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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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본문


1. 개요


2019 하이 눈 스킨 발매와 동시에 공개된 하이 눈 세계관 관련 단편 소설이다. 하이 눈 애쉬하이 눈 다리우스, 하이 눈 헤카림, 그리고 하이 눈 루시안이 등장한다.

2. 본문


'''1868년 6월 7일'''
나는 여행 상단과 함께 더스트에 도착했다.
더스트는 생기 없이 황량한 마을이다. 남쪽 끝자락에 있는 대부분의 선로가 사막의 모래에 묻혀 사라지듯, 이 마을 역시 쇠락해 가고 있다. 대확장 시대에는 꽤 잘 나가는 도시였지만, 이제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술집과 다 무너져 가는 집 몇 채밖엔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내가 지나치자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지만, 나는 진짜 천사가 아니다. 그들의 기도엔 응할 수 없다.
이 마을이 암울한 개척지에서 얼마나 오래 버텨낼지 알 수 없다. 내가 돌아올 때쯤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계속 가야만 한다.
내가 향하는 곳은 사암 아치와 드넓은 황무지가 있는 동쪽이다. 정신이 멀쩡한 자라면 이런 곳에 정착해 살지 않을 것이다. 노련한 모험가에게도 쉽지 않을 만큼 온갖 위험으로 가득한 데다, 내가 찾고 있는 사냥감은 평범한 강도나 무법자 무리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렇기에, 나는 보수의 절반을 선금으로 지불하고 진정한 전사를 고용해 대동했다.
그는 몸집이 거대한 남자로, 이런 류의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인상이 어두웠다. 가까이 가면 사악한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피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지만, 이번 일에는 이런 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힘과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자. 그것이 내가 황량한 검은 협곡으로의 여정에 인간사냥꾼 다리우스[1]를 고용한 이유다.
나는 그와 함께 그 음산한 검은 협곡에서 악마를 찾아 처단할 것이다.

'''1868년 6월 9일'''
더스트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다리우스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가슴 속 깊은 분노에서 나오는 단호하고 확고한 결의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나를 창조해 낸 동쪽의 존재들을 닮았다. 그러나 창조자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기도 전에, 그의 선조들이 떠오른다. 수년 전 낙원의 정원에 침입해 모든 것을 말살한 자들이.
옛 천사들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기계와, 학살자들의 피를 물려받은 학살자. 그 둘이 계약을 맺고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큰 죄악의 산물을 처단하기 위해 떠난다. 그것이 바로 이 여정의 가장 큰 모순이다. 내 동반자 역시 내심 우스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람을 거슬러 유황 잿더미, 불타는 발굽 자국, 지옥불에 그을린 수풀 냄새를 따라 이동했다. 이 땅에는 흙, 풀, 야생 라벤더가 수천 리그에 걸쳐 뻗어 있다. 끝없는 평야는 하늘에 맞닿은 지점을 넘어 영원히 펼쳐진다. 실로 축복받은 곳이다. 나는 탄생 이후 오랜 시간을 들여 이 땅의 곳곳을 방문했으며, 나를 담고 있는 육체가 존재하는 한 더 많은 곳을 순례하며 몇 세기를 보낼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의 창조에 대한 비밀은 역사 속에 잊힌 지 오래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창조된 인공 천사이며, 옛 천사들의 피를 이어받았다. 지금도 그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울리지만 신들은 이미 살해당했으며, 천사들 역시 개척지 곳곳에 묻혀 있다. 그들의 말은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이 공허하게 울리다 언젠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이다. 옛 존재들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이들이 우리를, 최소한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언젠가 현세의 내 육신도 녹이 슬고, 그 안에 깃든 존재 역시 천사들의 영혼을 좇아갈 것이다. 그곳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일지도 모른다. 그때가 온다면, 나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땅을 다시 한번 눈에 담을 수 있을까.

