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모필 학살 사건

 

소설 강철의 누이들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1. 개요
2. 내용
3. 유래


1. 개요


아틀리아 전역 당시 아타만 제국 육군 제21 산악사단이 벌인 민간인 학살사건.
21사단장은 죄수부대나 다름없었던 자신의 부하들이 전열을 이탈하는 것[1]을 막기 위해, 죄책감을 이용해 사단을 단결시키기 위하여 퇴거를 거부한 테르모필의 호빗 민간인 471명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 내용


테르모필을 점령한 미테란트 공화국 육군은 이 사실을 알고 포로로 잡은 21사단 간부들[2]을 법정으로 넘기려고 했으나, 유나 셀린느 소위가 폭주, 포로들을 다 죽여버리려고 했다. 김한얼이 이것을 막다가 권총 오발로 상처를 입었다.
21사단장 이하 간부들은 아틀리아 법정에 의해 아틀리아 자유국의 최고형인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았으며, 21사단장은 명령자인 자신'''만'''이 책임이 있으며 '''사형을 구형'''받아야 한다고 항소했지만, 법정은 그의 그런 행위가 '''진정한 위선'''[3]이라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후에 미테란트 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전까지 미테란트를 향하던 국제적 비난은 거의 사그라들었다고 한다.[4]

3. 유래


테르모필은 300의 그 곳, 테르모필라이에서 따왔다고 타입문넷 연재본의 댓글에서 밝혔다. (실제로 테르모필라이는 교통 요충지라 1차, 2차 세계대전에서도 격전지... [5])

[1] 작중언급으론 매사에 솔선수범하여 미테란트 군에게 반격을 가하기 위해 밤길 수십 킬로미터를 부대 선두에서 자기 발로 걷는 사단장을 휘하 장병들은 신뢰했지만, 정작 사단장은 자기 부하들을 완벽히 신뢰하지 못했다고 한다.[2] 병사들은 이 학살명령을 거부하여 몇 명이 즉결처분되었고 시행 중에도 소극적이어서 결국 장교들이 시행했다고 한다.[3] 한얼은 자신마저도 속이는 진정한 위선이라며 공감했다.[4] 심지어 라스니아 대통령은 아타만 대사를 불러 비난하고 그딴식으로 나오면 추방해버리겠다고 까지 했다.[5] '테르모필라이'는 그리스어로 '뜨거운 문'이란 뜻이다. 당시 이 인근에 온천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