 지도.
지도를 보면 서울특별시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나, 완전히는 아니고 서울특별시의 서쪽 일부(강서구)가 인천광역시(계양구)와 접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완전히 감싼다기보다는 95% 정도 감싸고 있다.[36] 이외에도 인천광역시 역시 경기도와 접한다. 주요도시는 수원시, 고양시, 용인시, 성남시, 시흥시, 안산시, 안양시, 부천시, 남양주시, 화성시, 의정부시, 평택시 등이 있다.[37]
해방 이래로 서울특별시, 북한, 인천광역시에 차례로 땅을 내준 역사가 있어 어쩌고보면 안습하기도 하다. 경기도 고양군에 있던 옛 성저십리 지역이 서울시에 재편입된 건 어차피 원래 서울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38] 이라 그다지 안습한 일은 아니지만,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개성시를 북한에 내주고 1963년 서울시역 대규모 확장 시 경기도 시흥군, 김포군, 광주군, 양주군의 상당부분을 서울시에 내줘야 했던 것은 경기도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터. 이후 1973년에는 고양군 일부분[39] 이 서울에 편입되었고, 1981년에는 인천시가 인천직할시(현 인천광역시)로 분리되었으며, 1989년에는 김포 계양과 영종도 일대, 1995년에는 강화군, 옹진군과 김포 검단이 인천시에 편입되었다. 다만, 영종도는 원래 인천도호부 관할이었고 김포군 계양면 역시 역사적으로 부평도호부의 주요 지역이었기 때문에 반발은 그다지 없었다..
관할 구역에서 '''바다 비율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 경기도의 최약점으로 이것은 과거 이곳의 바다 중 70% 가까이가 구 옹진군과 강화군[40] 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안산공단의 건립과 시화호 간척 사업의 실패로 수원 근해의 넓은 해역까지 잃었으며 그나마도 구 옹진군에서 풍도를 포함한 대부도 일대를 가져와서 바다에 코 끝은 겨우 댈 정도다. 그러나 대부도마저 옹진군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이건 뭐…그래서 해양 개발 방면에서의 경기도는 북부의 경인 아라뱃길, 서남부의 '''시흥시'''와 '''화성시'''와 '''평택시'''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다.
관할하는 유인도는 달랑 '''6개.''' 풍도, 대부도, 육도(이상 안산시 관할), 제부도, 국화도, 입파도(이상 화성시 관할). 그나마 연해 도시 가운데 김포시 , 시흥시, 평택시는 유인도를 가지지 않는다. 참고로 인천광역시의 팽창 과정에서 경기도가 상실한 유인도가 전부 '''39개'''다.[41]
한편 북쪽으로는 강원도와 함께 휴전선을 끼고있다. 대한민국에서 '''북한과 인접한 최북단의 영향이 있어서''' 북한의 도발행위 등에 민감한 편이며 특히 강원도보다 이곳은 수도권이기에 더욱 경계가 삼엄하다.
경기도 서해안과, 서울과 가까운 남서부(수원 등)은 온대기후이고, 경기 북부와 동부는 냉대기후이다.
서울 근교 지역과 남부의 수원시까지는 서울특별시와 마찬가지로 열섬 현상을 받아 여름에 상당히 더운 곳이 많다. 더위는 외곽으로 갈수록 덜하며 추위는 외곽으로 갈수록, 특히 냉대 기후에 해당되는 북부와 동부가 심하다.
6.1. 권역 구분
대체로 동부와 서부보다는 한강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를 구분한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도청은 수원과 의정부 두 곳에 청사를 두고 있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오랜 세월 동안 경기도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독립된 광역시(직할시)로 분리된 지 30여 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행정상으로는 경기도에서 독립되어 있어도, 언어·문화(풍습)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경기 서부권이라 할 수 있다. 부천(그리고 가끔 추가적으로 광명, 시흥까지)과 묶어서 경기 서부권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경기도는 다른 도(道)와 달리 행정구역보다는 거점 중핵도시(수원, 의정부, 성남 등)를 중심으로 단일한 생활권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 이는 비교적 많은 인구와 그로인한 도시간의 연담화, 그동안 수없이 이어진 행정구역 개편에 기인한 것이다.
[image]
수도권의 생활권을 간단히 나타낸 자료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활권 문서로. 다만 '하남은 성남 생활권이 아닌 서울 생활권이다.'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42] 가평 또한 '춘천 생활권이 아닌 남양주 생활권이다.' 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43]
7. 경제
경기도는 해안가 일대가 주로 발전한 탓에, 동서 차이가 매우 심한 편이다. 경기 동부라고 일컫는 지역들은 서부 해안가 지역들에 비해 확연히 푸대접 받는 낙후 지역이다. 일단 연천군, 파주시의 경우에는 휴전선과 접해있는 탓에 북한의 도발 위협에 노출되어있으며, 경기 동부는 교통이 비교적 불편한 편이라서, 투자자들이 개발을 꺼리기 때문이다. 또 군부대가 많고, 민간 인구도 적다보니 지역 목소리가 작고, 목소리가 작으니 정책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그나마 경기 동부 중에서 도시 규모가 있고 서울에 붙어있는 성남시 , 구리시, 의정부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경기도에서 시골인 연천군, 포천시, 가평군, 양평군, 여주시의 낙후도는 인천광역시의 강화군, 옹진군의 낙후도와 거의 대등할 정도로 심각한 편이다.
7.1. 산업
서울특별시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공장이 많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주로 교외산업들과 첨단산업이 많이 발달한 편이다.
- 서비스업
- 공업
- 농업
8. 교통
8.1. 철도
일반철도로는 경인선, 경부선, 경원선, 경의선, 중앙선, 경춘선, 안산선, 교외선, 경강선 등이 있다. 교외선을 제외한 다른 노선은 수도권 전철[47] 이 운행 중이며 경인선과 안산선, 경강선은 수도권 전철만 운행한다.
남양주시와 양평군에서는 중앙선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역은 양평역으로, 강릉으로 가는 경강선 KTX와 중앙선 KTX,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이전에는 ITX-새마을도 정차했지만, 중앙선 ITX-새마을은 2021년 1월 5일 개편 이후로 폐지되었다. 용문역부터 원주역 사이에 있는 양평군의 철도역들은 모두 하루 왕복 2~4회의 무궁화호만 정차하는 시골역이다. 남양주시에 있는 덕소역에서도 안동, 강릉, 태백 등지로 향하는 무궁화호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출퇴근용으로 하루 왕복 4회만 정차한다. 남양주시의 평내호평역, 등지에서는 춘천으로 가는 ITX-청춘 열차도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 남쪽 지역인 안양시, 수원시, 오산시, 평택시, 화성시에서는 부산, 목포, 광주, 대전 등지로 가는 무궁화호와 새마을/ITX-새마을, 누리로, 그리고 KTX열차와 동탄역, 평택지제역에서는 SRT도 이용할 수 있다. 수원역에는 모든 무궁화호, 누리로와 새마을/ITX-새마을이 정차하고, 수원경유 KTX도 정차한다. 평택역에도 모든 무궁화호, 누리로와 일부 새마을/ITX-새마을이 정차한다. 오산역, 서정리역, 안양역에는 정차횟수가 적다. 광명시에서는 광명역을 통해 경부고속선, 호남고속선,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KTX를 이용할 수 있다. 동탄역에서는 목포나 광주송정역, 부산역에서 출발하여 수서역에 도착할 때 동탄역에 정차하거나(경부.호남선) 그 반대로 수서역에서 동탄역을 지나 부산역 광주송정역 목포역으로 갈 때 정차하는 경우이다.
