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포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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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해군 제독. 7년 전쟁 시기 인도에서 프랑스 해군과 맞섰다.
2. 일생
포콕은 1706년 3월 6일 잉글랜드 서리주 템스 디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해군의 종군사제인 토머스 포콕의 아들이었다. 1718년, 포콕은 외삼촌인 스트린샴 대위의 후원으로 슈퍼브호에 근무하게 되었고 1724년 4월에 중위가 되었으며, 1733년에 대위로 진급했다. 1738년, 포콕은 선장으로 승진해 알드버러 호의 지휘권을 맡았다. 1754년 서인도 제도에서 근무한 포콕은 컴벌랜드 호의 지휘관으로서 인도에 파견되어 후위대 사령관 찰스 왓슨 제독의 지휘를 받았다.
1755년 후위대 사령관으로 승격한 포콕은 1756년 부함장으로 승진했다. 그해 10월, 그는 캘커타 원정에 참여했고 1757년 3월 찬데르나고르 요새를 향한 원정에 참여했으며, 8월 16일 왓슨 제독이 사망하자 그가 인도 방면 영국 해군을 대신 지휘했다. 1758년, 포콕은 영국으로부터 7척의 선박들을 지원받았고 4월29일 쿠달로르 해전에서 아쉐 백작 안 앙투안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으나 그들이 퐁디셰리로 들어가는 걸 막지 못했다. 이후 8월 3일 네가파탐 해전에서 아쉐 백작의 프랑스 함대를 또다시 격파했고, 8월 20일엔 마드라스에서 봄베이를 향해 항해하여 트링코말리 항구를 점거했다.
1759년 4월 7일 봄베이에서 함대를 재결성한 포콕은 코로만델 해안을 향해 진군해 프랑스 함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프랑스 함대를 발견하지 못한 데다 식량과 물이 떨어지고 전염병마저 창궐해 병에 걸린 선원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포콕은 어쩔 수 없이 코로만델 해안을 떠나 퐁디셰리를 향해 떠났다. 9월 1일 트랑코말리 항구에서 출발한 포콕은 프랑스 함대를 추격한 끝에 9월 10일 마침내 프랑스 함대를 따라잡고 퐁디셰리 해전을 치렀다. 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는 큰 손실을 입고 패주했고, 영국은 이 덕분에 코로만델 해안과 말라바르 해안을 장악할 수 있었다.
1760년 영국으로 돌아간 포콕은 1761년 배스의 기사가 된 동시에 제독으로 승진했고, 1762년 쿠바에 대한 수륙 양용 작전에 참가해 해군을 지휘하여 아바나 공략에 성공했다. 1763년, 포콕은 자신의 친구인 디비 덴트의 미망인인 소피아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조지는 남작 작위를 받았고 딸 소피아는 제4대 파울렛 백작 존과 결혼했다. 이후 1766년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 포콕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다가 1792년 4월 3일 런던에서 사망했다. 향년 8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