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카림/배경
1. 기본 배경
오래전 잊혀져 먼지가 되어버린 한 왕국에서 태어난 헤카림은 강철 기사단의 장교였다. 강철 기사단은 왕의 영토를 수호한다는 맹세 아래 형제처럼 진한 전우애로 뭉친 집단이었다. 헤카림은 자신의 위풍당당한 군마에 올라 연전연승을 이어갔다. 강철 기사단장은 헤카림에게서 자신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보았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어두운 면을 보았다. 승리의 영광을 향한 헤카림의 집착은 명예를 저버리게 할 만큼 커졌고, 결국 헤카림은 절대 기사단을 이끌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기사단장의 머릿속에서 확고해졌다. 헤카림은 차기 기사단장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지만,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장교로서 자신의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뒤이은 출정에서 기사단장은 휘하 기사들과 떨어진 채 적군에게 포위당했다. 그 모습을 본 헤카림은 기사단장의 자리를 노리고 그가 죽게 내버려 두었다. 헤카림이 저지른 만행을 알 리 없는 강철 기사단원들은 피로 물든 땅 위에 무릎을 꿇으며 헤카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기사단장 취임식을 위해 도성으로 간 헤카림은 그곳에서 왕이 가장 신임하는 장군인 칼리스타를 만났다. 헤카림의 기량과 지도력을 높이 산 칼리스타는 독 묻은 칼에 찔린 왕비를 살릴 묘약을 구하러 떠나면서 강철 기사단에 왕의 호위를 맡겼다. 편집증에 사로잡힌 왕은 사방에서 위협을 느꼈고, 죽어가는 왕비에게서 자신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자들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헤카림에게 왕국 전역을 돌며 자신의 뜻에 반하는 자들을 진압하라고 지시했다. 강철 기사단은 왕의 명령을 따르는 무자비한 집행자로서 악명을 떨쳤다. 무수한 마을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이 강철 기사단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왕비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헤카림은 비탄에 잠긴 왕의 마음속에 증오를 심었다. 왕비의 복수를 핑계 삼아 강철 기사단을 이끌고 타국의 영토를 침략해 더욱 악명을 떨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출정을 떠나기 전 칼리스타가 돌아왔다. 그녀는 먼 축복의 빛 군도에서 치료제를 찾았지만, 왕비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칼리스타의 말을 불신한 왕은 반역죄를 물어 그녀를 투옥했다. 호기심이 동한 헤카림은 감옥에 갇힌 칼리스타를 찾아갔다. 그리고 군도를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는 백색 안개와 그곳 사람들의 막대한 부, 전설로 전해지는 생명의 정수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헤카림은 칼리스타를 설득해 왕의 함대를 축복의 빛 군도로 안내하도록 했다. 축복의 빛 군도는 보통 인간이 볼 수 없도록 장막에 가려져 있었으며, 오직 칼리스타만이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비의 시신을 실은 함대는 헬리아라는 도시에 당도했다. 강철 기사단이 이끄는 운구 행렬은 도시 지도자들과 마주했지만, 그들은 돕기를 거부했다. 분노에 사로잡힌 왕은 칼리스타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칼리스타는 왕의 명을 거역했다. 그리고 헤카림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영겁의 저주를 가져올 결정을 내렸다. 그는 창을 들어 칼리스타의 등을 찌르고, 도시에 숨겨진 신비한 보물들을 약탈하도록 기사단에 명령했다.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도시의 하급 관리인 한 명이 왕을 생명의 정수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헤카림은 살육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축복의 빛 군도가 대몰락에 이르게 되자, 헤카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력의 폭풍이 불어닥쳐 헬리아를 강타했다. 건물은 모조리 무너지고 파편은 혹독한 암흑 속에 갇혔다. 뒤이어 검은 안개가 굉음을 내며 몰려와 모든 생명을 집어삼켰다. 