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로

 


성명
하동로(河東老)
본관
진양 하씨
생몰
1876년 2월 1일 ~ 1926년 12월 18일
출생지
경상도 진주목
(현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1]
사망지
경상남도 진주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하동로는 1876년 2월 1일 경상도 진주목(현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0일 진주 읍내에서 황종화(黃鍾和), 하남식(河南植)[2] 등 6명의 동지와 함께 경남단(慶南團)을 조직하고 6월 초순부터 9월 중순 사이에 하용제(河龍濟) 등 여러 명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운동자금의 출자를 요구했다. 또한 6월 하순에 진주군 대곡면에 거주하는 하종식(河宗植) 외 8명을 경남단의 임원으로 임명한다는 의친왕 명의의 임명장을 서울에서 돌아온 황종화로부터 건네받아 하종식 등에게 교부하는 역할을 맡았다.
1919년 7월, 하동로는 진주군 평거면 귀곡리에 거주하는 정태석(鄭泰奭)을 방문하여 경남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부를 설치할 계획임을 말하고 원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8월 20일에 황종화와 의논하여 임시정부와 연락할 임무를 권태용 외 2명에게 맡겼다. 권태용은 무사히 상하이에 도착한 뒤 임시정부로부터 경상남도 금전수입원으로 임명되어 9월 18일에 귀환했다.
하동로는 이후에도 3차례 정태석을 찾아가 600원의 원조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태석이 경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체포되었고,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사기미수 및 협박미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 자택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1926년 12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하동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진양 하씨 집성촌이다.[2] 독립유공자 하남식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