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성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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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성유지 비석
태화성유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 대리시 태화촌에 있다. 양저미성과 약 15리 정도 떨어져 있다. 738년, 피라각은 6조를 통일시켜 남조국을 건국한 뒤 이듬해 739년, 도읍을 외산에서 태화성으로 천도했다. 성 안에는 각라봉시기에 축조된 남조덕화비(南詔德化碑)가 있다. 남조덕화비는 지금 대리고성(大理古城)의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태화촌에 조성된 ‘남조덕화비 공원’ 안에 남아 있다. 태화성 내부에는 9개의 궁전이 있었다. 태화성은 성벽의 길이가 약 3350m, 성벽의 폭은 약 500폭으로 당-남조 전쟁 때 남조정벌군을 대파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잦은 전쟁과 효항왕 이모심이 779년에 양저미성으로 천도하면서 유지가 어려워졌고, 결국 1798년, 태화성은 소실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태화성유지 비석
태화성유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 대리시 태화촌에 있다. 양저미성과 약 15리 정도 떨어져 있다. 738년, 피라각은 6조를 통일시켜 남조국을 건국한 뒤 이듬해 739년, 도읍을 외산에서 태화성으로 천도했다. 성 안에는 각라봉시기에 축조된 남조덕화비(南詔德化碑)가 있다. 남조덕화비는 지금 대리고성(大理古城)의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태화촌에 조성된 ‘남조덕화비 공원’ 안에 남아 있다. 태화성 내부에는 9개의 궁전이 있었다. 태화성은 성벽의 길이가 약 3350m, 성벽의 폭은 약 500폭으로 당-남조 전쟁 때 남조정벌군을 대파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잦은 전쟁과 효항왕 이모심이 779년에 양저미성으로 천도하면서 유지가 어려워졌고, 결국 1798년, 태화성은 소실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