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환(독립운동가)

 


성명
최동환(崔東煥)
생몰
1907년 12월 6일 ~ 1946년 2월 14일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사망지
전라남도 목포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동환은 1907년 12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 무렵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거주했다. 그는 1931년 6월 영암읍 내의 도로 보수 공사에 동원된 부역 인부들과 함께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동하였다. 1931년 8월 20일에 최석호 등과 함께 비밀 단체인 영구회를 조직하여 야학을 통해 농촌 청년들의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했다.
1931년 11월에는 일본인 지주들을 상대로 소작료 감액 요구 운동, 비료 대금 선납제 철폐 및 소작권 이동 방지 등을 위한 시위를 주동하였으며, 1932년 3월 7일 영암군 덕진면 야학 회관에서 「처(妻)의 후회」라는 연극을 공연하여 약 200여 명의 주민들에게 항일 의식을 계몽했다. 그리고 1932년 6월 4일에는 70여 명의 청년들을 집합시켜 소작권 쟁의를 주도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3년 9월 29일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및 가택침입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를 제기하여, 1934년 3월 7일에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4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했다. 이후 일제 경찰의 감시에 시달린 끝에 목포로 이주해 조용히 지내다 1946년 2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최동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