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곤

 

1. 서진의 인물 庾袞, 劉琨
2. 후한의 인물 劉昆
3. 오대십국시대의 인물
4. 청나라의 인물 1
5. 청나라의 인물 2
6. CJ E&M PD


1. 서진의 인물 庾袞, 劉琨




2. 후한의 인물 劉昆




3. 오대십국시대의 인물



劉袞
생몰년도 미상[1]
팽성군(彭城郡) 사람으로 상쾌한 기품을 지녔다. 유곤은 집안이 부유하고 뛰어난 문채를 지녔으며, 진사에 급제한 뒤 좌습유(左拾遺)로 임명되어 호재(扈載)와 함께 이름을 떨쳤으나 얼마 안 가 28세에 사망했다.
기록은 이게 전부이다. 개인 열전까지 실렸을 정도로 명성은 있었으나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었던 모양. 구오대사에 실린 유곤의 열전은 다음과 같다.

劉袞,彭城人。神爽氣俊,富有文藻,繇進士第任左拾遺,與扈載齊名,年二十八而卒。


4. 청나라의 인물 1


劉昆
생몰년도 미상
강서(江西) 남창(南昌) 출신으로 자는 서래(西來)이다. 순치 16년(1659년), 진사(進士)가 되어 속록지현(束鹿知縣)에 제수되고, 웅남부동지(雲南府同知)로 옮겨가 오삼계(吳三桂)의 후대(厚待)를 받았다.
강희 12년(1673년), 유곤은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킬 것을 눈치채고 이를 순무(巡撫)에게 알려 급히 상주(上奏)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일이 누설되었고 유곤은 붙잡혀 수감되었다. 오삼계의 난이 평정되자 등주부동지(登州府同知)에 보임(補任)되어 상덕부(常德府)로 옮겼다가 치사(致仕)했다.

5. 청나라의 인물 2


劉昆
(1810년 ~ ?)
청나라 운남(雲南) 경동(景東) 사람으로 자는 옥곤(玉昆), 호는 온재(韞齋)이다. 도광 21년(1841년) 진사(進士)가 되고, 관직은 호남순무(湖南巡撫)에 이르렀다. 서예는 안진경(顔眞卿)을 배워 혼후(渾厚)한 장점을 지녔는데, 전해지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6. CJ E&M PD




[1] 구오대사 유곤 열전에서는 28세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