헤카림은 강철 기사단을 수습해 배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기사단원들은 하나둘씩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아 끝까지 저항하던 헤카림 역시 그림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위풍당당한 자신의 군마와 한 몸이 되어 귀신과 같은 기괴한 형태로 변해버렸다. 마치 그의 마음속에서 커지던 어둠을 형상화한 듯했다. 검은 안개에 완전히 굴복하다 못해서 하나가 되어버린 그 존재는 분노와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림자 군도에 영원히 갇혀버린 헤카림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예전 삶을 흉내라도 내듯 한때 자신이 정복하려 했던 끔찍한 땅을 배회했다. 지금도 검은 안개가 육지를 덮칠 때면 헤카림과 강철 기사단의 혼령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빛바랜 영광을 추억하며 산 자들을 도륙한다. |
2. 스토리 - 모두 죽으리라
얼음장 같은 파도가 황량한 바닷가를 때렸다. 해변은 헤카림이 살육한 이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아직 죽이지 않은 인간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후퇴한 뒤였다. 검은 비가 그들을 흠뻑 적셨고, 비통한 먹구름이 섬의 심장부에서 피어올랐다. 헤카림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전투의 함성이었다. 목쉰 목소리로 짜내는 노래의 말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의미만은 분명했다. 정녕 배에 무사히 도착하리라 생각하다니. 나무로 된 방패를 서로 연결하여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걸 보니 전투력이 아예 없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낱 인간일 뿐. 헤카림은 공포가 어린 비릿한 살덩이 냄새를 음미했다. 무너져가는 폐허를, 그늘진 안개가 피어오르는 잿빛 모래를 짓밟으며 헤카림은 그들의 주위를 빙 돌았다. 말발굽이 검은 바위에 부딪혀 이는 불꽃 소리는 천둥이 되어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듣는 사람들의 용기를 무너뜨렸다. 헤카림은 투구의 벌어진 틈 사이로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영혼의 희미한 빛이 몸 주위에서 후광처럼 파르르 깜박거리고 있었다. 헤카림은 그 빛을 갈망하면서도 격렬한 혐오를 느꼈다. “모두 죽으리라.” 강철 투구 때문에 말이 잘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그 소리는 녹슨 칼날처럼, 교수형으로 죽은 이의 목소리처럼 신경을 긁어댔다. 헤카림은 그들의 공포를 음미했다. 누군가 절망에 굴복해 방패를 내던지고 배로 달려가자 헤카림은 씩 웃었다. 갈고리처럼 휜 날을 낮춰 든 헤카림이 잡초 무성한 폐허로부터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먼 옛날 돌격할 때 느끼곤 했던 익숙한 전율이 느껴졌다. 은빛 군단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기억이 어른거렸다.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승리의 기억이었다. 기억은 곧 사그라졌다. 도망치던 남자가 희고 차디찬 파도의 어두운 표면에 도달해 어깨너머로 돌아보며 외쳤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헤카림의 칼이 남자의 몸을 쇄골에서 골반까지 단번에 갈랐다. 천둥 같은 일격이었다. 새카만 칼날이 피에 젖어 파르르 떨렸다. 남자의 시든 영혼은 자유롭게 날아가고자 했지만, 인간에 굶주린 안개가 그를 놓칠 리 없었다. 남자의 모습이 생전의 그를 닮은 어슴푸레한 혼령으로 변하는 것을 헤카림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헤카림이 섬의 힘을 끌어모았다. 피맺힌 파도가 소용돌이치더니 어른거리는 빛으로 엮인 한 무리의 흑기사들이 물에서 일어났다. 오래된 유령 같은 철판 갑옷에 갇힌 이들은 어두운 빛으로 반짝이는 검은 칼들을 빼 들었다. 이전에도 지금도 그를 섬겼으니 헤카림이 알아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헤카림은 그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는 해변에 있는 인간들 쪽을 돌아보며 안개를 갈랐다. 그러고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 인간들이 공포에 떠는 것을 마음껏 감상했다. 철갑으로 중무장한 거구의 헤카림. 그의 거대한 몸은 인간과 말이 하나 된 악몽 같은 형태다. 