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규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상규는 1892년 6월 27일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 월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훈춘한민회에 가입해 경호원으로 군자금 모집에 종사하였다. 훈춘한민회는 훈춘대한국민회(琿春大韓國民會), 훈춘대한국민의회(琿春大韓國民議會), 대한국민의회훈춘지회(大韓國民議會琿春支會) 등으로 불렸던 단체로, 황병길ㆍ이명순(李明順)ㆍ이동철(李東喆) 등 이동휘 계열의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조직이었다.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활동하였으며, 독립선언ㆍ모병실행ㆍ교육보급 등의 3대 강령을 내세웠다.
최상규는 1920년 음력 1월 27일 박의동(朴義童) 외 10명과 함께 각자 장총(長銃)을 휴대하고 함북 온성군 미포면 월파리, 미포면 풍교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3월에는 미포면 미산동(美山洞) 소재 미산국경헌병감시소를 공격하여 경관 1명을 사살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4년 6월 11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9월 16일 가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최상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