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바요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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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encing bayonet
총검술 훈련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교보재.
근대 총검술시대인 20세기 초까지는 총검술을 매우 중요한 전투기술로 비중을 두고 교육하였으며, 계속된 연구를 통해 하나의 검술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병사들이 집단제식훈련이나 집단돌격, 개인동작과 형을 수련하거나 물체를 찌르는 훈련을 할 때에는 실총에 진짜 총검을 착검시켜 훈련했지만, 총검술 커리큘럼을 제대로 교육하려면 2인1조로 진행되는 형과 대련 훈련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때 실총과 진짜 총검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므로 안전하게 대련할 수 있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훈련용 총검, 펜싱 바요넷이다.
총검술은 실총과 동일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도구를 사용해야 무술적 특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1]에 펜싱 바요넷도 실총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였다. 여기에는 실전에서는 어차피 실총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병사들을 적응시키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펜싱 바요넷은 크게 나누어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총검만 따로 만들어진 종류 - 플랫폼 자체는 실총을 그대로 사용하고, 총검만 안전하게 만든 것들. 실탄 발사가 불가능한 훈련용 총이라고 해서 가격이 실총보다 크게 싸지는 않기 때문에 정말로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대량으로 생산된 실총에 훈련용 총검을 쓰는 편이 좋다. 이런 것은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총검 자체가 신축성을 가진 2단의 철봉으로 만들어져 찌르면 푹 들어가는 것, 펜싱검처럼 탄력이 있어 찌르면 휘어지는 것, 별도의 착검장치에 고래수염 같은 유연하면서도 강한 재질을 장착하도록 된 것, 진짜 총검 끝에 쇠구슬 등을 용접하여 사람을 찔러도 관통하지 않게 만든 것 등 가지각색이다. 공통점은 베이지 않고 찔렀을 때 안전을 보장하는 도구라는 것.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실총을 이용하여 대련훈련을 할 경우 상대의 총검을 쳐내는 동작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 경우 총열에 부담을 주고 명중률의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이 점 때문에 실총 중 일부를 기관부를 제거하고 훈련용으로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2단봉 형식의 물건은 가격도 높거니와 펜싱검이나 고래수염처럼 유연한 물건은 찌르기에서는 안전하지만 상대적으로 유연해서 쳐내기 동작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특이한 물건들은 숫자가 적었고, 가장 많았던 것은 역시 총검 끝에 쇠구슬을 용접하거나 끝을 휘어 찔리지 않게 만든 것들. 실총의 중량과 총검의 빳빳함 때문에 부상을 입을 우려가 많았지만 만들기 편하고 총검의 도구 특성을 100% 재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이 쓰였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코르크 재질 등, 커다란 연질 팁을 덧씌우거나 우산처럼 펑퍼짐한 금속 컵을 용접한 경우도 있다.
  • 총과 일체화된 종류 - 격렬한 대련을 반복할 경우 실총의 총열에 부담이 가 명중률이 떨어지거나, 격투 중에 기관부가 손상될 우려가 있었으므로 아예 대련용으로 특화된 장비를 만든 것들이다. 방아쇠나 격발기구가 장착되지 않고 총검은 고정식으로 탈착이 불가능하며, 총열 자체에 심과 스프링을 박아놓아 피스톤처럼 만들어놓아 찌르면 쑥 들어가는 종류도 있다.
단점은 별개의 교보재를 준비해야 하므로 돈이 들어가는 것과 총열과 일직선이므로, 실제 총검이 총열의 밑이나 옆에 장착되어 실제 대련시 상대 총구에 총검이 걸리는 등의 자잘한 상황이 나오지 않아 실전과는 조금 동떨어진 훈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나무 등 다른 재질을 사용한 종류 - 목총이 대표적. 가격이 가장 싸고 구조가 단순하여 막 쓸수 있었으며 망가져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4~5kg에 달하는 실총에 비해 1.4kg정도로 약 3배 가볍고[2], 단순한 봉처럼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 실제 총검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다만 저가격이라는 점 때문에 예산이 부족한 저개발국가나 민간용으로도 많이 보급되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펜싱 바요넷은 비단 총검술 훈련뿐만이 아니라 당시 군대와 검술계에서도 총검술 연구나 또는 검vs총검과 같은 내용을 진지하게 상정하고 훈련했기 때문에 수요가 높았다. 남북 전쟁등을 통해 대열을 짓고 평지에서 총검돌격하는 것은 실패율이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백병전에 목숨을 거는 식민지 저개발국가의 원주민들과의 전투나, 시가전, 산개 돌격과 같은 전투상황에서는 당시 소총의 낮은 연사력 때문에 총검이 백병전 무기로써 항상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또 중국이나 일본처럼 경제력이 부족한 국가는 투사할 수 있는 화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총검이나 도검이 2차대전 때까지 활약하기도 했다.[3]
그러나 개인화력이 결정적으로 발달한 2차대전 이후 총검술의 중요성이 추락하면서 총검술 훈련은 물체 찌르기나 개인 형 훈련에 치중했고, 19세기처럼 복잡하고 정밀한 무술로써의 총검술을 훈련하지는 않게 되었다. 따라서 펜싱 바요넷의 필요성도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따로 준비해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미 해병대나 동구권 군대처럼 백병전에 비중을 두고 있는 군대는 최근까지 사용하였고, 특히 미 해병대는 m16에 착검한 길이를 상정한 목총을 이용한 총검술 대련까지 시켰다. 그러나 현대 군대의 CQB시스템은 더이상 총검술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근시일 내에 소멸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외로 민간계에서 사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구 일본군의 총검술을 계승한 무도인 총검도를 제정해서 166cm의 38식 아리사카 목총을 가지고 호구를 착용하고 훈련한다. 서양에서도 19세기의 높은 수준의 총검술 교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펜싱 바요넷을 사용하여 당시의 총검술을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도 1970년대~199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련 과목 실습용으로 M1, M16 목총을 사용한 바 있다.

2. 관련 항목



[1] 총검술에서는 상대의 총검이나 검을 옆으로 쳐내고 찔러 들어가라는 내용이 많은데, 가벼운 목총이나 봉을 사용할 경우 상대의 무기가 그렇게 쉽게 조종되지도 않고 쳐내고 금방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실총이나 그에 준하는 무게의 장비를 사용하면 상대의 무기를 조금만 쳐도 크게 벗어나게 되고 검 정도라면 매우 쉽게 조종해버릴 수 있게 된다.[2] 일본군의 166cm 목총 기준.[3] 여기에는 프랑스에게 영향을 받은 일본의 돌격지향적인 성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군이 백병전을 강요하려는 성향 때문에 근접전투가 많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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