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서
최규서(崔奎瑞) 1650년(효종 1) ~ 1735년(영조 11) 는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이며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艮齋),소릉(少陵),파릉(巴陵)이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고죽 최경창의 현손 이다.
경종 초기 소론의 영수. 서인이 노소로 나뉠 때 소론의 소장파로 활약했으며 최석정의 파직을 막고 남인에 맞서 장희빈의 책봉을 반대하는 데 앞장 섰다. 병신 처분으로 노론이 득세함에 낙향했으나, 경종이 즉위하자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고 연잉군의 청정을 막는 등 소론의 영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신임 사화의 주역 김일경과 달리 완론의 입장을 펼쳤으며, 고령인 데다가 경종 말년에는 낙향해 정치 일선에 물러난 덕에 최석항, 유봉휘와 달리 영조 즉위 후 노론의 탄압에도 무사했다. 1728년 이인좌, 정희량, 박필현 등이 난을 일으키자 사전에 정보를 입수, 같은 소론임에도 고변해 완론 소론을 보호하고 역신 이인좌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천명했다. 그 공으로 영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