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스테네스

 


'''Κλεισθένης / Cleisthenes'''
(? ~ ?)
1. 개요
2. 집권
3. 개혁
4. 이후


1. 개요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막을 연 인물. 다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게 없는 편이다.

2. 집권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의 귀족가문인 알크마이온 가문 출신이다. 참주정 중간에도 아르콘에 당선될 정도로 어느 정도 중도파적인 입장을 지닌 인물이었다.
스파르타의 도움을 얻은 그리스 아테네 귀족들은 참주 히피아스를 내쫓는데 성공을 거둔다. 이 때 이사고라스와 클레이스테네스가 중심에 서게 되는데 이사고라스가 서기전 508년에 아르콘 직책에 오르게 되면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그의 정치는 보수 반동정치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미 금권정-참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데모스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곧바로 내쫓기게 되었다. 그리고 클레이스테네스가 집권하게 되었다.

3. 개혁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부족제의 개편과 그를 통한 500인회의 성립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우선 해안, 도시, 내륙 3개의 지역에 중간행정구역인 트리튀스를 각각 10기씩 설치한다. 이 트리튀스는 데모스들로 구성을 시킨다. 그리고 해안, 도시, 내륙의 트리튀스들을 하나로 묶어 1개의 행정부족을 만들어 총 10개의 행정부족 체제를 완성시킨다. 그래서 기존의 4개 혈연부족에서 100명씩 뽑아서 선출했던 400인회를 대신해 각 행정부족에서 50명씩 선발하는 500인회를 새롭게 성립시킨다.
이 개편의 핵심은 그동안 도시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아테네의 정치가 각 지역의 데모스들도 모두 각기의 트리튀스에 참가하게 되면서 그 권한이 확대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기존의 혈연 중심이었던 부족체제는 아무래도 혈연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귀족의 권한이 강했기 때문에 그 권한을 확실히 약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앞으로 아테네의 군대 새롭게 구성된 부족체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중장보병 구성이 가능해졌다.
다만 아테네 민주정치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평가받는 도편추방제의 경우 그가 시행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가 않다. 시행 시기가 그즈음이라 생각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처음 시행한 것이 아니냐 추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4. 이후


문제는 서기전 508년 그가 집권한 이후 시행한 개혁 이후 그의 생애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까지 시기도 짧은 편이라 그 전쟁 시기 때는 그의 이름이 나올법 하지만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그가 태어난 시기 등을 추정해보면 서기전 508년에 곧바로 죽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 대체로의 시각이다. 다만 그 이후에도 있다가 도편추방제로 추방당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혹은 그 스스로가 굳이 본인의 권위를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어서 일부러 각종 기록에서 본인의 기록을 지우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그리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임에도 알려진 점이 거의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