'''1868년 6월 11일'''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2층짜리 농가와 마구간이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찾고 있는 악마의 흔적이었다. 불타는 발굽 자국과 타다 만 동물과 사람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사악한 거인이 공중으로 집어 던진 후 내팽개친 듯한 모습이었다. 시체들의 그을린 얼굴은 하나같이 공포에 뒤틀려 있었다. 흐릿한 눈에는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망할 악마들! 지하 세계의 사악한 존재들이 연기와 암흑의 감옥을 벗어난 것이다. 이곳에 눌러앉은 부류도 있었다. 가축의 해골 형상을 하고 고대 신들이 지배하던 시대부터 이 땅을 배회하던 존재들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지옥의 밑바닥에서 갇혀 있는 영혼들을 고문하고, 사악함과 절망으로 가득한 자들의 혼에 고통을 안겨 주며 영겁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천국이 최초의 침략에 점령당했을 때, 낙원은 영영 인간성을 상실했다.
굴복당한 인간들의 영혼은 사악하게 미소 짓는 지옥의 입구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지옥조차도 울부짖는 인간들의 영혼을 전부 붙잡아 둘 수는 없었고, 이들은 곧 불길과 증오로 가득한 채 터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악마들이 마침내 악령과 합세한 것이다. 가짜 약장수, 축제 호객꾼, 출장 장의사로 위장해 잔혹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절박한 사람들을 속이는 악마들은 새롭게 탄생한 지옥불과 죽음의 사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제 천국은 텅 비었고, 지옥은 범람했으며, 힘없는 인간들의 영혼은 스스로 만들어 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계속되는 파괴의 흔적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나와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기계 천사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선과 악의 싸움에 끼어들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그는 나의 존재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 듯했으며, 기적을 일으켜 내면의 어둠을 밝혀 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곧 마주하게 될 전투와 승리에 대한 보상 외에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는 인류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으나, 그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뢰한다. 그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다.
땅거미가 지고 쉴 곳을 찾아 자리 잡을 때면, 그를 지켜보곤 한다. 그는 언제나 불길 속의 깜박이는 숯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1868년 6월 14일'''
악마가 이끄는 공포의 기사들이 남긴 검은 발굽 자국을 따라 이동한 지 수일이 지나고, 우리는 검은 협곡의 언저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의 말이 협곡으로 들어가길 거부해 나 역시 타고 있던 말 '자비'를 남겨 둔 채 걸어가기로 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말이 놀라 적에게 발각되면 곤란하니까.
인간사냥꾼 다리우스는 거대한 도끼를 가지고 다닌다. 도끼는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듯 자루가 상당히 닳아 있다. 인간 이하의 존재에 큰 공격성을 보이는 보안관들과는 달리, 감정이 없는 자는 공포와 나약함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의 눈은 폭력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주위에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 민감히 반응한다. 노련한 전사들이 그렇듯, 예측하기 힘든 초자연적 존재들에 주의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고, 조약돌이 밟히는 소리 외엔 사방이 고요했다. 다리우스는 악마가 왜 이런 곳에 사느냐고 물어 왔다. 악마에게는 지옥 외엔 어디든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우리는 인간에게 살해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의 뼈무덤 한가운데 도달했다.
불과 50년 전의 일이었다. 정부는 서쪽 끝으로 후퇴하지 않은 신들을 맹렬히 추격했고, 그들은 연방 정부 보안관의 총 끝에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다. 이후 곳곳에서 돈 냄새를 맡은 자들이 몰려들어 모든 것을 훔쳐 갔다. 너무 크고 무거워 옮길 수 없는 뼈는 이곳에 남겨졌고, 곧 돌에 파묻히고 지형의 일부가 되어 협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참담한 최후였다.
다리우스의 웃음소리가 석회암 벽을 따라 깊은 공동으로 울려 퍼졌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소리가 진동하여 거대한 석판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서서히 소리가 잦아들어 마침내 고요해지자, 다리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학살자들이 신을 죽이는 데 얼마나 걸렸을 것 같나?" 그가 묻더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도끼를 어깨에 지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길을 따라 성큼성큼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굶주린 표정이었다.

'''1868년 6월 15일'''
다리우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의 잔혹함이 필요해 고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의 무언가가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잠든 괴물을 일깨운 것 같다. 게다가 이제 그 괴물은 전보다 더욱 사악한 기운을 뿜고 있다. 그는 도끼를 손에 단단히 쥐고 결의에 찬 듯 걸음을 옮긴다. 나를 보는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동반자가 아닌 도전자의 그것이다. 힘만 있다면 세계를 두 동강 내는 일도 서슴지 않을 도전자. 그는 내게서 바로 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희미해지는 하늘과 점점 무겁고 뜨거워지는 공기만 아니었다면, 이미 나를 배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밤이 되면 악령과 악마, 그리고 그들과의 계약에 대해 중얼댄다.
"악령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고, 악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1868년 6월, 날짜 알 수 없음'''
여정을 계속하자 검은 협곡의 진정한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깊숙이 진입하자, 피를 타고 울려 오던 속삭임이 점점 흐려졌다. 협곡의 넓고 들쭉날쭉한 돌담이 마치 가시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계곡의 흙과 먼지 위로 기이한 흰색 꽃밭이 펼쳐져 있었고, 주변에는 어울리지 않는 산이 둘러싸여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해졌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협곡 깊은 곳에 있는 악마의 은신처로 향했다.
다리우스는 신과 괴물, 천사와 악령에 대해 종종 물으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가 질문하기 전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누가 있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고, 귓가에 벌레가 날아다니는 양 귀를 털어 낸다. 나는 매일 밤 야영할 때마다 그를 유심히 관찰한다. 조용히 타오르는 불길과 숯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이 사납게 일렁인다. 그리곤 내게 이곳에서 죽은 신과, 그가 정확히 어떻게 살해당했는지에 대해 캐묻는다.
이따금 그가 자고 있을 때,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며 웃음 짓는 이방인의 그림자가 보인다. 내가 있는 한 감히 접근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들이 왜 왔는지 알고 있다. 악마와의 거래를 절실히 원하는 그의 욕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가 점점 위험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악마를 만나게 될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악마를 처단하는 일은 결코 혼자서 해낼 수 없다. 일을 마치고 나면 그도 이성을 되찾고 이곳을 뒤덮은 안개 역시 마침내 사라지도 모른다.
다리우스가 나를 배신할 때를 대비해 대책을 세워 두었다. 악마와 맞설 때까진 서로가 필요하지만, 그 후에는...
그는 세상의 끝에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운명이 나를 등진다면, 우리 셋 모두 그렇게 되겠지.