8.2. 도로
고속도로로는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서울양양고속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세종포천고속도로, 평택제천고속도로, 평택시흥고속도로, 평택화성고속도로 등이 있다.
국도로는 1번 국도, 3번 국도, 6번 국도, 17번 국도, 21번 국도, 37번 국도, 38번 국도, 39번 국도, 42번 국도, 43번 국도, 44번 국도, 45번 국도, 46번 국도, 47번 국도, 48번 국도, 75번 국도, 77번 국도, 87번 국도 등이 있다.
8.3. 대중교통
9. 언어
수도권의 주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방에서 올라온 이주민이 많아 '서울' 내지는 '''경기도''' 토박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경기 방언을 써도 억양은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지방색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특징.
외지 출신 이주민을 제외해 놓고 경기도 토박이만 놓고 봤을 때 이 지역 내에서도 방언이 약간은 존재한다. 크게는 한강을 기준으로 경기 북부 방언과 경기 남부 방언으로 갈린다. 충청도와 접한 평택과 안성은 충청도 방언과 비슷한 억양이나 ~여, ~겨 등의 어미를 사용하기도 한다.[48] 강원도 영서지방과 접한 여주시, 양평군 등지도 강원도 방언 특유의 영향을 받았다. 가평군의 방언은 아예 영서 방언으로 분류된다. 한편, 수원시, 용인시 쪽 방언의 경우 평서형 구어체의 말맺음 중 의존명사 '것'이 'ㅅ'이 탈락하여 '~하는 거', '~인 거'로 끝나는 경우이 많다.[49]
9.1. 관련 문서
10. 정치
11. 신도시 개발
서울의 높은 집값과 물가로 인해 서울에서 경기도로 주거를 옮기는 경우가 꽤 많다. 다만 일방적인건 아니라 1기 신도시나 과천시, 광명시처럼 서울 편입 논의가 있는 곳은 집값이나 물가가 서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기도 하다.[50]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백만에 이르러, 출퇴근 시간의 도로와 대중교통이 상당히 혼잡하다. 이른바 '침상도시(베드타운)'.
[image]
서울의 통근인구를 분산 수용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건설된 신도시가 곳곳에 있다.
- 1기 신도시 : 1989년 주택난 해소와 집값 안정을 위해 노태우 정부가 추진했던 이른바 200만호 주택 건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된 신도시들로, 이들을 가리켜 5대 신도시라 부르기도 한다. 1988-1990년 사업 시작, 1995-1996년 사업 완료.
- 2기 신도시 : 2000년대 들어서 개발된 신도시들로, 대부분 기존 1기 신도시들보다 더 외곽 지역에 건설되었다. 그만큼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폭발적이었고 수도권의 외연이 확장되었다는 증거다.
이러한 신도시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에 의해 급격히 개발되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와 신도시의 빈부격차가 생긴 터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우월감/열등감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51]
11.1. 1기 신도시
분당의 경우 관련 떡밥이 꽤 치열하다.[52] 성남시 주민이든(구시가지 주민이든, 분당 주민이든), 외지인이든 상관없이 '성남(구시가지)'과 '분당'을 다른 도시권역으로 분리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이유로 분당구를 '''분당시'''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못한 표현이다.
실제로 성남 구시가지와 분당구사이에는 지형적으로 산이 있어 나뉘어진 형태이다. 차라리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이 더 분당구와 같은 행정구역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부분 분당구 주민은 분당 산다고 하지 성남산다고 하지 않는다.
분당의 경우와는 달리, 일산 주민들은 고양시 = 일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53]
고양시 자체가 일산신도시와 화정ㆍ행신지구 등[54] 이 개발되면서 고양군을 통째로 시로 승격시킨 것이기 때문에 '구도심'이라고 부를 변변한 시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청소재지인 원당이나 교통의 요지인 능곡, 군부대가 밀집한 벽제 같은 지역이 고양군 시절에도 도심지 역할을 수행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서울 교외의 소도읍 정도에 불과했다.[55] 때문에 일산신도시에 사는 사람이 아닌 경우(주로 화정·행신지구나 능곡, 원당에 거주하는 주민들)에도 '어디 살아요?' 라는 질문에 보통 '일산이요' 라고 답하고, 신도시 주민들의 뚜렷한 독립 의사도 보이지 않는 등[56] , '성남 주민/분당 주민'이라는 명백한 자의식이 존재하는 성남/분당 케이스와는 양상이 다르다. 오히려 성남/분당을 구분하여 말하는 성남시 주민들과는 달리, 고양시 주민들은 일산신도시 및 그 인접지역 거주민이 아닌 화정, 행신, 원당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그냥 '일산 산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57] '''일산시'''라는 잘못된 명칭은 쓰지 말자.[58]
다만 일산의 경우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덕양구와 분쟁양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한 택지지구였던 화정지구가 행신지구와 연담되며 덩치가 커졌고, 거기에 삼송 및 원흥 신시가지까지 개발되어서 덕양구 인구만 40만명에 일산동서구 인구가 60만명 정도 되는 상황이라 '''사실상 일산이 구도심, (킨텍스 신시가지 및) 덕양이 신도심'''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로 창릉신도시 문제와 인프라 편중 문제로 일산과 덕양간에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당 신시가지 중 창릉신도시가 지어지면(38000세대, 계획인구 15만명) 아직까지 분리되어있는 행신+화정지구와 원흥+삼송지구가 완벽하게 연담되어서 하나의 신시가지를 이루게 된다. 그 경우 덕양구 인구만 75~80만명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화정과 행신 상권은 원래부터 일산과 어느정도 독립적으로 돌아갔고, 덕양구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창릉신도시 기반시설이 들어오면 굳이 일산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3기 신도시에 택지지구 여러개 합체되어 완전한 독립 생활권이 만들어지는 셈.
킨텍스 신시가지 개발사업[59] 의 경우도 1~3단계 전부 합해 20만명 정도가 예정되어 있지만 이것은 한강변에 일산신도시 시가지 모양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해서 일산신도시 시가지를 옆으로 잡아늘리는 수준이라 신시가지 사업이라기보다는 일산신도시 재개발(?) 정도로 취급하여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풍산지구나 식사지구의 재탕이라 볼 수 있는 곡산역세권개발(약 5만명 예상)도 마찬가지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요진와이시티 및 대화동 러브호텔 및 불량유흥업소 밀집지역 재개발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취급한다.) 사실 일산 핵심 도심지역(상업,업무)인 중앙로축이 한강측에 치우쳐져 있고 주거지역들과 외곽 택지지구들은 경의선쪽에 치우쳐져있어 비대칭 구조였던 게 균형잡혀지는 것이기도 하고. 잘 모르겠으면 위성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 인구는 위 모든 것이 다 입주완료되면 일산동구+일산서구가 대략 85만명 정도 된다. 이후의 계획은 아직 없으나 벽제천 부근 자투리땅을 제외하면 덕양구엔 더이상 도시계획을 할만한 평지 부지가 남지 않으므로 장월평(JDS지구)쪽이 비어있는 일산서구쪽이 추가개발될 가능성은 있다. 물론 그래봐야 2030년 이후의 일이다. '''여담이지만, 참고로, 고양시 전체의 계획인구는 시청의 비공식 발표에 따르면 160만명이란다(...)''' 그 경우 수원과 대전, 울산, 광주 인구를 넘게 된다. 충공깽
대곡역세권개발 같은 경우는 주거공급보다는 오피스(업무지구) 위주인데다 일산과 덕양 가운데에 위치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 사실 엄밀히 말하면 덕양 vs 일산이라기보다는, '''일산동서구 vs 창릉신도시+삼송/원흥지구 논란에 더 가깝다.'''
