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구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홍사구는 1878년생이며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지성리에서 , 홍성유(洪聖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우용(又容)이다. 그는 일찍이 안승우의 문인이 되었는데, 총명하고 성품이 정직하여, 비록 가난했지만 부모를 잘 봉양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경사에 능통하고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1895년 안승우가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는 여기에 가담해 종사(從事)를 맡았다. 충주 전투 때 병이 나서 참가하지 못했지만 병이 낫자 제천으로 가서 스승을 도왔다. 1896년 4월 13일 장기렴(張基濂)이 인솔한 관군과 접전하다가 스승 안승우가 적의 탄환에 맞아 사로잡혔다. 이때 다들 흩어졌지만 오직 홍사구 만이 남아서 스승을 호위했다. 이에 안승우가 말했다.
그러자 홍사구가 답했다."나는 장령(將領)으로 죽음을 면할 수 없으나, 네가 나와 같이 죽는 것은 무익하다. 속히 떠나서 훗일을 기약하라."
이후 안승우가 적에게 살해당하자, 그는 크게 꾸짖어 말했다."종사가 되어서 주장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어찌 혼자만 살 수 있으며,제자가 되어서 스승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어찌 혼자만 살 수 있겠습니까. 친구간에도 환란을 당하면 어버이가 계시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더구나 스승에게 이겠습니까."
그러면서 막대 속에 감추어 두었던 칼을 빼어 적을 내리쳤다. 이에 당황한 관군들은 총을 쏠 겨를도 없이 총대로 어지러이 내려쳐서 홍사구를 죽였다. 이때 그의 나이 19세였다."네가 금수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각이 있다면충신·역적과 사람·짐승의 구별은 알 것이다. 우리가 대의(大義)를 의지하여 적을 토벌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느냐."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홍사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