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우지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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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条氏綱 (ほうじょう うじつな) 북조씨강[1]
(1487 ~ 1541.08.18)
장수로부터 사무라이에 이르기까지, 의(義)를 중요하게 여기라. 의를 지키지 않으면 설령 한두 지방을 빼앗았다 한들 후세에 치욕을 남기게 될 것이다. 천운이 다하여 멸망하게 된다 할지언정, 의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후세에 손가락질을 당할 치욕은 없을 것이다. ...(중략)... 옛 이야기를 들어봐도 의를 지킨 멸망과 의를 버린 영화는 천지 차이이다. ...(중략)... 무도한 행동을 하여 이익을 얻은 자는 천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사무라이들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형편에 어려운 점이 있도록 해서는 안 되니, 세상에 버려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기량, 골격, 변설, 재능이 모두 도통하여 훌륭한 사무라이로 보이나 생각 외로 무용이 부족한 자도 있고, 또 모든 일에 서투르며 사람들이 모두 멍청이라고 하는 자인데 무도에 있어서는 막강한 용맹을 뽐내는 자도 반드시 있다. 불완전해 보이는 자도 쓰기에 따라서는 귀중한 인재가 되는 일이 잦으니, 버릴 자는 실로 한명도 없다. 그 자의 뛰어난 점을 찾아내어 쓰고 뛰어나지 못한 점을 쓰지 않아 어떤 자도 유용하게 부리는 이를 두고 뛰어난 대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1. 개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 호조 소운의 아들. 원래 성씨는 이세씨였으나 호조씨라 칭하였다. 때문에 가마쿠라 막부의 호조씨와 구별하기 위해 후호조씨라 불리기도 한다.
2. 생애
1518년 아버지가 은거하면서 당주가 된다. 거성을 이즈 나라야마성에서 사가미 오다와라성으로 옮겼으며 성씨도 이세에서 호조로 바꿨다. 1524년 오기가야스 우에스기가의 당주 우에스기 토모오키(上杉朝興)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의 당주 우에스기 노리후사(上杉憲房)을 방문하기 위해 가와코에성에 간 틈을 타 오기가야스 우에스기 가신인 오타 스케타카(太田資高)를 배반케 만들어 에도성을 빼앗았다.
또한 이와츠키 오타씨를 공격해 이와츠키성을 함락시켰으나 토모오키의 구원요청을 받은 가이 슈고인 다케다 노부토라(武田信虎)에게 이와츠키성을 빼앗겼다. 1530년 오자와가하라에서 우에스기 토모오키군에 대승을 거두었으며 토모오키가 죽고 그의 아들 토모사다(上杉朝定)가 뒤를 잇자 침공을 개시해 가와고에성을 빼앗았다. 코가쿠보 아시카가 하루우지(足利晴氏)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간토간레이직을 원하고 있다는 추측이 있으나 결국 간토간레이직은 우에스기 겐신이 먹었다.
1538년 오유미쿠보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明)와 사토미 요시타카(里見義堯)의 연합군을 상대로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다. 이때 요시아키가 전사해 오유미쿠보는 멸망한다. 우지쓰나는 세력을 무사시, 시모우사까지 확장시켰으며 스루가의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와 동맹을 맺고 다케다 노부토라와 싸웠다. 그러나 1536년 새로 이마가와가의 당주가 된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가 다케다가와 동맹을 맺자 이마가와씨를 상대로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야 했다. 1541년 병으로 사망, 향년 55세. 아들 호조 우지야스가 뒤를 이었다.
3. 대중매체
신장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못지않은 엄청난 능력치를 자랑하지만[2] 존재감은 심하게 없다. 아예 검색해도 이미지조차 겨우 20장 정도다. 띄엄띄엄 출전하다[3] 13 천도에 이르러서는 클리어 특전무장으로 출전한다. 이후 PK 신장의 탄생 시나리오에서는 정식무장이 등록되어, 호조가 다이묘로 등장. 참고로 천도에서 정치력이 110으로 1위다. 2위는 107인 아들 우지야스, 3위는 103인 아버지 소운이다.
노부나가의 야망 13에서는 92/72/84/110의 스탯이다. 병과적성은 아시가루가 A외에는 거의 B, C로 도배되었다. 특기는 철벽지비. 별개지만 오리지널에서 특전무장으로 등록이 되어서 PK에서는 군웅집결에 오다와라 성에서 탐색를 해야 얻을수가 있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는 총합 361로 아들보단 낮지만 충분히 괴물이다. 이전 시리즈들과 달리 정치가 아닌 통솔이 가장 높다.
센고쿠(만화)에선 센고쿠 곤베에에 등장. 아버지 호죠 소운이 은거하자 당주가 되었으며 호죠씨를 칭한다. 이후 호죠가를 발전시키고 아들인 호죠 우지야스에게 당주직을 넘기고 은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