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호지 앙그리아
칸호지 앙그리아(Conajee Angria, ? ~ 1729)
실존했던 해적들 중 한명.
1698년에 마르타 라자호의 선장으로 뭄바이와 벵굴라 사이의 구간을 돌아다니며 1704년부터 25년 동안 활동하던 해적으로 1710년에는 뭄바이 근방의 콜라바, 카라냐섬 등을 점령하고 그 원주민과 돌아다니는 유럽 선박들을 상대로 약탈하여 이 근방을 지나던 상인들은 노예 무역을 대가로 통행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1712년 뭄바이의 지사를 자처하며 동인도의 카르와르 근방에서 영국 국적 선박 2척을 나포하자 동인도 무역을 지속시키기 위해 영국의 해운사들이 3750 파운드를 지불할 정도였으며 영국의 지사였던 찰스 분이 관심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1716년 1월에 뭄바이의 지사로 임명하였다.
강탈을 계속하여 영국 상선 2척을 포함한 여러 상선들을 약탈하였으며 자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 찰스 분이 군함을 파견하여 공격을 받지만 이를 오히려 격파하고 뭄바이의 항구를 봉쇄하자 영국에서 1721년에 포르투갈과 연합하여 6,000명의 군대를 보내자 1월에 패배하여 1723년 12월에 영국으로 소환되어 1729년에 처형된다.
그가 죽자 이끌던 해적들은 아들인 마나지와 쑴바지에게 넘어간다.
실존했던 해적들 중 한명.
1698년에 마르타 라자호의 선장으로 뭄바이와 벵굴라 사이의 구간을 돌아다니며 1704년부터 25년 동안 활동하던 해적으로 1710년에는 뭄바이 근방의 콜라바, 카라냐섬 등을 점령하고 그 원주민과 돌아다니는 유럽 선박들을 상대로 약탈하여 이 근방을 지나던 상인들은 노예 무역을 대가로 통행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1712년 뭄바이의 지사를 자처하며 동인도의 카르와르 근방에서 영국 국적 선박 2척을 나포하자 동인도 무역을 지속시키기 위해 영국의 해운사들이 3750 파운드를 지불할 정도였으며 영국의 지사였던 찰스 분이 관심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1716년 1월에 뭄바이의 지사로 임명하였다.
강탈을 계속하여 영국 상선 2척을 포함한 여러 상선들을 약탈하였으며 자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 찰스 분이 군함을 파견하여 공격을 받지만 이를 오히려 격파하고 뭄바이의 항구를 봉쇄하자 영국에서 1721년에 포르투갈과 연합하여 6,000명의 군대를 보내자 1월에 패배하여 1723년 12월에 영국으로 소환되어 1729년에 처형된다.
그가 죽자 이끌던 해적들은 아들인 마나지와 쑴바지에게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