중동의 경우, 분당이나 일산 등과 달리 구시가지와 분리되지 않고 완전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신·구도시 주민들이 서로 별개의 도시로 인식하는 경향이나 양 주민간 갈등이 다른 신도시들에 비해 심하지는 않다. 다만 자체적인 일반구로 존재하지 않았고(옛 원미구 관할[60] ), '중동'이란 이름이 다른 도시들에도 꽤 많이 존재하는 동네 이름이기 때문에 인지도가 5대 신도시 중 낮은 편이다. 때문에 중동 주민들은 역명을 바꾸는 핌피 행위를 하기도 하였다.[61]
오히려 중동보다 상동이 부천 내에서는 더 인지도가 높으며, 상동이 중동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이 많기에 부천 내부에서 '중동 vs 상동' 편가르기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평촌의 경우 중동의 '신중동역' 사례보다 20여 년 앞서 과천선의 '벌말역'을 평촌역으로 바꾸어 버린 행위로 인해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하다. 평촌 역시 강남구나 분당 못지않은 부촌(富村)으로 꼽히는 지역이며 특히 교육열이 높은 편. 역시 이곳도 안양 구시가지(만안구) 주민들과 평촌이 속한 동안구 주민들과의 갈등이 있다.
평촌 주민들(동안구주민 포함)역시 '어디사세요?' 하면 안양시라고 대답하기보다 평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평촌과 사실상 같은 지역으로 보일정도로 붙어있는 의왕시 내손동, 포일동 주민들 역시 설명하기 어려워서(인지도가 낮아서) "평촌살아요" 내지는 "인덕원 살아요" 하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과거 축구명가 안양 LG 치타스[62] 에 대한 추억[63] 안양1번가라는 지역적 명소를 공유하는 입장에서 안양시의 인지도가 평촌에 비해 낮지 않기 때문에 타 신도시에 비해 이렇게 이분화하여 대답하는 경우가 적은 편이긴 하다. 평촌의 부촌 이미지에 비해 가정의 경제수준이 그렇지 못한 경우,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에 감히 평촌이라 말 하지 못하는 경우도 역시 존재한다. 어차피 안양이라 해도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듣기 때문에...
분당구처럼 뚝! 떨어진 형태로 안양 구시가지와 평촌이 나눠진것은 아니지만, 안양천 기준으로 동서로 나뉘어 구분이 뚜렷이 되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소 다른 도시 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안양 구시가지에 속하는 만안구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통과하는 지역이고 , 평촌을 비롯한 부촌인 동안구는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지난다.
국책사업중 하나인 월곶-판교선이 안양시 전체를 가로 지를 예정이라, 지역 화합의 장이 열릴것이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않는다.
그러기엔 인프라 차이가 크고 , 안양시구시가지(만안구)의 경우 분양광고 당시에도 "평촌 생활권", "평촌 인접" 등등으로 광고한다
산본의 경우 5대 신도시 중 가장 규모가 작고 군포 구시가지와 연계되어 개발되었기 때문에 신·구도시 주민간의 갈등이 적은 편이다.[64]
11.2. 2기 신도시
판교신도시가 들어오며 분당구를 분구해야 한단 이야기가 나왔는데, 분당 구(?)도심 측에선 일산구와 같은 분당남구/분당북구를, 판교신도시 측에선 분당구/판교구를 주장한다고 한다. 행정안전부에선 일단은 분구 계획이 없다고.
12. 군사
대한민국 국군 중에서 육군 지상작전사령부(수도군단, 1군단, 5군단, 6군단, 7기동군단, 55사단), 해군 제2함대[65] 및 해병대 제2사단의 작전 지역인데 참고로 육군의 제2작전사령부(옛 2군)는 지작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관할하며, 지작사의 경우 강원도와 더불어 특히 제설작전과 비교적 강도 높은 훈련으로 악명이 높지만 대신 수도권 지역이라 교통은 비교적 좋다. 지작사 예하 사단 신교대에 입영하면 재수가 좋으면 후방에 속하는 경기도 남부 지역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공군작전사령부와 제10전투비행단, 제15특수임무비행단,공군 기동정찰사[66] 도 경기도에 있다.
13. 관광
14. 상권
15. 특산물
쌀 생산이 성한 지역이기도 하여서 김포시, 이천시, 여주시, 안성시, 용인시, 평택시, 화성시, 양평군 등지에서 양곡 재배 및 생산이 활발하다. 경기도에서는 이러한 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에 경기미라는 브랜드를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경기미에는 안성마춤쌀(안성산), 이천쌀, 여주쌀, 용인 백옥쌀, 김포쌀 등이 있다.
그 외 가평군에서 재배가 성한 잣과 포천시 이동갈비와 막걸리, 평택시 오이 등도 생산이 활발한 편이다.
이천시와 여주시를 중심으로 도기(陶器)가 유명하기도 하다.
안양시, 안성시는 포도가 유명하다.
광주시 퇴촌에서는 토마토로 유명하여 토마토축제도 열린다.
16. 주변 지역과의 관계
16.1. 서울특별시
지리적으로 품 안에 안고있다는 수도 서울특별시와는 애증이 교차되는 '''필연적 관계'''다.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함께 수도권으로 불리우고 한때 일부 지역이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도역이 축소되기도 하였지만, 199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을 통해서 서울 등에서 일부 인구가 유입되기도 하였다.
16.2. 인천광역시
인천광역시와는 한때 강화군과 옹진군 그리고 서해안 일부를 인천에 내주게 되면서 도역이 축소되거나 내륙(?) 등으로 막히기도 하였지만(??) 서해안 발전에 있어서는 협력관계를 이루는 중이다.
16.3. 충청남도
역사적으로도 경기도와 충청남도는 서로간의 라이벌 기질이 매우 심각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왕족들이 많이 사는 경기도와 귀족들이 많이 사는 충청남도, 경상북도와 더불어 이 셋은 서로 라이벌 관계일 수밖에 없었고 특히 경기도와 매우 가까운 충청남도의 경우 경기도와 묘한 라이벌 기질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충청남도는 안희정 前 충청남도지사의 뛰어난 행정능력 덕분에 충청남도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고 더불어 충청남도가 매우 크게 발전하게 된 이후 충청남도의 호황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안희정 본인이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나와 문재인(當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이재명(當 경기도 성남시장), 최성(當 경기도 고양시장)과 다툴 정도로[결과] 충청남도에서도 대권주자가 나온 만큼 경기도는 더욱 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충청남도가 아무리 엄청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경기도의 아성을 전혀 넘지 못한다. 증거로 경기도는 모든 지역이 골고루 매우 잘 발달되어 있지만,[67] 충청남도는 북부 지역(천안, 아산, 서산, 당진 )[68] ]은 매우 크게 발전되었지만 반대로 남부 지역(공주, 보령, 부여, 서천, 청양 등)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충청남도는 경기도에 비해 빈부격차가 상당히 심각하다.
