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 운동
1. 개요
북한의 노동경쟁을 통하여 생선 증대를 꾀하려는 북한의 노동강화운동이자 사회 운동의 하나이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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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실천 방안으로 행해진
실시배경은 당시 ‘3개년계획(1954∼1956)’의 수행으로 전후 복구 건설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으므로, 이 바탕 위에서 새로운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실시하려고 1956년 김일성(金日成)이 소련과 동유럽을 순방하면서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함에 따라, 부득이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 있다.
5개년계획을 자체적으로 추진하자면 내부적인 예비자원이 동원되어야 하고, 또한 절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56년 12월에 열린 당전원회의에서는 ‘최대한의 증산과 절약’을 내세워 종래의 노력경쟁운동을 한층 강화하기로 방침을 세웠으며, 이에 따라 평남청년탄광돌격대·강계청년발전소돌격대·청년철도건설돌격대 등을 동원, 경쟁을 통한 노동강화운동을 벌였다.
이들 돌격대의 노동강화운동을 모범으로 삼아 발달된 이 운동은 대숙청 이후 1958년 9월평양에서 열린 ‘전국생산혁신자대회’를 계기로 북한 전체근로자의 노력경쟁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그뒤 이 운동은 1959년 3월강선제강소)의 진응원이라는 사람이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발기함으로써 공장뿐 아니라, 기업체·농장·학교 등 전분야에서 노력경쟁운동 형태로 확산되었다.
주요 골자는 '''사상 교양'''과 '''대중 동원을 통한 생산운동'''이다. 과거형을 안 쓴 이유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 한편, 최근에는 “다시 한번 천리마를 타라.” 등 ‘새로운 천리마속도 창조운동’을 대중으로 전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서는 표어가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발휘하라!"로 , 만리마 운동(...)이라는 이름만 바뀐 형태로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60일 전투를 베낀 70일, 200일 전투 등등 김일성 시대의 구호와 주민동원의 재탕 뿐, 북한 주민의 GDP 상승률은 0에 가깝다.
남한의 새마을 운동과 같이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진 사상 주입, 주입된 사상을 기반으로 한 생산 향상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의 비교대상으로 간간히 거론되곤 한다.
2.1. 청산리 방법
김일성이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 협동농장에서 직접 현지지도하며 제시한" 이 방법의 특징은 "'''당 소속 지도 일꾼이 현장에서 군중과 함께 고생해가며 일하면서 군중의 사상을 각성시키고 그들의 창조적 지혜와 적극성을 발동시켜 당 정책 관철에 혁신을 일으키도록 한다"'''는 것.
놀랍게도 이 방법은 '''한 몇 년 간은''' 꽤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생산이라는 목표만 가지고 채찍질을 가한 게 아닌 당원-즉 사회 지도층-과 함께 일하며 사상 교육을 겸하며 받아가는 관료주의의 극복과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창조성 유도라는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경제적으로 잘 발전되기 시작했고(!) 사회 도덕 규범도 잘 세워져 나름 괜찮은 나라가 '''되려고 했었다'''. 탈북자의 실제 증언에 의하면 한 마을 사람들끼리 문도 안 닫고 지냈다고.
여담으로 이 청산리 방법을 바탕으로 작사 및 작곡된 노래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