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마 바그너

 

코지마 바그너 (1837~1930)
1. 개요
2. 상세


1. 개요


낭만시대 피아노음악계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와 다구 백작 부인의 3 남매 중 차녀이다.

2. 상세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3남매를 슬하에 두었는데 장녀 블랑딘은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하다 죽고, 촉망받던 피아니스트이자 남동생이었던 다니엘은 20세에 죽었다. 파리 사교계의 중심이었던 다구 백작 부인과 바람둥이 리스트 사이는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했다. 마침 리스트가 비트겐슈타인 공주와 새로운 관계에 들어서면서부터 남은 자녀 코지마에게는 양육비나 교육 환경 정도에만 관여했다. 일찍이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코지마는 개인교사로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0대 후반에는 한스 폰 뷜로우의 어머니 집에 머물며 학교를 다니다가 이른 나이에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와 첫 결혼을 한다. 점차 명성이 높은 음악가들과 교류하게 되면서부터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났고, 그의 음악에 매료된 코지마는 바그너를 사랑하게 된다. 코지마는 연주와 지휘에 종사하던 한스보다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일에 종사하는 바그너를 동경했다.
코지마는 사랑하는 바그너와 함께 세 자녀를 출산하고 1870년에는 한스 폰 뷜로우와의 이혼에 성공한다. 그리고 바그너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코지마는 바그너의 모든 일상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바그너는 그 덕분에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바그너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종합예술장르인 뮤직 드라마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완성에 적극적 협조하였다.
1883년 바그너가 사망한 후에는 그들이 거주했던 바이로이트를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