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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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콘크리트 전주 등 생산업체로, 중앙건설의 모태이며 이우티이씨의 관계사다.
2. 역사
1946년 극우(極友) 조성철 창업주가 서울 태평로에서 창립해 초기에는 건설업을 주업으로 해왔다. 1950년 국내 최초로 건설현장에 중장비를 도입하고 1951년에는 제주도청 낙성식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들어 경무대 수리공사를 지시받는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52년에는 도급순위 1등을 차지했고, 1953년에는 업계 최초로 외자를 유치받았다. 조성철 사장은 해외 각국을 순방하며 선진국의 건설기술을 차차 수입해내 같은 해에는 토목 중기계를 들이고 1954년에는 목재가공 기술을 표준화/체계화하는가 하면, 1955년에는 국내 최초로 콘크리트 자재를 생산했다. 1956년에는 서독 혼네프에 해외사무소를 열었다. 1957년에는 국내 최초로 아파트를 시공했으며 1959년에는 국내 최초로 원자력연구소 원자로 공사까지 맡았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 후 과도정부 수립으로 조성철 사장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속됐고, 마포형무소 수감 중 국가헌납 결의에 서명하고 8,900만 환을 내야 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경제재건촉진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재기를 노리며 1962년에는 중앙시멘트도 세웠으나, 이미 '자유당 특권재벌'로 낙인찍힌 본사는 건설업계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배척당했는데, 이미 1961년 4월 건설협회의 공개질의서에 대해 신문을 통해 반박했었기 때문이다. 1962년에는 지면광고를 통해 국제특허 도용 및 분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국내건설 참여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해외건설사업에 눈을 돌려 1967년에 국내 최초로 미국령 괌에 진출했고, 1970년 팔라우에도 진출한 후 1972년 레바논에 진출해 중동건설에 손을 뻗고 이듬해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레덱 사와 주택공사 계약을 맺었으나, 사우디 공사 입찰보증신청마저 거절당해 외환은행 단기금융 부도로 회사가 기울고, 조성철 사장은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1977년 중앙산업의 목재부가 중앙제공으로 분사되었고, 1978년 여주에 콘크리트 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80년 중앙산업의 건설부가 중앙종합건설(이후 중앙건설로 사명 변경)로 분사되었다.
1981년 조성철 사장 사망으로 아들 조규영이 가업을 이었고, 자회사 중앙건설에는 아파트 시공을, 본사는 아파트 시행 및 분양을 각각 맡아왔다. 1988년 경기 여주공장 내에 레미콘 및 석제공장을 준공하고 1990년에는 개발부를 '중앙하이츠개발'로 분사시켰다. 한동안 건자재 사업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건설업 경기가 악화되어 사세가 약화됐고, 2014년 자회사 중앙건설의 부도로 같이 부도나 회생절차를 밟다가 2017년에는 이우티이씨로 매각돼 회생절차에서 벗어나 정상화됐다.
3. 기업정신
- 비전
'''최고의 기술과 최상의 품질, 언제나 신뢰를 주는 기업'''
- 핵심가치
'''정직, 발전, 공헌'''
4. 역대 임원
- 대표이사
- 조성철 (1946~1981)
- 조규영 (1981~1992)
- 조승규 (1992~2014)
- 김평 (2017~)
- 사장
- 강정헌 (2017~ )
- 관리인
- 조승규 (2014~2017)
5. 자회사 목록
이하 회사들은 2017년 이우티이씨로 팔리기 전 가졌던 회사들이다.
- 중앙건설: 2014년 부도남.
- 중앙제공: 2011년 청산됨.
- 중앙하이츠개발: 전북 남원 중앙하이츠콘도 운영사로, 2000년에 콘도가 중앙건설에 흡수된 후 청산됨.
6. 참고자료
- 한국기업흥망사 - 공병호 저. p125~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