16.4. 충청북도
전체적으로 경기도가 충청북도를 소 닭 보듯 깔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래도 충청북도가 조금씩 발전을 하면서 대놓고 깔보고 무시하고 그러진 않는다. 경기 동남부권인 용인권(용인, 안성, 이천, 여주)에 집을 살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충청북도에서 사는 경우도 제법 많기 때문. 집은 충청북도, 직장은 경기도 이런 식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충청북도도 최근 들어 교통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16.5. 강원도
전반적으로 공생관계이다. 경기도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분야를 바탕으로 특히 공업인 2차 산업과 서비스업인 3차 산업을 통해 강원도를 지원해주는 경향이 강하고, 강원도는 그 답례로 1차 산업을 통해 깨끗하고 맑은 시골에서 자라나는 농축수산물을 경기도에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경향이 강하다.
17. 도청
원래 한성부와 경기도로 나누어져 있던 조선시대까지는 경기감영(경기도청)이 성저십리 돈의문 바깥에 있었다. 경기감영 터는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서울적십자병원을 찾아가면 된다. 원래 경기감영이 있던 곳에 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선 것이다.[69]
이후 1896년에 감영을 수원으로 이전하여 수원화성 내에 있는 화성행궁을 경기도관찰사와 수원군수가 함께 일하는 합동청사(경기도 관아+수원군 관아)로 전용했지만, 한일합방 직후에 경성부로 이전하면서 대한제국의 내부(內部) 청사를 조선총독부의 경기도청으로 전용했다. 1995년에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판정하면서 철거한 조선총독부의 경기도청은 조선시대의 의정부 청사가 있었던 곳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6-14(수도권 전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과 前 문화체육관광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도청소재지는 수원시며, 광교신도시 개발과 함께 이전한다는 계획이 잡혀있다.(2010년 12월 공사에 착수, 2013년 6월 완공 예정) 단, 기사에서 보다시피 마찰이 존재하므로 이전 시기는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
결국 2012년까지 설계만 하다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중단되어 경기도청 이전 부지만 마련해 놓고 무산되나 했는데, 다행히도 예산수입이 어느정도 나아져서 설계작업이 재개되었다. 2013년에 착공하여 2015년 완공, 2016년 1월 2일부터 가동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이에 따라 신분당선에 경기도청역이 추가될 예정이었지만 2017년에 들어서도 완공은 커녕 착공조차 하지 않았고 경기도청역은 광교중앙(아주대)역으로 역명이 결정되었다. 2021년에 경기도청을 이전할 예정이다.
18. 외지인들의 동네?
2014년 법원행정처의 자료에 의하면(기사) 경기도의 주민등록인구가 1233여만명으로 전국1위이지만, 가족관계등록부 기준 인구(즉 구 본적지인 등록기준지 기준)는 586만여명으로, 978만여명인 서울특별시보다도 적었다.(기사).
구 본적지(현재의 등록기준지)는 호주제 폐지 이전에는 차남 이하 남성이나 여성이 혼인 등의 사유로 분가한 경우 본적지가 바뀌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기도의 인구 중 절반 가량이 외지인 출신이라는 것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외지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이 경기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기도 못지 않게 외지인의 유입이 많은 서울특별시조차도 서울이 등록기준지인 사람이 978여만명인 것을 보면, 과거에 서울특별시에 태어나고 자라거나 아니면 거주하다가 경기도로 이주한 인구가 많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만일 등록기준지가 아닌 출생지를 기준으로 했다면 그 격차가 더 벌어질 여지가 있다.
2017년에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경기도 중에서도 서울 인접 지역은 현 거주지 출생자 거주 비율이 제일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19. 스포츠
경기도 전체를 연고지로 하는 스포츠팀은 바둑에 있다. 정확히는 마인드스포츠에 가깝지만. 대표적인 바둑팀은 바로 경기 한게임
[image]
한국여자바둑리그에 출전하는 경기 호반건설.
이 외에도 K리그1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2의 FC 안양이나 부천 FC 1995등 프로축구팀을 비롯해 3부리그 K3리그의 김포 FC, 4부리그 K4리그의 포천시민축구단 등 다수의 프로/세미프로 축구팀들 또한 존재한다.
20. 기타
경기도청의 홈페이지 주소는 www.'''gg'''.go.kr이다.
김문수 전 지사에 따르면, 고려 말기에 경기(도)라는 행정구역이 생긴 이래 안찰사, 관찰사 등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직들을 통틀어 김 전 지사 본인은 제 698대 경기도지사라고 한다. 이 사실이 맞다면 현 이재명 지사는 700대 지사인 셈.
경기도는 천주교 교구가 4개 있으며, 포천시와 가평군은 춘천교구 관할(!!!)이다.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를 많이 받는 도가 경기도이다.
과거 기술산업 교과가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으로 나뉘었던 시절에 경기도에 살았던 남학생들은 '''지역에 따라 배우는 과목이 달랐다.'''![70] 경기도 동부와 북부인 용인, 이천, 양평, 양주 등에서는 주로 농업을 배웠고 공업과 상업은 수원, 의정부 등 도시에서, 수산업은 김포나 강화도에서 주로 배웠다고 한다.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피구왕 통키가 실질적으로는 여길 배경으로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작중에서는 중부지방으로 나오지만.
