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집성방
1. 개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은 조선 초기 국내의 제도권 의학계의 처방 및 민간의 의학 처방에서 사용되는 약재에 대한 서적으로, 1433년 국가 기관에 의해 간행된 의학 서적이다.
이 책이 완성되자 세종이 당시 이 책의 편찬 책임자였던 문관 권채에게 서문을 쓰게하고, 전라도와 강원도 감영에서 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그 뒤 성종대에 복간되고 인조대에 활자본으로 인쇄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국가적 인쇄 작업 이후에도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복간 작업이 이루어졌다.
2. 편찬 관련
2.1. 향약에 대한 연구
우선 향약이라는 낱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재(唐材)라 부르는 중국산 약재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향약에 대한 연구는 고려 중엽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에는 중국산 약재를 선호하고 많이 사용했었지만 고려-몽골 전쟁이 일어나 중국과 고려 모두 전쟁에 휩싸이면서 중국산 약재의 수입과 유통이 어려워지자 국내의 약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려 정부에서는 향약구급방, 향약고방, 삼화자향약방, 동인경험방, 향약혜민경험방 등의 향약 관련 서적과 향약 처방에 관한 경험적 의학 서적이 편찬되게 된다.
조선 초기에도 이런 의료 정책이 계속되어, 지방에 의학교수(醫學敎授)를 두고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향약방서들을 익히도록 하였다. 또한 태조는 당시의 중앙의료기관인 제생원에 명하여 고려시대의 향약 서적들을 종합하여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이라는 서적을 편찬하게 하였다.
2.2. 향약제생집성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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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문화재청 - 공공누리)
향약제생집성방은 조선 태조 시기 제생원에서 편찬한 의료 서적으로, 향약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의학에 대해 기술한 서적이다.
여말선초의 의료관료인 김희선이 당시의 향약 처방전들을 모아 저술한 '삼화자향약방'과 조선 초기의 의관인 권중화가 편찬한 '향약간역방'을 중심으로, 제중원에서 편찬하였다. 향약집성방은 총 30권으로, 질병 338종에 대한 내용과 향약방문 2,803개를 담고 있다. 각 질병의 항목 별로 당시의 의료 경험을 개괄적으로 소개한 후 향약 처방을 질병의 종류에 따라 제시하고 설명한다.
이 책은 여말선초의 향약에 대한 의료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 향약집성방의 편찬에 큰 밑바탕이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형태로 현전하지 않고 있으며, 30권 중 4, 5, 6권만이 각 한 본씩만 남아 있고, 4, 6권 같은 경우는 파본이고 그마저도 6권은 여러 목판본에서 간행된 것을 붙여 놓은 것이라 내용 파악도 잘 되지 않는다.
2.3. 향약집성방 편찬 과정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내에 존재하는 향약방을 총망라하는 책을 편찬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편찬된 서적이 향약집성방이다.
향약제생집성방은 제생원과 같은 당시의 중앙 제도권 의학계에서 사용되는 향약재와 향약 처방을 중심으로 저술되었다면, 향약집성방은 제도권 의학계뿐만 아니라 민간의 향약에 대한 것까지 총망라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향약채취월령'을 반포 했는데 이는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각 도마다 토산공품, 생산약재, 종양약재 등의 분류로 약초의 분포를 아주 상세하게 조사하였다. 이러한 형식의 조사는 조선 왕조 초기 중앙 권력이 어느 정도 강력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전국적인 향약에 대한 조사가 완료된 후에는 향약과 당재에 대한 비교 연구를 진행하였다. 국내에서 다양한 향약을 수집하는 한편, 당시 최고의 약리학자였던 황자후를 명나라에 보내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던 당재를 구해오게 하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신 파견이 있을 때마다 의관들을 따라보내 약재를 수집하고 당시 중국의 의학자들에게서 의학 서적을 구입해 오거나 의약학에 대한 지식을 학습해 오도록 하였다.
이러한 선행적 조사가 완료된 후 결과를 정리하는 서적으로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였다. 이 책은 향약을 채취하기에 가장 적절한 월령들을 기술하고, 수백 종류의 약초의 향명을 기록하였다. 또한, 각 약초의 성질과 처방 방법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였다. 향약채취월령이 간행될 무렵 팔도지리지가 거의 완성되었기 때문에 팔도지리지의 분류에 따라 향약의 채취 지역을 재교정하는 작업도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전적 작업이 마무리되자, 1431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향약집성방의 저술이 시작되었다. 사전적 작업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술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1433년 완성되게 되었다.
3. 내용
향약제생집성방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추가적인 향약 연구가 이루어져 내용적인 측면은 향약제생집성방에 비해 크게 확대되었다. 향약제생집성방의 질병이 338종이었던 것이 959종으로, 향약방문이 2,803개였던 것이 10,706으로 대폭 늘어났다. 또한 침구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 등에 대한 내용은 새롭게 추가되었다.
향약집성방에서는 모든 질병을 57개의 대강문(大綱門)으로 분류하고, 그 아래에 959종의 소목을 두었다. 또 각 강문과 각종에 해당하는 이론적인 내용과 처방 내용들을 출전을 인용하며 기술하였다. 57강문들은 인체 부위를 중심으로 분류되어 있긴 한데, 병문을 바탕으로 분류한 것과 병증을 바탕으로 분류한 것들이 섞여 있어 근현대의 임상의학적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염병,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산부인과, 소아과, 치과 등 거의 대부분의 임상 분과가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한의학계에서는 이 분류를 다시하여 편찬한 사례도 있다.
향약집성방의 권두에는 '자생경'에서 인용한 침구목록이 기술되어 있고, 권말에는 향약본초의 총론과 각론이 인용되어 있다. 특히, 향약본초의 총론 중 제품약석포제법이라는 약재의 취급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한편, 이 책은 160여 종의 국내외의 방대한 의학 서적을 인용하여 기술되어 당시의 의학 서적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에 인용된 국내 의학서적 중 '향약구급방'을 제외하고 모두 망실되었으나, 이 책에서 상당한 인용구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고중세의 의학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매개체로 된다.
이 책은 '향약'이라는 의미를 단순히 국내에서 채집되는 약재에 국한시킨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사용하고 처방하는 향약에 대한 내용들까지도 포함함으로써,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확립한 초석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 책을 편찬하기 위해 국내외의 수많은 약재를 수집하여 연구한 것은 조선 초기의 약리학 발전에 상당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더욱이 국가에서도 이 책을 여러 번 복간하고, 민간에서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복간해 온 것으로 볼 때, 조선 시대의 한의학을 관통하는 중요 서적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4. 현전 판본 및 번역서
향약집성방은 각종 전란을 거치며 국내에서는 망실된 의방유취와는 달리 조선 시대에 여러 번 재간행되었기 때문에 초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완전한 형태로 현전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발간된 판본들은 다른 고도서들과 달리 수가 많아서 향약집성방의 고판본이 문화재로 지정된 예는 없다.
1942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간행한 활자본은 완전한 형태의 향약집성방이며, 현대에 출판되는 향약집성방 판본이나 번역서는 대부분 이 것에 기초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1984년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번역한 것이 유일한 활자본으로 여강출판사에서 영인하여 출판한 바 있으며, 2018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국역을 완료하여 한의학고전DB에 전문을 서비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