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옥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한옥은 1921년 9월 12일 경기도 여주시 여주읍 우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 3월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일하다가 동료 신주(申舟)와 친분을 맺었고 한영중학원 야간부 동기생 박백중(朴百仲)과도 교유했다. 세 사람은 한국인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이렞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41년 12월 7일, 그는 신주, 안두경(安斗京) 등과 만나 일본과 미국의 전쟁은 필연적이며, 개전을 하면 일본과 독일은 패배할 것이니 이를 틈타 조국 독립을 도모하기 위해 단체를 조직할 것을 의논했다.
12월 10일, 차한옥은 신주, 안두경, 박백중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을 조직하고 회장에 안두경, 회계에 박백중을 선임하고 단비로서 월 1인당 금 5원을 갹출하여 운동 자금으로 할 것, 매월 넷째 일요일에 월회의(月會議)를 열 것, 기관지 발행 및 격문을 살포하여 대중에게 선전을 할 것, 단원은 비밀을 엄수하고 이를 폭로하는 자는 살해하고 새로 입단하는 자는 전 회원의 승낙을 받을 것 등을 결정했다. 그리고 1942년 1월 넷째주 일요일과 2월 둘째주 일요일에 월회의를 개최했다.
1944년 1월, 차한옥은 신주, 김영규(金永圭)와 만나 세계 정세를 논의했다. 그는 독일과 일본은 반드시 패전할 것이며, 그 기회를 틈타 조국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혁명 의식 양양은 물론 동지 포섭에 진력하여 혁명 운동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하자고 결의했다. 또한 8월 12일에 김영규와 만나 국제 정세에 대해 논의하며 독립의식을 국건히했다. 그러나 이 일이 경찰에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1945년 8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 해방 직후 석방되었다. 이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평범하게 지내다가 2000년 3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차한옥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