21. 행정구역
- 본청 관할 (남부)
[1] 미수복지구인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을 포함하면 29시 5군.[2] 2019년 12월 기준 국토교통부 국토 면적 현황[3] 2021년 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4] 수원갑, 수원을, 수원병, 수원정, 수원무, 성남 수정, 성남 중원, 성남 분당을,의정부 갑, 의정부을, 안양 만안, 안양 동안갑, 안양 동안을, 부천갑, 부천을, 부천병, 부천정, 광명갑, 광명을, 평택갑,
안산 상록갑, 안산 상록을, 안산 단원갑, 안산 단원을, 고양을, 고양병, 고양정, 의왕·과천, 구리,
남양주갑, 남양주을, 남양주병, 오산, 시흥갑, 시흥을, 군포, 하남, 용인을, 용인병, 용인정, 파주갑,
파주을, 안성, 김포갑, 김포을, 화성갑, 화성을, 화성병, 광주갑, 광주을, 양주[5] 성남 분당갑, 평택을, 동두천·연천, 용인갑, 이천, 포천·가평, 여주·양평[6] 고양갑[7] 고양, 과천, 광명, 광주, 구리, 군포, 김포, 남양주, 동두천, 부천, 성남, 수원, 시흥, 안산, 안성, 안양, 양주, 여주, 오산, 용인, 의왕, 의정부, 이천, 파주, 평택, 포천, 하남, 화성, 양평[8] 가평, 연천[9] 단, 과천시와 광명시는 서울의 02, 부천시는 인천의 032를 사용. 하남시 일부 지역(舊 서부면 일부), 부천시 일부 지역(범안동 일부), 고양시 일부 지역(舊 신도읍, 화전읍 지역)도 02를 쓴다.[10] 경기도의 미수복지역은 이북 5도청이 관리한다.[11] 가평군, 양평군, 연천군. 미수복지역인 장단군과 개풍군까지 포함하면 5개 군이다.[12] 미수복지역인 개성시까지 포함하면 29개 시이다.[13] 단, 미수복지역까지 포함했을 경우에는 신의주시 단 1개 시와 19개의 군을 관할하는 평안북도가 이 두 개의 타이틀을 모두 가져가게 된다. 그러나 북한이 지정한 평안북도에도 구성시, 정주시가 있으며, 이북 5도 기준으로는 여기에 인구 70만의 강계군 지역이 포함되어 통일 때는 바뀔 가능성이 높다.[14] 깃발로는 이렇게 쓰였다.[15] 경기도의 초성 'ㄱㄱㄷ'을 형상화 한 것이다.[16] ㄱㄱㄷ 구 로고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해당 슬로건[17] 김문수 도정 당시 강우현 남이섬 대표가 디자인했으며, "수도 서울을 품고 있는 경기도의 이미지와 600년을 나타내는 숫자를 태극문양과 합성해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건강한 삶터인 경기도 600년을 상징하게 한 디자인"이라 한다. 경인신문 뉴스피크 1414년이 경기좌도와 경기우도가 통합하여 '경기도'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해라서 600주년이라 한다.[18] 남경필 도정 당시 제정되었으며, '''경기 천년 1018~2018'''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1018년이 ‘경기제(京畿制)’ 행정제도를 처음 시행하여 '경기'라는 이름을 처음 명명한 해(京畿定名)라서 1000주년이라 한다. #[19] ‘굿모닝 경기’는 경기도의 미래상과 생동감을 대변하는 도의 비전을 담은 것으로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컬러와 엄지손가락으로 만족감을 나타내는 경기도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디자인이며, ‘NEXT경기’는 강한 의지와 선언적 의미를 담는 고딕체와 화살표의 이미지를 NEXT의 ‘X’와 경기의 각 초성인 ‘ㄱ’에 표현함으로써 역동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담은 디자인이라 한다. ‘NEXT경기’ BI 위의 ‘함께 만드는 미래’는 연정을 통해 경기도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의지를 표현한 슬로건이다. #[20] 2021년 상반기 중 도의회 심의·의결을 거쳐 ‘경기도 상징물 관리 조례’를 개정 후 공식 사용 예정이다.[21] 이 로고가 발표된 후 도지챈에서는 이걸 보고 훼미리마트 색깔이다, 가타카나로 フフニ(후후니)라고 쓴 거 같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22] 부지가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광교로 이전하면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가 고등동, 매산로 주민들 관심사. 경기도가 수원시한테 매입 제안을 했는데, 시에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다만, 도청사 매입이 결정되면 차제에 수원월드컵경기장 지분과 도문화의전당 소유권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으니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일. 여담으로 수원시는 도청 부지보단 서둔동 서울대 농대 부지에 더 관심이 있는 카더라도 있다.[23] 현재 사진 속의 삼거리는 폐쇄되고 공원으로 조성중이다.[24] 강원도: 강릉+원주 / 충청도: 충주+청주 / 전라도: 전주+나주 / 경상도: 경주+상주 / 황해도: 황주+해주 / 평안도: 평양+안주 / 함경도: 함흥+경성. 참고로 고려 시대의 경우 현재의 경기도+충청도에 해당되는 도는 '양광도'였는데, 양광도 역시 양주+광주에서 따온 것. 단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는 해방 이후 1946년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도이고, 제주도 내 대표 도시가 그냥 제주 하나였으므로 그대로 제주도가 되었다. [25] 여기서의 '서울'은 고유명사(지명)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일반명사(수도)로서의 서울이다. 서울 항목으로.[26] 기(畿)라는 것은 왕성 주변 원형으로 500리를 뜻하는 천자의 직할구역이라는 의미이다. 주척(周尺)을 사용한 조선에서는 한성 도성의 성벽을 기준으로 사방 200km까지가 '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충청, 강원, 황해는 물론 평양, 원산, 전주, 구미까지 포함된다.(...) [27] 지금의 평안도 평양시.[28] 고려사 지리지 서경유수관평양부 기록.[29] 개성부는 원래 '개경(開京)'이라 불린 천자의 수도였다. 하지만 1308년, 원 간섭기 때 격하되어 개성부(開城府)가 되었다.[30] 고려사 지리지 왕경개성부 기록.[31] 서경은 황성이 세워지는 등 높은 대우를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도였다.[32] 고려왕조의 경우 초기 한정으로 제2수도격인 서경 일대도 포함[33] 서울과 경기도가 통합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로 그 이전인 조선시대의 한성부는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처럼 경기도와 별개로 존재했다.[34] 실제로 서울 토박이 사투리는 경기 중북부 토박이 사투리와 많이 겹친다.[35] 監營. 조선 시대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찰사의 근무지로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36] 1989년 김포군 계양면이 인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서울특별시를 100% 둘러싸고 있었다.[37] 이 중 시흥시와 의정부시를 제외한 10개 시는 인구 50만 명 이상의 특례시이고 4개 시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거나 거의 근접한 대도시이다. 참고로 인구 44만인 의정부시는 경기도청 북부청사, 경기북부 지방법원, 경찰청, 병무청,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등이 위치한 경기 북부의 정치/행정 중심지이다.[38] 성저십리도 조선때 한성부 관할이었다.[39] 지금의 은평뉴타운(구파발) 일대[40] 이들은 1995년을 기하여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넘어간 곳으로, 이러한 등가교환(?)의 효과는 인천광역시의 관할 구역에서 '''바다 비율이 급상승하는 일'''을 부른다. '''북위 1도 동경 2도'''에 달하는 넓이의 바다가 모두 인천광역시의 해역이다.[41] 2011년까지 본토에 매립되어 잠식되었거나 사라지지 않은 섬들만을 포함한다. 방조제나 교량 등으로 이어진 섬들도 포함한다. 이들 중에는 인천국제공항의 영종도와 서해 5도가 포함되며, 여기서 인천직할시 독립 직후부터 인천 땅이었던 섬들은 서구 원창동 '''세어도''' 딱 한 곳 뿐이다.[42] 당장 지하철 하남선 개통 및 각종 광역버스로 인해 서울과의 접근성이 매우 좋아진데다, 정작 성남으로 가려면 고속도로를 경유해야 하며, 버스로 갈 경우 하남 버스 3000번으로 1시간동안 가야 성남 시계에 닿는다.