그의 몸을 둘러싼 검은 철판에는 이제는 그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의미의 도안이 새겨져 있다. 투구 뒤에는 고뇌의 불이 이글거렸다. 그 안의 차디찬 영혼은 죽었으면서도 끔찍할 정도로 활력이 가득했다. 번개가 하늘을 어지럽게 갈랐다. 헤카림이 뒷발로 섰다가 칼을 낮추더니 그의 기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돌격했다. 피범벅된 모래와 뼛조각이 사방에 날렸다. 인간들이 함성을 지르며 방패를 들었으나, 혼령들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봉에 선 헤카림이 공격을 개시했다. 벼락 같이 검을 휘둘러 방패로 된 벽에 큰 균열을 냈다. 철갑을 두른 헤카림의 거구 아래 사람들은 짓밟혀 피투성이로 으스러졌다. 헤카림은 칼을 사방으로 휘둘렀고, 그의 칼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목숨이 스러졌다. 유령 기사들도 앞길을 막는 모든 것들을 밟아 뭉갰다. 그야말로 끔찍한 광란이었다. 말발굽으로 후려치고 창으로 찌르고 검으로 베는 유령 기사들 앞에서 산 자들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은 너덜너덜해진 몸을 떠났으나 몰락한 왕의 치명적인 주술에 걸려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혔다. 죽은 이들의 혼이 헤카림을 둘러쌌다. 바로 자신들을 죽인 헤카림에게 속박된 존재였다. 헤카림은 전투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탄식하는 혼령들을 무시했다.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 시시한 괴롭힘은 지옥의 간수 몫으로 남겨도 충분했다. 헤카림에게는 오직 죽이는 행위만이 의미가 있으니까. |
3. 하이 눈 스킨 세계관
3.1. 지옥의 문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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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 배경
4.1. 유니버스 이전
중무장한 거구의 유령 헤카림은 룬테라 구석구석에서 두려움에 소리 낮춰 불려온 이름이다. 그는 그림자 군도를 방비하며, 이 저주 받은 땅에 발을 들이는 어리석은 자들을 처단한다. 언데드의 수호자[1] 원문은 Vanguard로, 선봉장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
헤카림은 어디서 왔을까? 사람들은 헤카림을 망령 기사, 저승에서 온 거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항상 갑옷을 입고 있고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며 끊임없이 달린다. 헤카림이 발로란 북서부 해안에 처음 출현한 그 순간부터 그를 마주친 사람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정신을 잃기 일쑤였다. 아무도 세상에 이런 자가 존재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며 그가 갑자기 발로란에 온 이유도 전혀 가늠되지 않았으니 시민들의 불안이 깊을 만도 했다. 헤카림이 밟고 지나간 자리는 생기를 빼앗겨 황폐하게 변했으며 그가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밭을 갈던 데마시아 인근 주민들은 황급히 각자의 집에 들어가 벌벌 떨게 되었다. 곧 데마시아 시내에 있는 술집마다 무시무시한 망령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하게 퍼져 나갔다. 헤카림이 유령 기사들을 군단처럼 이끌고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흉악한 강령술사가 헤카림을 소환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고대 전사의 망령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죄다 쓸어버리려는 거야!" 마침내 헤카림은 도시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고 헤카림을 무찌르겠다고 결심한 데마시아 사령관 한 명이 뛰어난 부하들을 추려 소수 정예 부대를 꾸리고는 출격했다. 사령관은 부하들을 대동하고 헤카림 앞을 막아선 다음 그가 공격해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망령이 이들에게 다가올수록 걷잡을 수 없는 공포심이 병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공포에 짓눌린 채 거대한 망령의 무자비한 공격과 가차 없는 발길질에 속절없이 비명만 내지를 뿐이었다. 