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7

 

1. 개요
2. 상세
2.1. 파생형


1. 개요


독일 스포츠카 제조사인 포르쉐가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1] 출전을 위해 1969년에 개발한 차량.

2. 상세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 규정이 완화됨에 따라 10개월만에 포르쉐 908을 개조하여 만들었다. 베이스 차량인 908과 이 917까지 둘다 개발 책임자가 전 폭스바겐 회장이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다. 처음에는 단 10개월만에 908에서 2.2L 수평대향 8기통 엔진을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으로 교체하고, 차체를 길게 연장하고 후방에 탈착식의 가변 스포일러를 붙여 제작하였다.[2]
그런데 공기역학을 개선하겠답시고 연장한 긴 꼬리의 차체가 문제였는데, 이것이 저항은 줄였지만 양력을 만들어 후륜 접지력이 나쁘고 안정성이 개판이었다.[3] 결국 테스트 주행 중에 사고로 드라이버가 사망한다. 그래서 꼬리를 짧게 잘라 917K(K는 Kurz로 독일어로 짧다는 뜻)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부터 차가 완전 딴판이 되었다.[4]
1970년 1월 데이토나 24시에서 우승을 시작으로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을 7차전까지 4번 우승을 한다. 그리고 역시 가장 중요한 8차전 르망24시에서도 우승하면서 정상에 우뚝 선다.
캐나다 - 아메리카 챌린지 컵(캔암)에도 출전하기 위해 기존 쿠페형이 아닌 오픈탑형으로 바디를 변경하였다. 펜스키 팀이 917/30차량으로 1972년과 1973년에 우승을 한다.

2.1. 파생형


대략 11가지 파생형과 개조형이 있다.
  • 917 : 탈착식 가변 윙을 장착하고 초반 최고속 위주 세팅으로 만들었으나 다운포스 부족으로 매우 불안정 했다. 스티브 맥퀸의 영화를 보면 이 차를 모는 것이 얼마나 드라이버들에게 공포와 압박으로 다가왔는지 알 수 있다.
  • 917PA : PA는 Porsche-Audi로 아우디가 개발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그룹사로써 스폰서로 참여했기 때문에 차체 측면에 포르쉐-아우디 문구가 들어갔다. 캔암 시리즈 출전을 위해 천장을 잘라낸 스파이더 형식 바디로 만들면서 55kg을 줄였고 1969년 시즌 중간에 투입되었다. 이 PA형식 중에는 한스 메츠거가 설계한 공랭식 자연흡기 수평대향 16기통 엔진(아래 우측사진)을 탑재하기 위해서 차체를 길게 잡아늘린 버전도 있었으나 레이스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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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7K : 차체를 조금 짧게 줄이고, 가변스포일러를 장착하여 고속 안정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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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7L : 르망 24시의 라 사르테 서킷 처럼 고속서킷에서 최고속을 뽑을려고 뒷쪽 차체를 도로 늘인 버전이다.
  • 917/10 : 917PA의 뒤를 이어 1970년에 캔암 풀 시즌에 참가했다. 12기통 트윈터보 박서엔진을 처음 얹었고, 시즌 3위를 했다.
  • 917/20 : 1971년 연구개발과 시험을 위해 딱 한대 만들어진 버전으로, 핑크피그 라는 별명과 함께 핑크색 차체에 점선과 함께 부위별 명칭이 독일어로 적혀있다. 이런 데칼을 한 이유는 당시 포르쉐 917/20이 공개되었을때 사람들이 돼지같이 생겼다고 놀려댔는데 그걸 듣고는 포르쉐가 차에 돼지고기 부위처럼 도장을 해버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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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7/30(Can-Am) : 공랭식 12기통 트윈터보 박서엔진으로 평균 1100마력, 최대 1580마력을 뽑아냈다. 처음엔 박서 16기통 엔진을 올린 PA를 캔암에 투입할 것을 고려해봤으나 취소하고 12기통에 터보 조합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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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IA 주관 월드시리즈로, 여기서 제일 유명하면서 중요한 경기가 바로 르망24시.[2] 실선쳐져 있지만 이 과정은 진짜 날림이었다. 당시 이사회는 운전자 안전을 위해 운용 가능한 차량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조건이 해당 차량의 공도용 버전을 25대 이상 만들 수 있는지였다. 이는 사실상 소규모 제작사의 차량 진입장벽을 높이는 의도였으나 피에히는 차량을 직접 만들기로 한다. 포르쉐의 사무직과 비서 등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동원되었고, 완성된 시제차량 대부분은 공도에서 실제로 운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차량이었다. 심지어 시간 부족으로 인해 이 차량들의 차축을 트럭용으로 땜빵해서 제출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차량 감독관은 이 점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해당 차량을 그대로 승인해 포르쉐는 간신히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3] 다르게 말하면 차가 붕붕 뜨고 통제가 안 된다는 소리.[4] 당시 자동차 에어로다이내믹 지식은 기초 수준이었기 때문에 엔지니어들은 이런 공기 흐름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때문에 이런 테스트 도중 드라이버들이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잦았다. 포르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T40 개발에 참여했던 존 와이어를 데려오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