[43] 근데 이쪽은 10만 소도시 마석 / 평내호평보다 30만 중견도시 춘천이 더 가깝긴 하다. 특히 가평읍. 애초에 문화권부터 경기지방과는 분리되어 있고 영서지방의 문화권을 공유하는 지역이니...[44] 판교테크노밸리나 분당신도시 업무지구로 대표되는 IT벤처기업 중심 구역이 있어 IT 업체들이 많이 자리잡고있다.[45] 수원시의 경우는 예외. 삼성전자의 본사가 서초구에서 매탄동의 사옥으로 바뀌었기 때문.[46] 일대는 평야를 바탕으로 농업이 발달해 있지만, 대규모 공단이나 무역항 등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특히 평택시는 농업의 비중이 사라지고 삼성,lg 등의 대기업의 공장들이 들어오면서 시가지의 면적이 증가하고있다.[47] 경의중앙선, 경춘선, 경강선, 분당선, 수인선, 신분당선, 1호선, 3호선, 4호선(예정), 5호선, 7호선, 8호선(예정), 9호선, 용인 경전철, 의정부 경전철, 공항철도(예정), 서해선, 김포시 도시철도.[48] 평택과 안성이 충청권 북부인 천안 등과 교류가 많기에 그렇기도 하고, 이 지역 일부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충청도 관할이어서 충청도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도 있다. 안성 출신의 배우인 김수로의 말투와 억양을 생각하면 된다.[49] 여기에 근대나 강점기에 들어온 '가' 조사를 배척하여 '이 거이' '고 거이'하는 북녘 방언을 생각할 수 있다.[50] 판교신도시는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충분히 드는 마포구만큼이나 평균 집값이 비싼 곳도 있다. 분당신도시에서 가장 싼 지역도 평당 1500만원 수준이니. 경기도의 강남인 정자동은 중위권 이상인 삼전동과 견줄 수 있다. 그린벨트를 제외한 과천시는 지가가 판교신도시보다도 더 높은 편이다. 특히 이런 곳은 서울이랑 딱히 멀지도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신도시라 쾌적하고, 또 인프라도 충분히 있어서 어느 면에서는 서울보다 앞선다. 그런데 전세가는 매매가의 절반 수준이 될까말까 한 수준이라 서울에 집이 있으면서 투자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과천시는, 도심이나 성저십리 혹은 강남권에 살다가 강남권이면서 조용한 곳으로 이주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여야 한다. 또 애초에 과천은 서울 위성도시로서 서울 전화번호를 사용하고 편입이 논의되었었으며 행정 역할을 분담하는 목적으로 건설된 공무원 도시이다. 광명시도 서울 편입이 논의되는 경기도 지역 중 하나로써 서울 전화를 사용하고 생활권도 완전히 서울에 종속되어 있어서 집값이 판교신도시만큼은 아니어도 비싸다. 경기 남부에 위치하여 있고 생활 조건이 편리한 특성으로 인해 서울 노.도.강 평균 집값에 비해서는 약간 비싸다. 구로구 가리봉동, 대림 일대나 금천구 독산동보다는 높다.[51] 사실 사는 동네에 따른 우월감이나 열등감 같은 감정은 실체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동네 전체가 운명 공동체와 같이 결속되어 있는 게 아닌 이상, 거주하고 있는 동네가 무슨 스펙도 아니고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냉정하게 말하면 "안 좋은 동네"에 살아도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이고, "좋은 동네"에 살아도 찌질이는 찌질이다.[52] 실제로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 내무부에서 '''분당시''' 분리를 검토한 적이 있다.[53] 벽제나 삼송처럼 일산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은 이런 경향이 약한 편이다.[54] 일산은 1992~1996년 입주, 화정ㆍ행신 등은 1994~1999년 입주.[55] 애당초 광대한 그린벨트가 이 곳을 둘러싸고 있어서 대도심으로 성장할 수도 없었다. 그런 판에 서울 중심부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사실상 서울 종속적인 경향이 강했다.[56] 일산신도시도 개발 초기에는 내무부에서 '''일산시'''로 분리 승격을 검토했었고, 일산 입주민들도 일산시 분리 승격을 주장한 적이 있다.[57] 이것은 사람들이 고양시에 산다하면 못 알아듣고 일산 산다고 해야 알아듣기 때문으로 덕양구에 사는 사람의 고충이다.[58] 다만 분당이나 일산 같은 신도시들을 '별개의 도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행정적으로는 같은 시(市) 관할로 편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신도시의 의미 그대로 '새로 건설한 도시'인데다가, 구시가지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 생활권·교통권이나 주민 구성, 경제·산업 종사자 구조 등에서 구시가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59] 1단계: 킨텍스지원단지(입주중), 2단계:일산테크노밸리+일산방송밸리(공사중), 3단계: 장항공공행복주택지구+장항산단+도촌산단(확정, 설계중)[60] 다만 중동신도시·상동지구도 개발이 완료되어 부천시의 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하면 '계남구'로 분리시킬 예정이었다.[61] 중동신도시의 인지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의 '계남역'을 신중동역으로 바꿀 것을 주장했고, 결국 관철되었다.[62] 現 FC 서울[63] 30대 이상 한정[64] 외지에서도 산본신도시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며, 모체인 군포시 역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 안양 인근에 있는 동네라고 설명해야 알아듣는 외지인들이 많다.[65] 수도권 인근 연안 포함 서해 일부[66] 공중기동정찰담당인데 공군 공중전투사는 공중전투를 담당한다.[결과] 1위:문재인(당선), 2위:안희정, 3위:이재명, 4위:최성[67] 사실 경기도 역시 서부-동부의 빈부격차가 있지만 북부-남부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보이는 충청남도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다.[68] 이 네 도시들은 수도권과 인접하여 발전이 많이 되어서 경기도와 우호적인 관계이다. 특히 천안과 아산은 수도권 전철 1호선까지 연결되어서 충청권 도시들보다 수도권과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다.[69] 1896년 경기감영이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영(軍營) 등 다른 용도로 썼었다가, 1914년부터 고양군청으로 쓰이게 된다. 그러다가 1928년 고양군청이 다시 을지로6가로 이전한 후에는 조선적십자병원이 들어섰고, 해방 이후 서울적십자병원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70] 이건 다른 도도 마찬가지.
안산 상록갑, 안산 상록을, 안산 단원갑, 안산 단원을, 고양을, 고양병, 고양정, 의왕·과천, 구리,
남양주갑, 남양주을, 남양주병, 오산, 시흥갑, 시흥을, 군포, 하남, 용인을, 용인병, 용인정, 파주갑,
파주을, 안성, 김포갑, 김포을, 화성갑, 화성을, 화성병, 광주갑, 광주을, 양주[5] 성남 분당갑, 평택을, 동두천·연천, 용인갑, 이천, 포천·가평, 여주·양평[6] 고양갑[7] 고양, 과천, 광명, 광주, 구리, 군포, 김포, 남양주, 동두천, 부천, 성남, 수원, 시흥, 안산, 안성, 안양, 양주, 여주, 오산, 용인, 의왕, 의정부, 이천, 파주, 평택, 포천, 하남, 화성, 양평[8] 가평, 연천[9] 단, 과천시와 광명시는 서울의 02, 부천시는 인천의 032를 사용. 하남시 일부 지역(舊 서부면 일부), 부천시 일부 지역(범안동 일부), 고양시 일부 지역(舊 신도읍, 화전읍 지역)도 02를 쓴다.[10] 경기도의 미수복지역은 이북 5도청이 관리한다.[11] 가평군, 양평군, 연천군. 미수복지역인 장단군과 개풍군까지 포함하면 5개 군이다.[12] 미수복지역인 개성시까지 포함하면 29개 시이다.[13] 단, 미수복지역까지 포함했을 경우에는 신의주시 단 1개 시와 19개의 군을 관할하는 평안북도가 이 두 개의 타이틀을 모두 가져가게 된다. 그러나 북한이 지정한 평안북도에도 구성시, 정주시가 있으며, 이북 5도 기준으로는 여기에 인구 70만의 강계군 지역이 포함되어 통일 때는 바뀔 가능성이 높다.[14] 깃발로는 이렇게 쓰였다.[15] 경기도의 초성 'ㄱㄱㄷ'을 형상화 한 것이다.[16] ㄱㄱㄷ 구 로고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해당 슬로건[17] 김문수 도정 당시 강우현 남이섬 대표가 디자인했으며, "수도 서울을 품고 있는 경기도의 이미지와 600년을 나타내는 숫자를 태극문양과 합성해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건강한 삶터인 경기도 600년을 상징하게 한 디자인"이라 한다. 