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리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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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출생, 2016년 사망. 수컷. 지방 14전 9승. 중앙 11전 3승. 총상금 5억 932만 6000엔. 1989년 JRA 연도대표마
G1 : 천황상·春(1989), 타카라즈카 기념(1989), 아리마 기념(1989)
'''남관동에서 도전해 온 헤이세이 3강의 열혈마'''
오구리 캡, 슈퍼 크릭과 함께 헤이세이 3강으로 불린 경주마. 오구리 캡처럼 지방 경마에서 중앙으로 이적해온 케이스로, 오구리 캡이 카사마츠에서 연승하며 유망주이던 시점에 이적한 반면, 이나리 원은 미나미칸토 지방 경마에서 정점에 오른 후 이적해 온 차이점이 있다. 1987년은 8전 전승, 1988년은 전년에 비해 침체한듯 했으나 마지막 경주였던 도쿄 대상전에서 승리하고 1989년부터 JRA로 옮겨왔다.
중앙 이적후 두 경주를 범주로 마치면서 우려가 높았으나, 때마침 슈퍼 크릭의 부상으로 탈 말이 비어 있던 타케 유타카가 기승한 천황상·春을 신기록으로 우승, 이어진 타카라즈카 기념도 연파하면서 삽시간에 G1 2승을 챙겼다. 타케 유타카가 떠나고 시바타 마사토가 기승한 하반기에는 마이니치 왕관에서 오구리 캡과 격돌, 사상 최고의 G2로 꼽히는 대혈전을 펼친 끝에 간발의 차로 패배했다. 이후 천황상·秋와 재팬 컵에서 6착과 11착으로 완패, 아리마 기념에선 이나리 원을 빼고 오구리 캡과 슈퍼 크릭의 2강 대결로 평가되는 굴욕을 당했으나 실전에선 오구리 캡만을 마크하던 슈퍼 크릭을 문전에서 제치면서 우승, 1989년에 G1 3승을 거두고 JRA 연도대표마로 선출됐다.
1990년엔 연패가 걸렸던 천황상·春에선 슈퍼 크릭에 패배하며 2착, 타카라즈카 기념에선 4착에 머무르고, 이후 다리의 불안이 심해지며 하반기에 컴백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며 그대로 은퇴했다. 씨수말로는 다른 헤이세이 3강처럼 그다지 대성하진 못했으나, 셋 중에선 가장 나은 성적을 냈다. 인간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 32세까지 장수하고 2016년에 사망.
성미가 매우 격해 마방 안에서도 항상 벽을 걷어찼기에 벽엔 늘 완충재로 다다미가 걸려 있었으며, 타케 유타카가 훈련을 위해 처음 기승했을때 지시를 무시하고 전력으로 두바퀴를 내쳐 달려 공포에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그 격한 성격이 투지로 연계되어 '엔진이 걸릴 때'는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발휘했으며, 남들은 3주는 쓸 편자를 2주만에 닳아빠지게 할 정도로 땅을 박차는 파워도 강했다.
현재까지 우마무스메로 된 말 중에 제일 장수했던 말이다(31세)
'''"이 쪽은 에도 토박이라고! 에? 출신? 세세한건 됐거든!"'''
1. 캐릭터 소개
머리에 걸친 여우 가면은 이름의 이나리에서 따온 것. 이나리라는 관명(冠名)[3] 부터가 마주가 필승을 기원하던 아나모리 이나리 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정통 에도 토박이 우마무스메(라지만 출신은 지방 같다)[1]
. 작지만 무한한 파워와 스태미너의 소유자. 로컬 시리즈에서는 비할 데 없는 강함을 자랑하던 실로 "시타마치[2] 의 슈퍼스타". 걸어오는 싸움은 반드시 받아주는 성격으로, 레이스에서도 그 강한 성격을 십분 드러낸다. 오구리 캡과 슈퍼 크릭과는 클래스메이트로,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사이.
2. 원본 경주마 이야기
1984년 출생, 2016년 사망. 수컷. 지방 14전 9승. 중앙 11전 3승. 총상금 5억 932만 6000엔. 1989년 JRA 연도대표마
G1 : 천황상·春(1989), 타카라즈카 기념(1989), 아리마 기념(1989)
'''남관동에서 도전해 온 헤이세이 3강의 열혈마'''
오구리 캡, 슈퍼 크릭과 함께 헤이세이 3강으로 불린 경주마. 오구리 캡처럼 지방 경마에서 중앙으로 이적해온 케이스로, 오구리 캡이 카사마츠에서 연승하며 유망주이던 시점에 이적한 반면, 이나리 원은 미나미칸토 지방 경마에서 정점에 오른 후 이적해 온 차이점이 있다. 1987년은 8전 전승, 1988년은 전년에 비해 침체한듯 했으나 마지막 경주였던 도쿄 대상전에서 승리하고 1989년부터 JRA로 옮겨왔다.
중앙 이적후 두 경주를 범주로 마치면서 우려가 높았으나, 때마침 슈퍼 크릭의 부상으로 탈 말이 비어 있던 타케 유타카가 기승한 천황상·春을 신기록으로 우승, 이어진 타카라즈카 기념도 연파하면서 삽시간에 G1 2승을 챙겼다. 타케 유타카가 떠나고 시바타 마사토가 기승한 하반기에는 마이니치 왕관에서 오구리 캡과 격돌, 사상 최고의 G2로 꼽히는 대혈전을 펼친 끝에 간발의 차로 패배했다. 이후 천황상·秋와 재팬 컵에서 6착과 11착으로 완패, 아리마 기념에선 이나리 원을 빼고 오구리 캡과 슈퍼 크릭의 2강 대결로 평가되는 굴욕을 당했으나 실전에선 오구리 캡만을 마크하던 슈퍼 크릭을 문전에서 제치면서 우승, 1989년에 G1 3승을 거두고 JRA 연도대표마로 선출됐다.
1990년엔 연패가 걸렸던 천황상·春에선 슈퍼 크릭에 패배하며 2착, 타카라즈카 기념에선 4착에 머무르고, 이후 다리의 불안이 심해지며 하반기에 컴백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며 그대로 은퇴했다. 씨수말로는 다른 헤이세이 3강처럼 그다지 대성하진 못했으나, 셋 중에선 가장 나은 성적을 냈다. 인간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 32세까지 장수하고 2016년에 사망.
성미가 매우 격해 마방 안에서도 항상 벽을 걷어찼기에 벽엔 늘 완충재로 다다미가 걸려 있었으며, 타케 유타카가 훈련을 위해 처음 기승했을때 지시를 무시하고 전력으로 두바퀴를 내쳐 달려 공포에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그 격한 성격이 투지로 연계되어 '엔진이 걸릴 때'는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발휘했으며, 남들은 3주는 쓸 편자를 2주만에 닳아빠지게 할 정도로 땅을 박차는 파워도 강했다.
현재까지 우마무스메로 된 말 중에 제일 장수했던 말이다(3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