헤카림은 겁을 집어먹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사령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으로 경고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인간의 군대는 그림자 군도의 위력을 당해낼 수 없다." 헤카림은 다시 죽음의 행군을 이어갔다. 악몽과의 대면이 끝난 후 사령관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동공의 초점을 잃었고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가까스로 데마시아에 돌아왔고 사태의 엄중함을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데마시아 사람들에겐 미치광이의 헛소리로만 치부될 뿐이었다. 헤카림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왜 발로란이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전쟁 학회를 향했다는 사실이다. 학회의 정문에 도착한 헤카림은 음산하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문을 열어라!"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망령이 우리 모두를 소멸시켜 버릴 거요..." - 데마시아의 전직 사령관''' |
4.2. 유니버스 이후
'''“저들의 대열을 무너뜨리고 가차 없이 추격하라. 산 자들을 짓밟고 놈들의 두려움을 마음껏 마셔라.”''' 헤카림은 유령 기수들을 이끌고 산 자를 사냥하며 그림자 군도를 누비는 철갑을 두른 거인이다. 말과 영원히 한몸이 되는 저주를 받은 반인반수 헤카림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 영혼을 말발굽으로 짓밟는 쾌락을 즐긴다. 오래전 재로 변해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어느 제국에서 태어난 헤카림은 왕의 영토를 수비하겠다는 맹세 아래 형제와 같은 전우애로 뭉친 전설적인 전사 집단, 강철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이곳에서 헤카림은 아주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시련을 거치며 강철 같은 전사로 거듭난다. 헤카림은 성장해가며 모든 형태의 전략전술을 쉽게 통달하였고, 얼마 안 있어 동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사가 되었다. 강철 기사단장은 헤카림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뒤를 이을 후보로 점찍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의 어두운 면모를 깨달았다. 군마에 올라 전장을 휘저으며 연거푸 승리를 일궈내긴 했으나, 명예를 더럽힐 만큼 살육을 즐겼고 승리의 영광에 집착이 지나쳤던 것이다. 단장은 헤카림에게 기사단을 맡겨선 안 되겠다는 확신이 서자 그를 은밀히 따로 불렀다. 헤카림은 차기 기사단장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임무로 복귀했다. 기사단의 다음 출정 때, 기사단장은 휘하 기사들과 떨어져 적에게 포위당했다. 그를 도우러 올 수 있는 건 헤카림뿐이었으나, 원한을 품고 있던 헤카림은 기사단장이 죽게 내버려두고 말을 돌렸다. 전투가 끝나고 살아남은 기사들은 헤카림이 저지른 일을 알지 못한 채, 헤카림을 새로운 수장으로 추대해 피맺힌 전장에 무릎을 꿇고 그를 따르리라 맹세했다. 헤카림은 도성으로 돌아가 왕의 근위 기사인 지휘관 칼리스타를 만났다. 칼리스타는 암살자의 독칼에 찔린 왕비를 위한 묘약을 구하러 떠나는 길이었다. 칼리스타는 헤카림의 능력을 높이 사 자신이 없는 동안 왕의 호위 임무를 강철 기사단에 맡겼다. 헤카림은 수락하면서도 이를 칼리스타의 임무에 비해 시시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때 그가 품은 앙심은 훗날 재앙의 씨앗이 된다. 경호 임무를 맡은 헤카림은 왕이 슬픔에 미쳐가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다. 편집증에 사로잡힌 왕은 죽어가는 왕비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거스르는 기미가 보이면 누구든 반역죄로 다스렸다. 강철 기사단을 이끌고 이런 불만 세력들을 잔혹하게 진압한 것은 헤카림이었다. 왕명을 실행하는 냉혈한이라는 악명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무수한 마을이 불타고 많은 이들이 강철 기사단의 칼에 목숨을 잃어, 왕국은 도탄에 빠졌다. 결국 왕비가 숨을 거두자, 헤카림은 왕에게 왕비를 죽인 배후를 알아냈다고 거짓으로 고했다. 강철 기사단을 이끌고 이웃 나라를 짓밟아 더욱 악명을 떨칠 명분이 필요해서였다. 헤카림이 출전하기 전 칼리스타가 원정에서 돌아왔다. 