경인신문 뉴스피크 1414년이 경기좌도와 경기우도가 통합하여 '경기도'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해라서 600주년이라 한다.[18] 남경필 도정 당시 제정되었으며, '''경기 천년 1018~2018'''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1018년이 ‘경기제(京畿制)’ 행정제도를 처음 시행하여 '경기'라는 이름을 처음 명명한 해(京畿定名)라서 1000주년이라 한다. #[19] ‘굿모닝 경기’는 경기도의 미래상과 생동감을 대변하는 도의 비전을 담은 것으로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컬러와 엄지손가락으로 만족감을 나타내는 경기도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디자인이며, ‘NEXT경기’는 강한 의지와 선언적 의미를 담는 고딕체와 화살표의 이미지를 NEXT의 ‘X’와 경기의 각 초성인 ‘ㄱ’에 표현함으로써 역동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담은 디자인이라 한다. ‘NEXT경기’ BI 위의 ‘함께 만드는 미래’는 연정을 통해 경기도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의지를 표현한 슬로건이다. #[20] 2021년 상반기 중 도의회 심의·의결을 거쳐 ‘경기도 상징물 관리 조례’를 개정 후 공식 사용 예정이다.[21] 이 로고가 발표된 후 도지챈에서는 이걸 보고 훼미리마트 색깔이다, 가타카나로 フフニ(후후니)라고 쓴 거 같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22] 부지가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광교로 이전하면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가 고등동, 매산로 주민들 관심사. 경기도가 수원시한테 매입 제안을 했는데, 시에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다만, 도청사 매입이 결정되면 차제에 수원월드컵경기장 지분과 도문화의전당 소유권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으니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일. 여담으로 수원시는 도청 부지보단 서둔동 서울대 농대 부지에 더 관심이 있는 카더라도 있다.[23] 현재 사진 속의 삼거리는 폐쇄되고 공원으로 조성중이다.[24] 강원도: 강릉+원주 / 충청도: 충주+청주 / 전라도: 전주+나주 / 경상도: 경주+상주 / 황해도: 황주+해주 / 평안도: 평양+안주 / 함경도: 함흥+경성. 참고로 고려 시대의 경우 현재의 경기도+충청도에 해당되는 도는 '양광도'였는데, 양광도 역시 양주+광주에서 따온 것. 단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는 해방 이후 1946년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도이고, 제주도 내 대표 도시가 그냥 제주 하나였으므로 그대로 제주도가 되었다. [25] 여기서의 '서울'은 고유명사(지명)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일반명사(수도)로서의 서울이다. 서울 항목으로.[26] 기(畿)라는 것은 왕성 주변 원형으로 500리를 뜻하는 천자의 직할구역이라는 의미이다. 주척(周尺)을 사용한 조선에서는 한성 도성의 성벽을 기준으로 사방 200km까지가 '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충청, 강원, 황해는 물론 평양, 원산, 전주, 구미까지 포함된다.(...) [27] 지금의 평안도 평양시.[28] 고려사 지리지 서경유수관평양부 기록.[29] 개성부는 원래 '개경(開京)'이라 불린 천자의 수도였다. 하지만 1308년, 원 간섭기 때 격하되어 개성부(開城府)가 되었다.[30] 고려사 지리지 왕경개성부 기록.[31] 서경은 황성이 세워지는 등 높은 대우를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도였다.[32] 고려왕조의 경우 초기 한정으로 제2수도격인 서경 일대도 포함[33] 서울과 경기도가 통합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로 그 이전인 조선시대의 한성부는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처럼 경기도와 별개로 존재했다.[34] 실제로 서울 토박이 사투리는 경기 중북부 토박이 사투리와 많이 겹친다.[35] 監營. 조선 시대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찰사의 근무지로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36] 1989년 김포군 계양면이 인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서울특별시를 100% 둘러싸고 있었다.[37] 이 중 시흥시와 의정부시를 제외한 10개 시는 인구 50만 명 이상의 특례시이고 4개 시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거나 거의 근접한 대도시이다. 참고로 인구 44만인 의정부시는 경기도청 북부청사, 경기북부 지방법원, 경찰청, 병무청,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등이 위치한 경기 북부의 정치/행정 중심지이다.[38] 성저십리도 조선때 한성부 관할이었다.[39] 지금의 은평뉴타운(구파발) 일대[40] 이들은 1995년을 기하여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넘어간 곳으로, 이러한 등가교환(?)의 효과는 인천광역시의 관할 구역에서 '''바다 비율이 급상승하는 일'''을 부른다. '''북위 1도 동경 2도'''에 달하는 넓이의 바다가 모두 인천광역시의 해역이다.[41] 2011년까지 본토에 매립되어 잠식되었거나 사라지지 않은 섬들만을 포함한다. 방조제나 교량 등으로 이어진 섬들도 포함한다. 이들 중에는 인천국제공항의 영종도와 서해 5도가 포함되며, 여기서 인천직할시 독립 직후부터 인천 땅이었던 섬들은 서구 원창동 '''세어도''' 딱 한 곳 뿐이다.[42] 당장 지하철 하남선 개통 및 각종 광역버스로 인해 서울과의 접근성이 매우 좋아진데다, 정작 성남으로 가려면 고속도로를 경유해야 하며, 버스로 갈 경우 하남 버스 3000번으로 1시간동안 가야 성남 시계에 닿는다.[43] 근데 이쪽은 10만 소도시 마석 / 평내호평보다 30만 중견도시 춘천이 더 가깝긴 하다. 특히 가평읍. 애초에 문화권부터 경기지방과는 분리되어 있고 영서지방의 문화권을 공유하는 지역이니...[44] 판교테크노밸리나 분당신도시 업무지구로 대표되는 IT벤처기업 중심 구역이 있어 IT 업체들이 많이 자리잡고있다.[45] 수원시의 경우는 예외. 삼성전자의 본사가 서초구에서 매탄동의 사옥으로 바뀌었기 때문.[46] 일대는 평야를 바탕으로 농업이 발달해 있지만, 대규모 공단이나 무역항 등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특히 평택시는 농업의 비중이 사라지고 삼성,lg 등의 대기업의 공장들이 들어오면서 시가지의 면적이 증가하고있다.[47] 경의중앙선, 경춘선, 경강선, 분당선, 수인선, 신분당선, 1호선, 3호선, 4호선(예정), 5호선, 7호선, 8호선(예정), 9호선, 용인 경전철, 의정부 경전철, 공항철도(예정), 서해선, 김포시 도시철도.[48] 평택과 안성이 충청권 북부인 천안 등과 교류가 많기에 그렇기도 하고, 이 지역 일부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충청도 관할이어서 충청도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도 있다. 안성 출신의 배우인 김수로의 말투와 억양을 생각하면 된다.[49] 여기에 근대나 강점기에 들어온 '가' 조사를 배척하여 '이 거이' '고 거이'하는 북녘 방언을 생각할 수 있다.[50] 판교신도시는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충분히 드는 마포구만큼이나 평균 집값이 비싼 곳도 있다. 분당신도시에서 가장 싼 지역도 평당 1500만원 수준이니. 경기도의 강남인 정자동은 중위권 이상인 삼전동과 견줄 수 있다. 그린벨트를 제외한 과천시는 지가가 판교신도시보다도 더 높은 편이다. 특히 이런 곳은 서울이랑 딱히 멀지도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신도시라 쾌적하고, 또 인프라도 충분히 있어서 어느 면에서는 서울보다 앞선다. 그런데 전세가는 매매가의 절반 수준이 될까말까 한 수준이라 서울에 집이 있으면서 투자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과천시는, 도심이나 성저십리 혹은 강남권에 살다가 강남권이면서 조용한 곳으로 이주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여야 한다. 