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호조씨

 

後北条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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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가문의 문장
1. 일본 전국시대 간토의 센고쿠 다이묘
2. 후호조씨의 자립
2.1. 호조 소운
2.2. 호조 우지츠나
3. 역대 당주
4. 그 외 가문 관련 인물


1. 일본 전국시대 간토의 센고쿠 다이묘


시조는 이세씨 (伊勢氏)의 일족인 이세 신쿠로[1] 모리토키다.(伊勢新九郎盛時. 후의 호조 소운.) 편의상 소운도 호조 소운이라 부르지만 소운은 생전에 호조라는 성을 쓴 적이 없고, 호조씨를 자청한 것은 2대 당주인 호조 우지쓰나 때부터이다. 호조 소운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상 비공식 추존에 가깝다. 그들의 기반이 옛 가마쿠라 막부가 있던 곳으로 이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며, 우지쓰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운 하치만궁을 복구하기도 하였다.
계승을 내세웠지만 카마쿠라 시대에 정권을 잡았던 호조씨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기 때문에[2] 둘을 구별하기 위해 이세씨의 호조는 후호조라 부르게 되었다. 이세씨의 호조는 초대 소운부터 마지막 당주인 우지나오까지 5대로 '후호조 5대'라고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오다와라 정벌로 몰락했다.

2. 후호조씨의 자립



2.1. 호조 소운


호조 소운의 여동생 (혹은 누나)은 당시 이마가와씨의 당주였던 요시타다에게 시집 와 있었고, 소운은 여동생을 따라왔던 이마가와씨의 식객이었다.
그러던 중 요시타다가 전사하여 후계자 때문에 내분이 일어났고, 소운은 그 틈을 이용하여 여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우지치카를 지원하여 당주에 앉히고 그 공적으로 코코쿠지성 (興国寺城)을 받게 된다. 이 즈음 결혼하여 적자 우지쓰나가 태어난다.
그 후 이즈를 침공, 호리코에 쿠보의 내분을 틈타 아시카가 챠챠마루를 습격하여 추방하고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이즈를 공략한다. 결국 이즈를 손에 넣고 영국화를 시작했고, 메이오 4년 (1495년)에는 사가미의 오오모리씨를 쫒아내고 오다와라성을 탈취하여 본거지로 삼는다. 에이쇼 13년 (1516년)에는 미우라 요시아츠를 죽이고 사가미를 평정한다.
1518년에 우지츠나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1519년 세상을 떠난다.
활발한 정복 활동을 보인 소운이지만 소운은 이마가와로부터 독립한 상태가 아닌 이마가와 소속 가신으로 우지치카의 후견인 입장이었다.

2.2. 호조 우지츠나


가독을 상속받은 우지츠나는 이세씨에서 호조씨로 개성한다.
세력 확대를 위해 무사시로 진출하며 오우기가야츠 우에스기씨와 대립한다. 간토로 진출하는 한편, 카이의 타케다 노부토라[3]와도 대립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마가와의 당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타케다와의 대립을 끝내기 위해 노부토라의 딸과 혼인 관계를 가지며 동맹을 맺는다. 이 동맹으로 인해 호조와 이마가와의 주종 관계는 단절되고 우지츠나는 항전하게 된다. 이 결과 후호조 씨는 이마가와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역대 당주


초대 - 호조 소운 (北条早雲)
2대 - 호조 우지츠나 (北条氏綱)
3대 - 호조 우지야스 (北条氏康)
4대 - 호조 우지마사 (北条氏政)
5대 - 호조 우지나오 (北条氏直)
이후 우지마사의 동생인 우지노리의 아들 우지모리가 우지나오의 양자가 되고 카와치 사야마 번 1만석의 다이묘가 되어 그 후손들은 메이지 유신까지 존속했다.

4. 그 외 가문 관련 인물


[1] 신쿠로라는 이름은 이후로 역대 호조씨의 당주들이 물려받게 된다.[2] 사실 혈통적으로 따지자면 싯켄 도쿠소 호조씨와 후호조씨의 근원인 이세 씨 모두 간무 헤이지 타카모치류 반도 헤이지 계통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먼 친척쯤은 된다. 물론 공통된 조상이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먼 친척이므로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 한국에서 알기 쉬운 비유를 하자면, 유비헌제가 서로 '유'씨긴 하지만, 남남인 것과 같은 소리다. 사실 이세 씨는 이세 헤이지에서 갈라져나온 분파이므로 혈통상으로는 오히려 가마쿠라 막부의 숙적이었던 타이라노 키요모리 등 헤이케와 더 가까운 가문이다.[3] 타케다 신겐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