전설로 전해지던 축복의 빛 군도에서 왕비를 치유할 할 방법을 알아왔으나,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왕국이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칼리스타는 자신이 알아온 비밀을 말하길 거부하다 투옥되었고 이때가 왕의 신임을 얻을 기회라 생각한 헤카림은 철창에 갇힌 칼리스타를 찾아갔다. 그러고는 왕이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말리겠다고 약속하면서 비밀을 공개하도록 설득했다. 칼리스타는 마지못해 동의한 후, 왕의 함대가 축복의 빛 군도를 가리는 결계를 통과하게 해주었다. 헤카림은 이미 타락해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왕을 호위하여 축복의 빛 군도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왕은 섬의 수호자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수호자들은 동정을 표하며 자신들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왕에게 말했다. 왕은 격노하여 그들이 마음을 바꿀 때까지 한 명씩 죽이라고 칼리스타에게 명했지만, 칼리스타는 이를 거부하고 섬의 수호자들을 해치려는 왕 앞을 막아섰다. 헤카림은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을 영원히 굴레에 옭아맬 결정을 내린다. 그는 칼리스타를 거들지 않고, 그녀의 등에 창을 꽂고 부하들에게 모두 학살하라 명령했다. 헤카림과 강철 기사단은 수호자들을 도륙했다. 등불을 든 누더기 차림의 수호자[2] 원문에선 a lantern-bearing wretch라고 적혀있다. 이자를 쓰레쉬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결국 쓰레쉬가 맞다고 공식 답변이 나왔다. 원문은 그냥 자신이 목격했던, 왕비를 되살릴 비밀에 대해 말해주었다고 나오지 주문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정황 상 요릭의 스토리에 나오는 영원의 물에 대해 알려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승으로 돌아온 왕비는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썩은 고깃덩어리 같은 소름 끼치는 존재에 불과했으며, 다시 죽기를 애원했다. 사랑하는 왕비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깨달은 왕은, 그녀와 자신의 생명을 끝내고 영원히 함께하게 해줄 주문을 외웠다. 그 절박한 마법은 성공했으나, 섬 곳곳에 감춰진 마력이 깃든 물건들 때문에 그 위력이 백 배로 강화되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일어나 왕을 삼키더니 이내 섬 전역을 휩쓸며 바람에 닿은 모든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헤카림은 왕을 버려둔 채 강철 기사단을 이끌고 서둘러 해안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보이는 자들은 모두 죽여 버렸다. 그동안 검은 안개 돌풍에 쓰러진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혼령이 되어 다시 일어났다. 기사들도 하나씩 언데드로 변했고, 헤카림만이 홀로 남았다. 멈출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저주가 헤카림을 덮쳐 그와 그의 군마를 한 몸으로 만들었다. 진정 어두운 그의 영혼이 제대로 반영된 기괴하고 끔찍한 형상이었다. 분노에 가득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흉포한 철갑 괴물, 전쟁의 전조라 불리게 된 거대한 짐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생전에 지은 죄가 흑마술의 소용돌이에 뒤섞여 태어난 끝없는 원한과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기괴한 존재, 헤카림은 그림자 군도에 묶여 그 끔찍한 땅을 떠돌며, 근위 기사였던 과거를 비웃기라도 하듯 보이는 것을 모두 죽이고 있다. 그리고 그림자 군도에서 스며 나온 검은 안개가 육지를 덮칠 때면, 헤카림과 강철 기사단의 혼령들이 말을 타고 나타나 산 자들을 도륙한다. 오래전에 빛바랜 영광의 시절을 되풀이하려는 듯이. |
[1] 원문은 Vanguard로, 선봉장이라고 번역해야 옳다.[2] 원문에선 a lantern-bearing wretch라고 적혀있다. 이자를 쓰레쉬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결국 쓰레쉬가 맞다고 공식 답변이 나왔다.[3] 원문은 그냥 자신이 목격했던, 왕비를 되살릴 비밀에 대해 말해주었다고 나오지 주문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정황 상 요릭의 스토리에 나오는 영원의 물에 대해 알려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