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뵈메
호르스트 뵈메 (Horst Böhme)
(1909년 8월 24일 - 1945년 4월 10일?)
작센의 콜므니츠에서 태어난 뵈메는 1930년에 나치 당에 입당해 친위대 대원이 되어 1934년에 친위대 중위로 승진했다. 1935년부터 친위대 정보부에 배치되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휘하에서 일했는데 이듬 해에 하이드리히의 명령으로 암살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1938년 3월 14일에 빈의 독일대사관에 근무했던 빌헬름 폰 케텔러 남작을 암살한 뵈메는 중령으로 승진했다. 1939년 봄에 체코 보호령의 프라하에서 보안경찰서장으로 취임한 뵈메는 게슈타포를 지휘하여 고등교육을 폐지하고 프라하의 학생 1,500명을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1940년 10월 10일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한스 프랑크, 아돌프 아이히만 등 유대인 이송회합에 참가한 뵈메는 1941년 10월 21일에 친위대 대령이 되어 프라하의 보안경찰 및 정보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6월에 프라하에서 일어난 하이드리히 암살에 대해 뵈메는 보복작전에 나서 악명높은 리디체 마을의 학살을 진행하기도 했다. 1942년 9월부터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보안경찰로 일한 뵈메는 1943년 1월부터 8월까지 아인자츠그루펜 B의 사령관이 되어 벨라루시에서 민간인의 학살에 관여했다. 이어서 1943년 9월부터 1944년 3월까지 아인자츠그루펜 C의 사령관이 되어 우크라이나에서 학살을 주도했다. 1944년 11월 9일에 친위대 상급대령으로 승진한 뵈메는 1945년 4월 10일에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전투도중 행방불명되었다. 전후인 1954년에 독일법정은 뵈메의 사망을 1945년 4월 10일로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