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명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재명은 1869년생이며 서울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하와이로 노동이민 갔으며, 1908년 11월 30일 미 본토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漢人合成協會)가 합동발기문을 발표하고 양 단체 통합을 합의했을때 한인합성협회 대표로 참여했다. 그 결과 1909년 2월 국민회가 창립되고, 공립협회는 북미지방총회, 합성협회는 하와이지방총회로 개편되었다.
이후 1909년 국민회 호놀룰루지방회 회장, 1910년부터 1915년까지 대한인국민회 호놀룰루지방회 총무ㆍ학무ㆍ재무ㆍ서기ㆍ헌장기초위원, 신한국보 및 국민보 주필ㆍ편집ㆍ재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0년 3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원이 된 이래 4월에는 중앙총회 재무대리를 겸하였다. 1921년과 1922년 북미지방총회 총무와 기관지 신한민보사(新韓民報社) 사무원, 1923년 학무, 1924년과 1925년에는 부회장 겸 대의원회(代議員會)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실업원, 1927년 새크라멘토지방회(朔都地方會) 서기, 1931년 로스앤젤레스공동회 국어학교 교육위원, 같은 해 12월 미주한인연합회 로스앤젤레스한인공동회 대표이자 연합회 서기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35년 로스앤젤레스 3.1학교 교육부 원장, 교미 30년 기념회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36년 북캘리포니아주 대표로 재미한인사회 발전책 실행위원이 되어 국민회 부흥책과 합동안을 발표하고 국민회 제도를 변경하였다.
1937년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 대표 및 중앙집행위원 후보, 1938년 후보집행위원과 헌장 교정위원, 국민회 시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9년에도 시사위원으로 선정되어 중일전쟁의 정세와 재미한인의 대의선전 방침 등을 연구하였다. 또한 1914년부터 1937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1945년 9월 12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병사했으며, 로즈데일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한재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