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업(후당)

 



張承業[1]
846년 ~ 922년
1. 소개
2. 생애


1. 소개


중국 오대십국시대 후당의 신하. 자는 계원(繼元). 본래는 성은 강씨(康氏)였다. 이존욱의 신하.

2. 생애


당소종(唐昭宗)이 재위 할때에는 하동감군(河東監軍)으로 있었다. 당나라가 멸망하자, 진왕(晉王) 이극용(李克用)의 신하가 되었다.
908년, 이극용이 홧병으로 죽고, 나이가 어린 이존욱(李存勗)이 그 뒤를 이어서 세력을 잇게 되었다. 이극용이 생전에 본래 능력있고 뜻있는 사람들을 마치 자기 친아들처럼 대하였는데, 이극용의 양아들들은 이존욱의 나이가 어려서 이존욱을 업신여겼고 불만을 품었으며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심지어 만나고도 절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목한 사람은 이극용의 동생 이극녕(李克寧)이었다. 특히 양자 중에 한명인 이존호(李存顥)는 계속해서 이극녕을 부채질했다.

"본래 형이 죽으면 동생이 이어받는 것은 옛날부터 있던 법입니다. 숙부가 되어 조카에게 절을 한다니요, 어찌 그런 이치가 있단 말입니까? 하늘이 주는데도 가지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되돌리지 못합니다."

이극녕은 반발하면서 목을 베겠다고 위협까지 했지만, 이존호의 부채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존호는 방법을 바꿔서 자신과 같은 양자들의 처를 이극녕의 부인 맹씨에게 보내서 맹씨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맹씨는 본래 사나운 여인이었는데 욕심도 나고, 또 이런 모의를 했다는게 알려지면 화를 당할까 두려워 이극녕을 들들 볶아대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이극녕은 본래 장승업과 이존장(李存璋) 등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승업과 이존장은 모두 이존욱의 측근이었는데, 이존호는 진왕 이존욱이 자신의 집을 비운 틈을 타 장승업과 이존장을 죽이고 이극녕을 절도사로 삼으려고 했다.[2]
그런데, 태원 사람 사경용이 우연히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경용은 본래 이극용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인물이라서 이 모든 사실을 이존욱과 이극용의 부인 태부인에게 알려주었다. 이존욱과 이극용의 태부인은 깜짝 놀라고서는 이존욱의 측근이자, 모사인 장승업을 불렸다.
장승업은 이존욱과 태부인에게 찾아갔고, 태부인이 말했다.

"돌아가신 왕(이극용)께서는 이 아이의 일을 공들에게 맡겼습니다. 만약 밖에서 이간질하는 말을 듣고 우리 모자를 저버리려고 하신다면, 다만 우리가 살 땅만을 남겨주시고 대량으로 보내지만 마십시오. 다른 것으로 공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승업은 깜짝 놀라서 이존욱에게 영문을 물었다. 이존욱은 사정을 알려주며 친족끼리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이 물러나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장승업이 분기탱천해서 말했다.

"이극녕이 대왕의 모자를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집어넣으려는데, 그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어찌 온전하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존장 등을 불러모아서 이극녕을 잡아넣을 계략을 꾸몄다. 장승업은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아 성대한 연회를 펼치다가, 때가 되자 갑자기 매복시킨 병사들을 보내 이극녕과 이존호를 붙잡았다. 이존욱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가 일전에 모든 권한을 숙부에게 넘기려 하였을때 숙부는 거절하셨습니다. 헌데 어찌 저와 어머니를 원수로 남기려고 하셨나이까?"

이극녕은 할 말이 없어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이 모두가 참소하는 사람들과 꾸민 일이니, 내가 무슨 말을 다시 하겠는가?"

이극녕과 이존호는 이날에 처형되었고, 이는 이존욱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후에 장승업은 이존욱을 도와서 내정과 군략 양면에서 활약하였다. 훗날, 그는 후량이 멸망한 후에 이존욱이 후당을 건국하였고, 이존욱이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는 것을 반대했지만[3], 이존욱이 장승업의 조언을 듣지 않았고, 이로 인해서 분기탱천한 그는 결국 홧병으로 인하여 죽었다.
장승업이 사망하자, 이존욱은 그에게 정헌(正憲)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하지만 이존욱은 장승업을 대신하여 나라를 이끌 인재를 구하지 못했고, 더욱이 이존욱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놀기 좋아하였으므로 후당의 정사를 어지럽게 하였다.


[1] 조선의 인물 장승업과는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이다.[2] 심지어, 자치통감에 따르면 모든 영토를 통째로 후량에 넘기고 이존욱을 후량의 수도 대량으로 잡아가려고까지 했다고 한다.[3] 중간 과정으로 멸망한 당나라의 황족을 대려와서 옹립하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