또 애초에 과천은 서울 위성도시로서 서울 전화번호를 사용하고 편입이 논의되었었으며 행정 역할을 분담하는 목적으로 건설된 공무원 도시이다. 광명시도 서울 편입이 논의되는 경기도 지역 중 하나로써 서울 전화를 사용하고 생활권도 완전히 서울에 종속되어 있어서 집값이 판교신도시만큼은 아니어도 비싸다. 경기 남부에 위치하여 있고 생활 조건이 편리한 특성으로 인해 서울 노.도.강 평균 집값에 비해서는 약간 비싸다. 구로구 가리봉동, 대림 일대나 금천구 독산동보다는 높다.[51] 사실 사는 동네에 따른 우월감이나 열등감 같은 감정은 실체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동네 전체가 운명 공동체와 같이 결속되어 있는 게 아닌 이상, 거주하고 있는 동네가 무슨 스펙도 아니고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냉정하게 말하면 "안 좋은 동네"에 살아도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이고, "좋은 동네"에 살아도 찌질이는 찌질이다.[52] 실제로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 내무부에서 '''분당시''' 분리를 검토한 적이 있다.[53] 벽제나 삼송처럼 일산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은 이런 경향이 약한 편이다.[54] 일산은 1992~1996년 입주, 화정ㆍ행신 등은 1994~1999년 입주.[55] 애당초 광대한 그린벨트가 이 곳을 둘러싸고 있어서 대도심으로 성장할 수도 없었다. 그런 판에 서울 중심부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사실상 서울 종속적인 경향이 강했다.[56] 일산신도시도 개발 초기에는 내무부에서 '''일산시'''로 분리 승격을 검토했었고, 일산 입주민들도 일산시 분리 승격을 주장한 적이 있다.[57] 이것은 사람들이 고양시에 산다하면 못 알아듣고 일산 산다고 해야 알아듣기 때문으로 덕양구에 사는 사람의 고충이다.[58] 다만 분당이나 일산 같은 신도시들을 '별개의 도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행정적으로는 같은 시(市) 관할로 편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신도시의 의미 그대로 '새로 건설한 도시'인데다가, 구시가지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 생활권·교통권이나 주민 구성, 경제·산업 종사자 구조 등에서 구시가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59] 1단계: 킨텍스지원단지(입주중), 2단계:일산테크노밸리+일산방송밸리(공사중), 3단계: 장항공공행복주택지구+장항산단+도촌산단(확정, 설계중)[60] 다만 중동신도시·상동지구도 개발이 완료되어 부천시의 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하면 '계남구'로 분리시킬 예정이었다.[61] 중동신도시의 인지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의 '계남역'을 신중동역으로 바꿀 것을 주장했고, 결국 관철되었다.[62] 現 FC 서울[63] 30대 이상 한정[64] 외지에서도 산본신도시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며, 모체인 군포시 역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 안양 인근에 있는 동네라고 설명해야 알아듣는 외지인들이 많다.[65] 수도권 인근 연안 포함 서해 일부[66] 공중기동정찰담당인데 공군 공중전투사는 공중전투를 담당한다.[결과] 1위:문재인(당선), 2위:안희정, 3위:이재명, 4위:최성[67] 사실 경기도 역시 서부-동부의 빈부격차가 있지만 북부-남부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보이는 충청남도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다.[68] 이 네 도시들은 수도권과 인접하여 발전이 많이 되어서 경기도와 우호적인 관계이다. 특히 천안과 아산은 수도권 전철 1호선까지 연결되어서 충청권 도시들보다 수도권과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다.[69] 1896년 경기감영이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영(軍營) 등 다른 용도로 썼었다가, 1914년부터 고양군청으로 쓰이게 된다. 그러다가 1928년 고양군청이 다시 을지로6가로 이전한 후에는 조선적십자병원이 들어섰고, 해방 이후 서울적십자병원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70] 이건 다른 도도 마찬가지.
- 북부청사 관할
21.1. 미수복 경기도[71]
21.2. 없어진 행정구역
- 강화군[73]
- 경성부[74]
- 교동군
- 남양주군
- 미금시[75]
- 부천군[76]
- 평택군
- 송탄시[77]
- 시흥군[78]
- 서울시[79]
- 옹진군[80]
- 인천시[81]
- 장단군[82]
- 통진군, 남양군, 부평군[83] , 양천군[84] , 안산군[85] , 과천군[86] , 영평군, 양지군[87] , 죽산군[88] 등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사라진 경기도 산하 군현들.
- 부천시 원미구, 부천시 오정구, 부천시 소사구[89]
- 제물포시[90]
22. 언론사
23. 산하 지방공기업
24. 경기도지사
25. 출신 인물
26. 자매결연 지역
- 미국 유타 주(1983.9.30.)
- 일본 가나가와현(1990.4.24.)
- 중국 랴오닝성(1993.10.4.)
-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 주(1995.3.27.)
- 남아프리카공화국 하우텡 주(1995.5.25.)
- 멕시코 멕시코 주(1996.5.13.)
27. 같이 보기
28. 둘러보기
29.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경기
[71] 경기도의 미수복지역은 이북 5도청이 관리한다.[72] 아래의 '없어진 행정구역' 항목에서 장단군의 각주로.[73]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74] 191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편입후 1945년 서울특별시로 승격으로 분리독립[75] 1995년 남양주군과 병합하여 남양주시로 개칭.[76] 1973년 해체. 소사읍은 부천시로 승격되고, 오정면은 잠시 김포군에 속하다가 1975년 부천시에 편입되고, 계양면은 김포군에 속했다가 1989년 인천직할시에 편입되고, 소래면은 시흥군으로, 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은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77] 1995년 평택군, 평택시와 병합하여 평택시 출범.[78] 현 시흥시를 비롯해 안양시, 광명시, 과천시, 안산시, 군포시, 의왕시의 전신이 된 군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특별시 서남부(금천구, 영등포구,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 구로구) 지역까지도 거느렸던 광활한 군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시흥군 문서로.[79] 대한제국 때까지 한성부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다가, 191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경성부로 개칭되면서 경기도 산하로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1946년 특별자유시 승격되면서 다시 분리.[80] 1994년 대부면 지역은 안산시로 편입되고, 나머지 지역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81] 1981년 직할시 승격으로 분리독립.[82] 1972년 파주시에 편입되어 '사실상' 폐지되었다. 다만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명목상으로 여전히 존재한다.[83] 부평구로 사실상 부활.[84] 양천구로 사실상 부활.[85] 안산시로 사실상 부활.[86] 과천시로 사실상 부활.[87]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용인군과 병합됨. 훗날 일부인 고삼면은 안성군으로 이속.[88]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으로 안성군과 용인군에 반반 편입됨.[89] 부천시의 자치읍면제 시행으로 폐지되었다[90] 이름만 바뀐 경우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인천시로 바뀌었다.[91] 2020년 폐국되어 방송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