'''???'''
나는 나의 죽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나는 태어나던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주 먼 곳에서 끌려 와 오래된 기계의 삐걱대는 소리에 둘러싸여 깨어났다. 나의 탄생은 기적이라고 했다. 나는 거대한 은빛 도시에서 발견된 고대 설계도를 기반으로, 한때 그곳에 살았던 존재들의 정수를 채워 창조되었다. 그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자 나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협곡의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불타는 악마 헤카림의 해골을 최후의 순간까지 기억할 것이다.
계곡 밑바닥에 도착하자 무거운 공기를 뚫고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동반자도 이성을 되찾았고,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긴장감도 마침내 사라진 듯했다. 바위 사이로 나타난 거대한 입구는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땅에는 작은 불씨가 깜박였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증오로 가득 차 언제나 헤카림을 따르는 악령 기수들이 분명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우리는 무기를 꺼내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눈앞에는 어두운 통로뿐, 기수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늠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어두운 길을 따라 이동했다. 안은 용광로처럼 뜨거웠고, 빛이라곤 바닥을 따라 늘어선 잿더미의 불씨뿐이었다. 한참을 들어가자 협곡 반대편 끝의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적황색 불이 뱀의 혀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악마가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악마를 쫓는 동안, 그 역시 우리를 쫓고 있었다. 그것이 악마의 본능이다. 악마는 지옥의 왕이며, 고대 귀족이나 동쪽 땅의 고위 관료처럼 부유하고 고귀한 자들을 찾아간다. 악령은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기만한다. 그들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 후, 그 끔찍한 선물의 무게를 느끼고 나면 대가를 받아 간다. 그러나 악마는 항상 철저하게 계획하며, 언제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다리우스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는 거대한 장작불처럼 강렬한 불길이 서려 있었다. 매일 밤 불꽃 속에서 지켜보던 무언가를 드디어 찾은 것이다.
우리는 녹아내린 돌과 타오르는 열기가 한데 섞인 공간에 도달했다. 그 주변은 협곡의 능선만큼이나 높은 불기둥에 둘러싸여 있었다. 중앙에는 헤카림이 서 있었다. 거대한 검은 말의 형상에 인간의 상체가 붙어 있고, 불타는 말의 해골이 머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끝에는 흉측한 뿔이 자욱한 연기에 싸여 있었다. 그가 입을 열자 산 전체가 서서히 비틀리는 듯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긴 왜 온 거지?''
다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은 그가 아닌 나를 향한 것이었다. 그가 여기에 온 목적은 이미 말했을 테니까. 어쩌면 자고 있을 때, 어둠으로 가득한 꿈속에서, 혹은 긴 여정을 하는 동안 돌과 먼지를 밟으며 그는 힘을 원한다고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다리우스는 나를 대신해 대답하 듯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가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새빨갛게 불타는 도끼가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나는 두 개의 화살을 발사했고, 두 발 모두 명중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찌를 수 있는 힘.' 다리우스는 계약을 완료하기 전에 땅으로 쓰러졌다.
아무 말 없이, 인간사냥꾼 다리우스는 그렇게 끝났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악마를 향해 다시 화살을 겨눈 순간, 다리우스가 일어났다. 얼굴은 증오 가득한 미소로 일그러져 있었고, 도끼는 지옥의 힘을 받아 빛났다. 그리고 그 뒤의 불길 너머로 악령 기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헤카림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동굴을 따라 도망쳤다. 검은 협곡의 굽이진 통로를 올라 말을 타고 드넓은 평야로 달렸다. 지옥의 군단과 사악하고 난폭한 남자의 그림자가 나를 맹렬히 추격했다. 악한 자들은 그러한 힘에 이끌리고 휘둘리다가 결국은 무기가 되어 이 땅과 모든 생명을 먼지로 만들게 마련이다.
나는 변경에 있는 마을, 천사의 안식처를 향해 달렸다. 그곳에 악마 사냥꾼이자 개척지에 살던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남자가 살고 있다. 무질서한 패거리를 모아 위협에 대적할 수 있는 자다. 모두를 종말로 몰아넣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울 생각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면 싸울지도 모른다.
이 일기를 찾았다면, 우리의 싸움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세상의 끝에서 힘을 모으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옥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가 되어 맞서지 않으면, 서부를 영영 잃게 될 것이다.

[1] 참고로 인간사냥꾼 스킨 시리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간사냥꾼 스킨 시리즈의 경우 영어로 Headhunter이고 여기서 언급된 다리우스는 Manhunt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